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총기 난사범과 마주치게 된다면?
1. 2021년 6월 19일 오후 미국 시애틀 도심. ‘방금 전 가게에 걸려 있던 옷이 꽤 괜찮았어’ 헛생각을 하면서 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 갑자기 3, 40미터 앞쪽부터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내 쪽으로 뛰어왔다. 뭐지 하는 순간 들려온 소리, “건샷! 건샷!”. 그러고 보니 방금 전에 빵빵빵빵, 뭔가 연달아서 터지는 듯한 소리를 듣고도 그냥 그런가보다 넘겼는데, 그게 총소리였구나, 누군가 지금 총을 들고 이쪽으로 올 수도 있겠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로 유모차를 뒤로 돌려서 뛰기 시작했다, 코너를 돌면 바로 나름 큰 호텔이 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바로 호텔 로비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만약 누군가 총을 들고 들어온다면 어디로 또 도망을 쳐야 하나, 탈출로를 찾기 시작했다. 좁은 비상구 통로로 도망치더라도 쫓아 올라올 수도 있겠다, 엘리베이터는 제때 도착한다는 보장이 있나, 온갖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나도 총이 있었으면 좋겠다’
2. 5분 쯤 지났을까, 걱정했던 순간은 오지 않았다. 호텔 로비에는 우리 가족처럼 도망쳐 들어온 사람들이 스무명 정도 있었는데, 하나 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5분 쯤 뒤,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듯했다.
가족은 안에 두고 밖으로 나가봤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경찰차 서너 대가 줄지어서 총격이 난 쪽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10분이 지나도록 어디서 상황이 벌어진 건지도 확인을 제대로 못한 듯했다.
다시 10분 뒤, 이제야 가족들을 데리고 그 총격 소리가 났던 쪽으로 가봤다. 스타벅스 가게 안에서 직원이 울먹이며 어딘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얼핏 듣자니 이유를 알 수 없는데, 흑인 한 명이 스타벅스 주변에서 총을 쐈고,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총알이 날아들기도 했단다. 그리고 스타벅스 문앞에는 결국 오늘 영업을 쉰다는 쪽지가 나붙었다.
문제의 스타벅스 가게에 붙은 휴점 안내
그 이후로 며칠을 관련 기사를 찾아봤는데, 단 이 기사 하나만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친 사람이 없었으니까 이 정도면 그냥 지나간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일 시내 총격 사건 관련 유일무이한 기사
그럴 만도 한 게, 기사를 찾다보니 시애틀 주변에서는 거의 매주 총격 사건으로 사망자가 생기고 있었다. 지역의 안전도를 평가하는 neighborhoodscout.com이라 사이트에서 시애틀의 안전지수는 100점 만점에 단 4점. 주민 168명 중에 1명 꼴로 범죄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었다. 폭스 뉴스 같은 곳에서는 불법 이민자를 포용하는 민주당지지 도시의 폐해를 설파하는데 시애틀이 주 재료로 쓰이고 있을 정도다.
시애틀의 범죄 위험도
3. 미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총기 규제 문제는 참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잊을 만하면 난사 사건이 벌어지고, 오발 사건에 어린 아이가 목숨을 잃고, 온갖 문제들이 벌어지는데도 왜 고치질 못하나, 한심하게도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를 되짚어보니, 이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미국 수정헌법의 두 번째 조항, 2조가 바로 이 ‘무기를 가질 권리’를 담고 있다. 이 권리가 있었기 때문에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일 수 있었고, 또 이후에 개척시대를 거치면서 총은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수단이 됐고, 더 나아가서 또 부당하게 내 권리를 빼앗아 갈 수 있는 권력자나 더 나아가서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다보니까 총기를 규제하자는 쪽도 총을 아예 빼앗아야 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헌법에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한 사람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자, 자동화기는 제한해야 한다 등등의 우회적인 방법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리고 막상 내가 도심에서 직접 총격사건을 맞닥트리고 보니까 또 느낌이 달랐다. 이미 누군가가 총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나도 총이 가질 수 있어야한다는 현실적인 필요를, 완전한 이방인인 나마저도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4. 1시간 쯤 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에 한 옷가게에 들어갔다. 지하 매장으로 들어가면서도 탈출구는 어디에 있나 확인을 했고, 미국 고등학교에서 총격이 있으면 제자리에 머물지 말고 무조건 출구를 향해 뛰라고 가르친다는 것도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매장을 나오면서 또 한 광경과 마주쳤다. 경비원이 정문과 마주한 기둥 뒤에 숨어서, 권총집에 손을 얹은 채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저 불안은 사라지기 힘들겠구나, 뇌리에 깊이 박힌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