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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달리며 깨달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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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포토맥강에서 조깅하는 사람들

DC 거리엔 유독 달리는 사람이 많다. 내가 도시를 즐기는 방법 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DC 거리를 달려보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달리는 재미를 몰랐다. 이곳에 와서 그 즐거움을 알게 됐다. 그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도시를 달리는 일이 무슨 대수냐 하겠지만, 바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는 게 특별하다. 한국에서 달리기는 트랙 같은 특별한 여건이 갖춰진 곳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강 주변으로 아파트가 늘어선 것도 아마도 도심 속에 드물게 달릴 수 있는 여건을 이웃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특별한 곳이 아닌 평범한 길을, 사람들과 부딪히며 인도를 달린다는 것은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고 일반적인 인식이다.

DC에 와보니 도시 달리기는 일상이다. 거리를 달리는 기분은 운동장 트랙을 달리는 것과는 다르다. 인도 주변에는 크고 작은 상점, 카페, 음식점, 주유소, 소방서, 유치원 등이 줄지어 있다. 도시를 달리는 건 이곳의 생활공간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달리기는 일반적으로 외로운 운동이다. 하지만 거리를 달리는 것은 트랙을 달릴 때와는 달리 외롭지 않았다. 트랙이든 도로든 분명 같은 하늘 아래 달리는 것인데 말이다.

도로를 달리는 또 다른 즐거움은 울창한 나무 사이를 뛸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 와서 가장 놀랐던 건 도로를 장식하는 나무들이었다. 흔히 가로수라고 부르지만 그건 왠지 통일되거나 획일적인 느낌이 있다. DC의 나무들은 그렇지 않다. 대체로 수령이 오래되고 크고 울창하다. 나무 하나 하나가 품위를 유지하면서 거리를 빛낸다. 그런 점에서 DC의 나무는 ‘가로수’라고 불러서는 곤란하다. 도시의 주인공이다. 울창한 나무 덕분인지 거리엔 참새가 유난히 많다. 참새들 노랫소리를 들으며 달리면 이곳이 도시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늦가을 늦은 오후 DC 거리를 달리는 사람

나의 달리기는 세 단계로 나뉜다. 첫 단계는 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집에서 가벼운 조깅 속도로 포토맥강에 이르는 데 15분이 걸린다. 몸이 어느 정도 예열되면 본격적으로 강변을 달린다. 2단계다. 강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학생들이 조정을 한다. 힘차게 노를 젓는 그들의 에너지가 상당하다. 조지타운에서 강을 따라 링컨 메모리얼이 있는 내셔널 몰에 이르면 워싱턴 기념탑 뒤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걸 볼 수 있다. 이른 아침 관광객이 거의 없는 고요한 내셔널 몰에서 해를 맞이하는 게 루틴이 됐다.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3단계는 산책이다. 달리기로 데워진 몸 덕분에 겨울의 차가운 공기도 상쾌하다.

이렇게 얘기하면, DC는 계획도시이고 도로가 넓고 여건이 되니 그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다. 여건보다는 배려의 영역이다. 이른 아침 미명을 뚫고 인도를 달리면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게 되고, 어떤 때는 카페 문을 열던 사장이 커피 한 잔 줄 테니 나중에 돌아올 때 카페에 오라고 한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을 때면 진행하던 자동차가 멈춰서 건너가라고 손짓한다. 달리는 사람에 대한 배려이고 이웃에 대한 인사일 것이다. 처음엔 낯설었던 도시,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말문이 막혀서 이래저래 소통하지 못했던 이 도시에서 달리기를 통해 소통하고 이웃이 된 것은 뜻밖의 발견이다.

DC 예찬만 늘어놓은 듯하다. 예찬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한 인간을 변화시킨 것이 도시였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있다. 그 어떤 안내서도, 유명 트레이너도, 건강을 위한 의사의 경고를 몰라서가 아니다. 그저 도시에 대한 몸의 반응이다. 나는 달리면서 이 도시와 함께 숨 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기쁨은 오래도록 나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