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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온 지 1주일쯤 지났을까.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아직 낯설던 지난 초여름 아침, TV를 켜니 허드슨강 앞바다(맨해튼 웨스트 46가)에 거대한 항공모함이 정박돼 있었다. 당시엔 ‘보급을 위해 잠시 정박했나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며칠 전 가족과 함께 여전히 허드슨강에 정박 중인 그 항공모함을 찾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활약하던 미 항공모함 ‘인트레피드’호를 박물관으로 개조한 ‘인트레피드 해양 우주 박물관(Intrepid Sea Air Space Museum)’이다.
^입구는 의외로 한산했다. 1분도 채 기다리지 않아 표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입장료가 4인 가족에 38 달러로 만만치 않았다(뉴욕의 박물관과 미술관 중 가장 비싼 편이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 항공모함에 들어서는 순간, 요금에 대한 ‘불쾌감’은 씻은듯 사라졌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아이들이, 이리뛰고 저리뛰며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팸플릿에는 인트레피드호의 역사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43년 취역한 인트레피드호는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과 가미가제 특공대의 기습공격에도 살아 남았다. 1960년대에는 베트남전에 투입됐으며, 한때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선을 회수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이후 냉전시대 소련의 잠수함 공격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다 74년 은퇴했다.”
^박물관으로 개조된 것은 1982년. ‘물에 떠 있는 박물관’으로는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실내 전시관은 주제에 따라 4개로 나눠져 있다. 파이어니어홀은 비행술의 발달사와 항공모함의 유래를, 테크놀로지홀은 NASA의 우주선 모형과 미래의 로켓 등을 보여준다. 규모는 작지만 한국전쟁관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갑판으로 올라가니 그 규모가 축구장 두 배 넓이는 족히 되보인다. 내가 지금 항공모함에 서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사용됐던 구형 전투기는 물론, 코브라 헬기, F-14 톰캣, 최첨단 첩보기 S-71 등 수십대의 비행기가 위용을 자랑했다.
^30분 간격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한다는 극장에 들어갔다. 인트레피드호가 가미가제의 공격을 받는 장면, 미 해군의 최근 훈련장면 등을 편집한 내용이었다. 극장 안내자는 “대형 HD(High Definition) 화면과 첨단 사운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뉴욕시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극장(technologically advanced theater)”이라고 자랑했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것은 실내전시관에 마련된 두 대의 비행 시뮬레이터(Flight Simulator). 마치 에어쇼에서 시범비행을 하는 전투기처럼,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듯한 스릴을 안겨준다. 시뮬레이터를 타려면 5달러를 추가로 내야 한다.
^항공모함 옆에는 잠수함, 구축함, 탱크 등도 전시돼 있다. 이 곳에 전시된 잠수함 그로울러(Growler)호는 일반에 공개된 미국 유일의 잠수함이다. 가이드가 어뢰 발사실, 조종실, 침실, 식당 등을 돌며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한 번에 15명 정도만 입장이 허용되기 때문에,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투어 시간은 20분 정도. 각종 기계장치가 빽빽하고 실내가 워낙 비좁아 안전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6세 이만 어린이는 승선이 허용되지 않는다. 가이드는 “2차세계대전과 베트남전에 투입됐다 퇴역한 잠수함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을 빠져 나오는데, 벽면에 ‘우리의 임무(Our Mission)’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우리의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대중을 교육하며, 젊은이들을 고무하는 것(To Honor our Heroes, Educate the Public, and Inspire our Youth.)” 뉴욕의 박물관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 화석화한 전시물을 수동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느끼게 만드는 교육의 장이라는 점이다. 인트레피드는 ‘군사대국’인 미국의 ‘힘’이 느껴지는 박물관이었다.
^입장료는 2~5세 2 달러, 6~11세 6 달러, 12~17세 9 달러, 대학생 9 달러, 65세 이상 노인 9 달러, 일반 13 달러 등. 홈페이지 주소 www.intrepid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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