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넣어 놓기만 하면 다 알아서 하는 줄 알았습니다. 5학년, 1학년인 사내 아이들은 첫 달에 거의 얼굴이 사색이 되더군요. 1학년 담임은 1주일 만에 애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에서는 학교 적응에 문제가 없었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 공부를 따로 시킨 적도, 이곳 미국의 다른 애들처럼 학원을 보내는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전통의 격언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는 역시 옳았습니다. 아이들 특유의 유연성과 한몫을 했고. 작은 아이는 KBL (한국 학생을 위한, 한국어를 이용한 영어 수업)과 ESL을 4개월 만에 마쳤습니다. 그날 우리 가족, 오랜만에 포식했지요. 저를 닮아 낯을 가리고, 걸을 때 땅만 쳐다보는 아이인데, 수업 시간에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발표도 곧잘 한다더군요. 담임의 그 말을 들으며 갑자기 콧잔등이 짠해 지더군요. 자발성을 강조하는 교육 시스템의 위력은 예상보다 컸습니다. 아이의 character까지 변화시켰으니까요.
한국에서는 저 혼자 전단을 만들어 교내 사설 ‘야구팀’을 만들고, 학교신문 기자로도 설치고 다니던 큰 아이는 매일 이사라도 다니듯 한 꾸러미의 교과서들을 마치 어린 Sisyphus라도 되는 양 들고 다니면서도 3개월 이상 고생을 했습니다.
비록 ‘서류상’이지만 영문과 석사인 제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사이언스’는 논외로 쳐도, 미국 역사 위주인 ‘Social Studies`는 무슨 대학 국사 강의 교재도 아닌 것이 수백 명의 등장 인물과 기백 곳의 지명으로 가득하더군요.
그러던 아이가 올 초엔 Marcel Proust의 ‘The Road Not Taken`을 외워 가면 ‘Language Art` 수업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며 영문학 석사인 저도 몇 줄 못 외우는 그 시를 단숨에 외워버리더군요. 제가 장담컨대 20행 짜리 그 시, 나이 40 넘으면 절대 못 외웁니다. (저는 이 점에서 클린턴인지 부시 때인지 모르겠으나 `No Child Left Behind Act`를 통과 시킨 미국 의회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쿼터제인 얘들 학교에서 큰 아이는 둘째 semester까진 Reading, Language Art, Spelling, Mathematics, Social Studies, Science/Health 등 전 과목에 ESL 수업을 핑계로 학점 표시가 따로 없다가, 우리 부부의 강력한 어필 (“애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봐왔는데 학점 표시를 안 하면 어떡하냐”) 에 따라 세 번째 semester엔 드디어 학점을 받아 왔습니다. A가 세 개, B가 두 개더군요. 아무리 공부 안 시키는 공립학교라지만 부모가 느끼는 그 감격,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릅니다.
큰 아이는 아예 자기만 좀더 남으면 안 되냐고 요즘 한창 투정입니다.
왜 안 그러고 싶겠습니까. 형편이 그렇질 못하니 문제지. 해서 요즘 좀 심란합니다. 학원이다 선행학습이다, 그 악다구니 속으로 다시 애를 내팽개칠 생각을 하니까요. 잔디구장은 커녕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조차 한껏 뛰놀지 못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말이지요. 어디 좋은 로또 번호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