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라는 현실적 장벽, 낯선 연구 환경에 직면하면 연구에 대한 의욕이 움츠러드는 게 사실입니다. 저는
이번 연수기간에 한국의 민주화와 관련된 미국 정부 기밀해제 문서를 입수해 나름대로 연구를 진행했습니
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짧은 조언을 드릴까 합니다.
제 연구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제 연수기관인 인디애나대학의 사서였습니다. 아마 인디애나대학의
사서들은 제 연수의 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솔직히 20여년 전 대학을 다녔던 저로서는 사서들
에게 무슨 도움을 구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정보보호법 등에 따라 문서가 작성된 지 30년을 기준으로 기밀해제 여부를 결정합니다. 엄청
난 비밀이 담겨져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밀해제됩니다. 물론 기밀해제를 하면서도 중요한 내
용은 검은 색으로 먹칠해 내용을 알 수 없게 만든 뒤 공개하는 문건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미국 정부의
기밀해제 정책에 대해 알아 본 뒤 한국과 관련된 미국 정부 기밀해제 문서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워싱턴
에 있는 미국 의회 도서관을 가 보기도 했죠. 하지만 낯선 땅에서 한국 관련 미국 정부 기밀해제 문서들
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찾기 만큼 힘들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했습니다. 이 때, 한국에 계신 교수님이
“인디애나대학의 사서를 만나 보라”고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사서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던 저는 그
말에 반신반의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 인디애나대학의 중앙도서관을 찾아 간 뒤로부터 엄청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발품과 말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일단 누구를 만나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도서관 안내센터로 찾아갔
습니다. 그 곳에서 “한국 관련 기밀해제 문서를 찾고 있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도서관의 어떤
사무실로 가라고 안내하더군요. 알고 봤더니 사회과학 분야 사서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이었습니다. 그 곳
에서 다시 제 사정을 말하니 “지금은 담당자가 없다”며 “이메일이나 연락처를 남기고 가라”고 하더군
요. 탁구공처럼 왔다 갔다만 하고 정작 답은 구하지 못하는 게 한국 정부 부처 취재할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날 “내가 세미나를 갔을 때 당신이 방문했다. 당신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 나
에게 메일로 설명해 달라. 그런 다음 장소와 시간을 정하면 만나서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사
서로부터 받았습니다.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대감이 그 때부터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차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일정을 조율한 뒤 드디어 그 사서와 만났습니다. 장소는 네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 세미나실이었습니다. 컴퓨터와 스크린 등 멀티미디어 시설이 갖춰진 공간이었습니
다. 그 사서는 무언가가 빼곡히 적혀 있는 A4지 두 장을 제게 건넸습니다. 제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각종
사이트들과 그 사이트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미리 조사한 뒤 저에게 전달한 것이었습니다. 그냥 나온 것
이 아니라 사전에 준비를 하고 저를 만났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서가 준비해 온 모
든 사이트들이 도움이 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사이트들은 제 연구에 화수분 역할을 했습니다.
사서는 한국 전문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만난 이후에도 한국 관련된 유용한 정보나 사이트
가 있으면 제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저를 잊지 않고 제 연구를 도와주려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사서
에게 “당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말을 전하자 “그게 나의 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한국
에서는 사서 분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어 미국과 한국의 사서를 비교하기에는 무리지만 미국 대학의 사
서는 정보 검색과 분류의 전문가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연구자들의 연구를 도와주는 데 매우 적극적
이었습니다.
연수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연구하려는 분들에게 도서관 사서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하라는 말씀을 드
리고 싶습니다. 아플 때 의사를 찾듯이 연구가 벽에 부딪혔을 때, 자료 수집이 되지 않을 때 무조건 사서
를 찾으라는 조언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