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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건너갔지만 왠지 와 본 듯한 모로코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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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성당과 이슬람 모스코 왜 닮았나 했더니…

대륙 건너갔지만 왠지 와 본 듯한 모로코 여행기

모로코는 내가 연수를 받고 있는 그라나다 지역에서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나라다. 사실 굳이 바다를 건너지 않고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를 정복하기 전에 이곳을 지배했던 민족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라나다 곳곳에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관광 명소로 유명한 알바이신 지역이다. 알함브라 궁전 맞은 편 좁은 골목길에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이슬람교도들이 요새를 쌓았다. 이곳이 카톨릭의 수호자인 이사벨 여왕에 함락되자 이슬람교도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역으로 남았다. 때문에 당시 문화적 유산들이 있고, 스페인 정복 전인 7~15세기 이곳을 호령했던 이슬람의 문화가 남아있다. 알바이신은 차 문화와 목욕 시설, 물담배 등의 이슬람 문화들이 존재해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하기는 곳이다.

알함브라 궁전 역시 정복자들에 의해 고쳐지고 개축되긴 했지만 이슬람 건축의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문화가 접하다 보면 친숙해져서 일까. 북아프리카로 돌아간 이슬람 왕국 무어인들의 모습을 찾아가 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다.

모로코 여행 첫번째 도착지는 마라케시였다. 9세기 모로코의 수도였던 이 도시는 많은 페르시아어를 포함한 많은 언어에서 모로코라는 국명 대신 이 도시의 이름을 사용할 만큼 유서가 깊다. 그라나다가 묘한 매력을 가진 또다른 이유가 이베리아 반도 최고봉을 가진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도시를 받치고 있고 마라케시는 아틀라스 산맥이 병풍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이 도시의 아쉬운 점은 관광지로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끊임 없는 호객 행위와 함께 흥정이 따라 붙는다. 공항부터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 기사 역시 흥정을 했는데 막상 탑승하고 나니 한명당 가격이란 어이없는 설명을 했다. “그렇다면 우린 따로 각각 택시를 타고 같은 호텔로 가겠다”란 논리로 가격을 흥정했지만 끝까지 팁을 요구하는 택시 기사의 끈질김에 결국엔 나중엔 두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도착한 마라케시의 붉은 옛 이슬람 시가지와 이국적인 이슬람 건축 양식들이 눈을 사로 잡았다. 특히 도시 경관뿐 아니라 이슬람 재래시장에서의 혼잡함은 이 도시의 매력이다. 하지만 코브라와 원숭이를 학대하며 다루는 모습에 눈살이 살짝 찌푸려지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월드컵에서 모로코가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이슬람 국가인 만큼 술 없는 응원전 또한 관광객에겐 매우 인상적이었다.

모로코 내국인의 알콜 소비는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맥주나 술을 소비하려면 비싼 가격을 치뤄야 했고 이는 유럽 이상의 가격이었다. 월드컵 경기 때 거리는 한적했고 덕분에 빠르게 이동하면서 바히아 궁전 등의 유적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중정과 타일 방식의 이슬람 건축 양식이 화려했다. 모로코는 왕정국가로, 비록 프랑스와 스페인의 침략으로 식민 시절을 거쳤지만 1665년 개창한 알라우이트 왕조가 통치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 최장 왕조 중 하나로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선 경제력도 손꼽힌다. 루마니아 자동차 브랜드 다치아(Dacia)의 생산 기지가 있어 완성차 생산 능력이 있다. 우리나라가 프랑스로부터 도입한 KTX의 떼제베를 받아들여 아프리카 최초의 고속 열차가 마라케시부터 수도 라바트를 지나 금융 중심지인 카사블랑카와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 되는 탕헤르까지 이어진다.

마라케시에서 카사블랑카로 이동하며 이 열차를 이용했는데, 1등석에 앉은 현지인 둘이 말을 걸어왔다. 마라케시 대학 의대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20대 남자와 스위스에서 전용기 디자인 회사에 다닌다는 여자. 이들은 엘리트임에도 종교에 대한 신념이 매우 뚜렷했다. 모로코는 국왕이 종교의 지도자를 겸하고 종교의 자유는 없다. 이들은 이슬람 성지인 메카를 죽기전에 꼭 방문하겠다며 종교는 자발적인 것이라 강조했다.
이들과 얘기를 하다가 유럽연합(EU)처럼 아프리카 경제적 정치적 공동체가 가능한가란 토론을 하게 됐다. 사실 2022 월드컵에서 모로코가 돌풍을 일으키며 아랍권과 아프리카의 선두주자처럼 부상하다 보니 젊은층들의 자신감이 고무된 터라 꽤 재밌는 얘기가 이어졌다. 물론, 아프리카나 아랍권도 경제적 공동체의 생성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경제 공동체 (African Economic Community , AEC)가 아프리카 연합의 조직이다.
지난 2002년 유럽 연합(EU)를 본보기로 아프리카통일 기구(OAU)와 아프리카 경제 공동체(AEC)가 통합하며 출범했다. 본부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바바에 있는데 출범 이후 모로코가 서사하라의 독립을 반대해 탈퇴했다 2017 재가입했다. 말리와 나이지리아에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는 등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협력 부분에서 아직 미진한 부분이 존재한다. 44개국이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었으나 경제력이 큰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참여하지 않았다. 나이지리아, 남아공, 이집트에 집중된 경제력과 최빈국들의 인프라 부족 등의 문제가 여전히 경제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 이같은 경제 통합에 대한 의견은 모로코 젊은이들 역시 의견이 갈렸다. 이런 얘기를 듣다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250km 거리를 1시간 반 가량 달려 도착했으니 고속열차가 시간을 비싼 요금 값을 톡톡히 했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경제의 중심지다. 모로코 수도는 라바트지만 카사블랑카에 모로코 내 굴지의 기업들과 그곳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들이 본사와 주요 산업 시설들을 두고 있다. 포르투갈이 15세기에 이 도시를 카사블랑카라 이름 붙였고 프랑스의 지배를 거쳐 아프리카 최대의 항구가 자리잡았다. 항구도 유명하지만 바다를 향해 건설된 하산 2세 모스크가 랜드마크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스크 2곳을 제외하고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이곳은 210m의 미나렛(첨탑)이 솟아있다. 내 외부에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고 섬세한 천장 장식으로 꾸며져있다.
스페인의 많은 성당 중 대표적으로 세비야 성당 에도 이와 비슷한 첨탑이 있다. 이를 히랄다라고 부르는데 원래는 이슬람 사원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용도로 지어졌다가그 용도를 바꿔 성당의 종루로 사용되고 있다. 이같은 종교 시설의 용도 변경은 1453년 동로마를 멸망시킨 오스만투르크가 현재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성소피아 성당)을 모스크로 개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카사블랑카에서 탕헤르로 이동해 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탕헤르에서 스페인 타리파로 출발하는 배를 타기 위한 일정이다. 탕헤르에서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길은 30분 가량 배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 여정을 택한 이유는 실제 아프리카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체감하기 위해서였다. 간단한 출국 검사를 마치고 해안을 건너와 타리파로 건너온 뒤 인근 도시인 알헤시라스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