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에 들어오니 오전 8시40분(뉴욕 시간). TV를 켰다. 여느 때처럼 채널 FOX5의 뉴스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불길이 치솟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WTC) 북쪽 빌딩이 등장했다. 믿을 수 없었지만, 분명 ‘Breaking News’였다. 처음엔 단순한 사고려니 했다. 뉴스 진행자도 사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사고 순간을 목격한 인근 빌딩의 여직원과 긴박한 전화 인터뷰가 이어졌다. “비행기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지는 않았나?” “엔진 소리는 정상이었다. 술 취한 사람이 자동차를 몰다 갑자기 방향을 틀듯, 월드 트레이드 센터 상공을 지나던 여객기가 갑자기 기수를 돌렸다. 쌍발 엔진을 단 점보기로 보였다.”
^그런데 사고가 아니었다. 18분 뒤 여객기 한 대가 쌍둥이 빌딩 중 나머지 남쪽 빌딩과 충돌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생생히 잡혔다. 순간 뉴욕은 극도의 긴장상태에 빠졌다. 오전 9시 30분께 펜타곤 공격소식이 전해지고, 오전 10시 남쪽 빌딩이 큰 폭발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면서 뉴욕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혼란상태로 빠져 들었다. 방송도 갑자기 중단됐다. 채널을 돌렸더니 ABC, NBC도 암흑이었다. CBS만 정상적으로 나왔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되면서 주요 방송사의 위성 안테나가 파괴돼 케이블 TV를 보지 않는 가정은 방송 수신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전화도 한동안 불통됐다.
^맨해튼으로 통하는 모든 다리와 터널은 통제됐다. 지하철은 물론 스태튼 아일랜드와 맨해튼을 연결하는 페리도 운항이 중단됐다. 수십 만명의 시민들이 도보로 다리와 터널을 건너 인근 주거지역으로 대피하느라 아수라장을 이뤘다. 현재 맨해튼과 연결되는 유일한 교통로는 33번가 11번 부두에서 떠나는 페리 뿐이다.
^뉴욕 Port Of Authority는 존 F 케네디, 라구아디, 뉴워크(뉴저지주) 등 뉴욕시와 인근의 3개 국제공항을 폐쇄했다. 공항마다 수만 명의 승객이 발이 묶인 채 인근 호텔 등을 예약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 날 오전 뉴욕 도착예정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기는 미네아폴리스와 앵커리지에 착륙했고, 오후와 저녁으로 예정된 서울발 항공편은 모두 취소됐다. 미국 연방항공국(FAA)은 내일 낮 12시까지 미국 전역의 공항을 잠정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으로 향하던 모든 국제선 비행기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착륙하고 있다.
^뉴욕시와 뉴욕주는 또 다른 테러 공격에 대비, 유엔빌딩과 증권거래소, 뉴워크의 연방청사 건물에 소개 명령을 내렸다. 법원 등 관공서도 업무를 중지했다. 맨해튼은 물론 뉴욕시의 모든 시장은 철시했고, 상가도 대부분 오전 중 문을 닫았다. 금융의 중심지인 로어 맨해튼이 초토화하면서, 은행 거래도 완전 중단됐다. 컴퓨터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 뉴욕시의 현금 자동지급기(ATM)는 무용지물로 변했다. 시민들이 문밖 출입을 삼가고 있어 거리도 한산하다.
^초, 중, 고교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 부모들이 오전부터 학교에 몰려 들어 아이들을 찾아가느라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마을 주민들이 아이들을 데려오는 모습을 보고, 우리 부부도 오후 1시 50분께 학교를 찾아갔다. 수십 명의 학부모가 교사들과 상담하느라 혼잡한 모습이었다. 수업은 점심 시간 이후 중단된 상태였다. 교장 선생님은 우리 신분을 확인한 뒤 아이들을 내주었다. “집안에서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계속 뉴스를 시청하십시오. 내일 수업이 진행될 지는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해외연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