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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족의 의기투합, K-김밥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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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연합, 오스트레일리아, 바베이도스(Barbados), 브라질, 미얀마, 중국, 쿠바, 이집트,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인도, 이스라엘,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멕시코, 대한민국, 스웨덴, 영국, 헝가리.

20개 나라입니다. 6대륙에 걸쳐 있어서 무슨 조합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 모리스 그로브 초등학교(Morris Grove Elementary) 학생들의 고향입니다.

아버지의 연수에 따라나선 우리 집 두 아이가 다니는 모리스 그로브 초등학교는 매년 3월 ‘멀티컬쳐 나잇’(Multi Culture Night) 행사를 엽니다. 남부지역 대표 명문인 UNC 채플힐과 듀크대가 자리 잡은 이곳은 미국 외에 다양한 국적의 가족들이 모여 삽니다.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고 이해의 장을 넓히고자 모리스 그로브 초등학교에서는 연례 대표 행사로 ‘멀티컬처 나잇’을 개최합니다.

모리스 그로브 초등학교의 멀티컬처나잇 행사에서 한국 부스는 단연 인기였다.

올해는 20개국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부스를 열었습니다. 한국인 엄마 아빠 5가족이 의기투합해 ‘KOREA’ 부스를 만들었습니다. 각 나라의 부스에서는 자기 나라의 대표 음식을 선보이고 고유문화를 소개합니다. 왁자지껄 축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시끌시끌 학창 시절 축제의 기억이 소환됩니다. 아이도 어른도 즐겁습니다.

한국 부스는 전면에 김밥을 내걸었습니다. 합심해서 셀 수도 없는 김밥을 말았습니다. 김밥마다 태극기를 붙인 미니 포크를 꼽았습니다. 약과도 내놨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표음문자 한글로 각 나라 아이들의 이름을 써서 책갈피를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한복을 입어볼 수 있게 전시해놨고 딱지치기와 제기차기도 선보였습니다. ‘아파트’를 비롯한 K팝도 행사 내내 틀었습니다. 중간중간 한국에서 검은 띠를 따온 큰아들이 태권도 시범도 펼쳤습니다.

김밥에는 일일이 태극기 포크를 꼽아서 제공했다.
김밥에는 일일이 태극기 포크를 꼽아서 제공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한글 책갈피는 너도나도 줄지어 받아갔습니다. 특히 김밥은 폭발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두 번 세 번 찾아오는 건 기본, 어떤 가족은 열 한 번이나 돌아와 김밥을 먹었습니다.

행사를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레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듯 보였습니다. 아니, 원래 학교생활을 통해 알고 있던 다름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 국적의 아이들이 이 작은 학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이런 다양성과 역동성이 결국 미국의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행사 내내 한국 부스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포용적 유연함도 특징입니다. 아이들의 초등학교는 ‘구정’, 즉 한국의 음력 설날에 쉽니다. 학교에 한국 아이들은 극히 소수지만 이들에게 의미가 큰 설날인 만큼 학교장의 재량으로 하루 쉬겠다는 겁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이런 친절한 분위기는 미국 남부지방 특유의 환대 문화(Southern Hospitality)와도 연관될지 모릅니다. 실제 이곳에서는 어디서든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간단한 안부를 나눕니다. 이른바 ‘스몰 토크’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다른 사람이 멀리서라도 보이면 문을 닫지 않고 열어놓습니다. 각종 건물 출입문도 뒷사람이 먼발치에서라도 다가오면 연 채로 붙잡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학부모는 저마다 자기 조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열정적입니다.

물론 마냥 좋을 수는 없습니다. 친절한 백인들 사이에서 묘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잖습니다. 미국 국내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차별과 배제, 극단의 논리가 힘을 얻고 여전히 남부 지방 곳곳에는 초대형 과거 ‘남부 연합’ 깃발이 펄럭입니다. 식당에 동양계 이름으로 예약했더니 안 좋은 자리를 주더라, 찰스턴(인종차별이 강하다고 알려진 도시) 관광 마차에서 굳이 뒷자리에 앉으라고 하더라 등등 차별을 겪었다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다름을 몸으로 느끼고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의 친구들은 국적도 집안 구성도 너무 다채롭습니다. 경험이 힘입니다. 소중한 이 시간들이 나중에 우리 가족은 물론 공동체를 위해 쓰여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