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밤 미국 주거래 은행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발신인은 자신을 은행 직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은행 fraud center야. 7045로 끝나는 네 데빗카드가 부정사용된 것 같아서 전화했어. 3월 13일 미니모바일에서 **불, 3월 14일 월마트에서 **불 쓴거 너 맞니?” 은행 직원이 밤에 전화할리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상대가 제 데빗카드 번호 끝 네자리를 알고 있는걸 보면 은행 직원이 맞나 싶기도 했습니다. 전화 통화를 이어가면서 은행 앱을 열어봤습니다. 거래내역엔 다행히 전화 발신인이 말하는 내역이 없었습니다. “그거 내가 쓴거 아닌데?”라고 대답하자 상대는 결제 취소를 하려면 자기가 보내는 링크에 계좌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 이게 바로 스캠이구나.
“그냥 내일 은행 가서 문의해볼게” 제 대답을 들은 상대는 머뭇거리더니 전화를 끊었습니다.
스캠 사기꾼에게 낚이지는 않았지만, 제 카드 번호 뒷자리는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을까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틀 뒤에 발생했습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344불이 결제된 것입니다. 저는 들어본적도 없는 쇼핑몰인데, 카드를 잃어버린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필 주말이라 당장 은행에 달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은행 앱에서 데빗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lock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카드 정보를 빼낸 사람이 계속 카드를 사용하면 곤란하니까요. 그 다음에 할 일은 은행에 카드 부정사용 사실을 신고하는 것입니다. 은행 앱 ‘report a problem’ 기능으로 해당 결제 내역이 내가 쓴 것이 아니라고 신고했습니다. 은행에선 신고 직후 기존 카드를 취소하고, 새 카드를 7일 이내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4일 이내에 제가 부정사용으로 신고한 금액과 해당 거래 관련 이자, 수수료의 총액 만큼 temporary credits을 넣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4일 뒤, 344불이 다시 제 계좌로 돌아왔습니다. 일단 돈은 받았지만 ‘임시로’ 넣어준 돈이라 은행의 조사 결과에 따라 토해내야할지도 모릅니다. 원고를 쓰는 4월 중순 기준, 아직 은행의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 결과를 속단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미국에 오래 살고 있는 교민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한번쯤은 겪을 수 있는 흔한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크레딧카드보다 데빗카드가 훨씬 취약한데, 아마도 누군가 제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카드가 복제되거나 카드 정보를 빼냈을 것이라고요. 식당 등에서 결제를 위해 서버에게 카드를 맡길 때 카드 번호를 적어뒀다가 도용당하거나 카드 결제기에 카드 정보가 쌓여 유출되기도 한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카드 사용자 65%는 크레딧ㆍ데빗카드 도용 사건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데빗카드가 표적이 됩니다. 온라인에서 미국 데빗 카드를 사용할때는 우리나라처럼 복잡한 인증서나 프로그램을 거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없이 카드 앞뒷면 정보만으로 결제가 이뤄지는 편리함이 데빗카드를 부정사용에 취약하게 만드는 듯 합니다.
베스트셀러 ‘Catch me if you can’의 저자 Frank Abagnale은 ”데빗카드는 소비자들 손에 쥐어진 최악의 금융 도구“라며 ”사용할 때마다 돈과 은행 계좌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도용을 막으려면 절대 데빗카드를 사용하지도 소유하지도 말라”고 조언합니다. 그는 대신 크레딧카드를 쓰라고 말합니다. 크레딧카드는 카드 도용시 소유자의 책임이 비교적 적고 실질적인 손실이 적은데 반해 데빗카드는 사용 즉시 돈이 빠져나가고 다시 돌려받기 까지 장시간 고생을 하게 된다는 이유에서죠.
그런데, 1년만 머무르는 연수자들이 미국 크레딧카드를 발급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발급받더라도 한도가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어쩔 수 없이 데빗카드를 써야 하는 연수자 입장에서 카드 도용을 막고 실물 카드 사용 빈도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요. 이번 사건을 겪고 찾아낸 차선책은 스마트폰 월렛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카드 정보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결제가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만에 하나 피해를 입더라도 빨리 대처할 수 있도록 매일 한번씩 계좌 거래 내역을 검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