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추수감사절 퍼레이드 관람기
필자가 연수 중인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은 ‘Thanksgiving Day’, 번역하면 추수감사절이 꼽힌다. 미국은 크리스마스보다 추수감사절을 더 큰 명절로 친다고 한다. 추수감사절은 개신교 3대 명절 중 하나인데, 미국과 캐나다만이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추위가 빨리 찾아오는 캐나다는 10월이 추수감사절인 반면, 미국은 11월 넷째 주 목요일이다.
추수감사절에는 미국 전역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뉴욕에서 진행되는 퍼레이드일 것이다. 정식 명칭은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로 1924년 시작돼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출발해 맨해튼 6번가 메이시스 백화점 앞까지 행진한다. 각종 인기 캐릭터를 형상화한 대형 풍선들이 행진하는 모습은 영화에서도 종종 접할 수 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맞게 된 추수감사절엔 이 퍼레이드를 직접 견학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해 그곳에서 편하게 볼 생각이었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다시 경험하기 힘든 기회인만큼 웬만한 금액이면 감당하려 했다. 하지만 퍼레이드가 잘 보이는 레스토랑 식사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1인당 최소 800달러, 비싼 곳은 3000달러에 달하기도 했다. 식사 한 번 하는데 수백만원을 쓸 순 없어서 포기하고 길거리에서 보기로 했다.
추수감사절 당일인 11월 24일 아침. 오전 9시부터 퍼레이드가 시작되니 늦어도 7시 30분에는 가족 모두 나와 줄을 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딸이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필자만 8시 10분쯤 먼저 거리로 나와 자리를 잡았다. 이미 많은 인파가 모여있긴 했지만, 행진이 예정된 곳에서 5~6번째 줄을 차지할 수 있었다. 생각보단 사람이 많이 오지 않나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8시 30분을 넘어서니 갑자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주변은 서로 뒤엉켜 움직이기 힘들 정도가 됐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도 하나둘 생겼다. 한 부모가 자녀들만이라도 줄 앞쪽으로 집어넣으려 하자 앞에 있던 남성이 강하게 항의했다. “나는 여기서 2시간 넘게 기다렸어요. 애들이라도 안 됩니다. 뒤로 가세요.” 아이들의 엄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미안하단 말론 충분하지 않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필자의 딸을 비롯한 우리 가족도 이때쯤 도착했다. 다행히 이미 필자가 자리를 잡아놓은 터라 가족이 합류한 것을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필자가 있었던 곳은 행진 마지막 지역이었고, 오전 10시쯤 되니 드디어 퍼레이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은 행진이 잘 보이도록 무등을 태우기 시작했다. 무등을 태우면 뒤에 있는 사람들 시야가 가려지지만 이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국은 대체로 아이들을 위한 행동에는 ‘excuse’를 받아주는 편인데, 이날도 그랬다. 앞서 새치기 한 아이들을 받아주지 않으려 했던 남성도 어느덧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렸지만, 서로 미는 행동은 없었다.
이날 행진이 진행된 맨해튼 6번가는 사람 통행이 통제됐지만, 꼭 거리를 건너야만 하는 사람은 경찰에 이야기하면 됐다. 그러면 경찰이 잠시 행진을 멈춘 뒤 건너가게 했다. 특정 개인을 위해 거대한 행진을 멈추는 게 눈에 띄었다. 아무리 공식적인 행사라도 개인에게 희생을 치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린 것 같았다. 이런 탓에 행진은 중간중간 멈췄는데, 행진자들은 이 때 거리의 인파에 다가가 직접 인사를 건네는 등 또다른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행진은 약 3시간 뒤엔 12시쯤 끝났다. 엄청난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큰 혼란은 없었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오른쪽 왼쪽으로 갈라져 줄을 선 뒤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필자와 가족도 10여분만에 인파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가 특히 안타까웠기에 이 같은 대규모 인파의 질서정연한 해산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