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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음이의어로 엿보는 중국인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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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면 ‘시에인(谐音,해음)’을 종종 접한다. 시에인은 ‘뜻은 다르지만,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글자’를 말한다. 우리말로 굳이 바꾸면 ‘동음이의어’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중국인의 생활습관이나 풍속 중에서는 시에인을 이용한 것들이 아주 많다.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지에(春节,설날)가 되면 사람들은 집이나 사무실 안팎에 빨간색으로 쓴 ‘복(福)’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붙인다. 이는 ‘거꾸로’ ‘반대로 뒤집다’는 뜻의 ‘倒’가 ‘도착하다’란 ‘ 到’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과 사무실에 복이 오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중국인이 숫자 8을 좋아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에 열린 것도 무관하지 않다. 이는 八(빠)의 발음이 ‘돈을 벌다’라는 뜻의 ‘发财’의 ‘发(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실 八과 发은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로는 발음 구분이 분명하지만, 홍콩과 광동성 일대에서 많이 쓰는 광동어로는 발음이 상당히 비슷하다. 8자가 많이 들어간 전화번호나 자동차 번호판은 웃돈을 받고 거래가 되는데 ‘168’이라는 숫자는 ‘계속 돈을 번다’는 ‘一路发’와 발음이 비슷해 더욱 인기다.



우리나라의 결혼식 폐백처럼 중국인들도 신혼 부부에게 대추와 밤을 주는데 이는 대추(枣)와 밤(栗子)이라는 글자가 ‘빨리 아들을 얻어라’는 뜻의 ‘早,立,子’ 세 글자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국어의 시에인은 생활 속 ‘금기’를 담은 내용도 많다. 중국인들은 과일 배(梨)를 쪼개서 먹지 않고, 통째로 먹기를 권한다. 배를 자른다는 ‘分梨’가 이별을 뜻하는 ‘分离’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은 병문안을 갈 때 과일바구니를 즐겨 선물하는데 상하이 토박이들은 과일바구니에 사과를 넣지 않는다. 보통화가 아닌 상해어로 사과(苹果)의 발음이 ‘병으로 죽다(病故)’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결혼식이나 생일파티 선물로 우산을 주는 것은 실례인데 ‘우산(伞)’의 발음이 ‘헤어지다(散)’와 같은 이유다.



어업을 주로 하는 고장에서는 생선을 먹을 때 생선의 한쪽 면을 다 먹은 뒤 가시를 골라내고 계속 먹는다. 생선을 뒤집어서(翻) 반대쪽 면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뒤집다’라는 말이 ‘배가 뒤집어진다’라는 뜻으로 이어지는 것을 꺼리는 이유에서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는 오이나 박 종류(瓜)를 먹기를 꺼리는데 발음이 과부(寡)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결혼식 웨딩카를 준비하는 일에서도 시에인과 관련된 금기가 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자동차 브랜드 아우디(Audi)는 중국에서의 브랜드명이 ‘奥迪’이다. 또 상하이에서는 택시로 흔히 쓰이는 폭스바겐의 세단 차종 ‘산타나’는 ‘桑塔纳’라고 쓴다. 그런데 웨딩카로 아우디가 앞에 가고 산타나가 뒤를 따르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아우디의 앞 글자와 산타나의 앞 글자를 순서대로 이으면 ‘실의에 빠지다, 낙심하다’는 뜻의 ‘懊丧’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시에인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는 글이 유행한다. 최근에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北京就是背景,上海就是商海。理想就是离乡,誓言就是失言。男人就是难人,老公就是劳工。해석하자면 “베이징은 배후(백그라운드)이고, 상하이는 (경쟁과 위험이 가득한)상업계이다. 이상(을 쫓는 것)은 고향과 가족을 떠나는 일이고, 굳은 맹세는 말실수일 뿐이다. 남자는 어려운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고, 남편은 그저 노동자이다.”라는 말이다. 중국에서도 원대한 꿈을 좇으며 남자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사는 일은 퍽 고달픈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