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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타고 뉴욕을 거쳐 RDU(Raleigh-Durham) 공항에 도착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절반 이상이 지나 5개월이 남았습니다. 연수 나오기 전에 인사를 드리니까 회사 선배들이 “1년은 금방이다”고 입을 모았는데 정말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지난 7개월을 돌이켜 보면 후회스러운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만약 시간을 돌리는게 가능하다면 정말 알차게 보낼 자신이 있습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기 보다 남은 5개월을 후회가 적도록 해야겠지요.
후회가 적도록 하려면 시행착오를 줄여야 합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출국 준비를 거쳐 초기 정착 및 현지 생활을 순항시켜야 하는거죠. 연수의 성공 여부는 시행착오를 얼마나 적게 하는가, 그리고 빨리 줄이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첫번째 조언으로 ‘부부가 최대한 협력하라’고 강조합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 그대로 모든 일을 부부가 상의하고 합의점을 이끌어내고 진행시키라는 겁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아시다시피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테러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난 연수생활이지만 유례없는 사건을 맞아 가만히 지낼 수 없었습니다. 기사거리를 보니까 현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솟아 올랐구요.
그래서 본사와 연락하니까 워싱턴에 가라더군요. 9월 11일 오후 3시에 차를 몰고 집을 나섰습니다. 워싱턴은 4-5시간 거리이지만 중간에 주유소 직원이 도로가 막혔다고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빙빙 돌아가서 밤12시경 도착한 뒤 열흘을 지냈습니다.
문제는 제가 워싱턴에서 머무는 동안 채플힐의 집 살림이 완전히 흐트려졌다는 겁니다. 아내는 차가 없고 영어가 안돼서 이만저만 고생한게 아닙니다. 제가 우체통 열쇠까지 갖고 떠난 바람에 공과금 통지서가 쫙 밀렸구요.
그일을 겪고 저는 가능한 모든 일을 아내와 같이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장보기, 애들 학업 지도, 세금과 보험 처리, 차 정비, 여행 준비 등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아내에게 알려주려 했습니다. 오리엔테이션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전기, 전화, TV 수신료의 경우 전에는 저 혼자 처리했습니다. 아내는 요금이 얼마나 나오는지, 어디다 내야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같이 차 타고 가서 공과금 처리하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요즘은 일일이 다니는게 힘들어 자동이체 시킵니다.
학교에서 애들 문제로 담임이 보자고 하면 물론 같이 갑니다. 무슨 문제로 그러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미리 상의하고 준비하는 겁니다. 이런건 한국에서는 모두 아내의 소관사항이었습니다.
자녀가 둘이라면 부부가 한명씩 맡아서 숙제를 봐주고 매일 영어책을 읽어주세요. 애들 영어 책 읽어주는게 장난이 아닙니다. 저는 뉴욕 타임스는 사전없이 읽지만 애들 책은 사전을 몇번 들춰야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부부가 같이 애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면 애들은 물론 어른들 자신의 영어공부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부부애, 가족의 화목을 체험할 소중한 기회가 된다는 겁니다.
아내의 영어 역시 남편이 도와줘야 합니다. 아내의 영어가 유창하지는 못해도 더듬거리며 의사를 전달하는 Survival 수준은 돼야 부엌 오븐이 고장났을 때 관리 사무소에 얘기하잖아요. 이게 안되면 남편이 모든걸 처리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학업에 지장을 받습니다.
차를 몰고 지리를 익히는 것도 마찬가지. 한동안은 저 혼자서 차를 몰았지만 요즘은 가급적 아내에게 맡깁니다. 그래서 장을 보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병원은 어디 있는지 알도록 만듭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부부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채플힐에서 플로리다의 올랜도까지 12시간을 달릴 때 중간중간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겼습니다. 둘이 번갈아 쉬며 운전하지 않았다면 훨씬 힘들었을 겁니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협력은 절대적입니다. 목적지가 어디이고 거기를 가려면 어느 도시, 어느 거리를 지나야 하는지 지도를 보고 외워 뒀다가 대강 이쯤에서 얼마를 더 달리면 되겠다, 여기서 좌회전해야 한다는 식으로 알려주면 운전이 훨씬 편하고 안전하니까요.
또 하나. 모든 집안 일에 애들을 참여시키세요. 미국 와서 가장 소중하고 보람있는 것 중의 하나가 애들의 견문이 엄청나게 넓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걸 더 북돋아 주는 과정에서 부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저희 부부는 장을 보러갈 때 애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Costco, Wal Mart, Harris Teeter, Best Buy, Border 등 가는 곳마다 애들 눈이 휘둥그레지고 즐거워 합니다. 조립식 가구를 사와서 함께 조립할 때 애들이 얼마나 즐거워 하는지.
한국에서 기자는 남편이나 아빠 노릇 제대로 못하게 만드는 직업입니다. 그런 점에서 1년 연수는 그동안 잃기만 했던 가장의 점수를 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어느 선배의 말이 떠오릅니다. “연수 다녀오면 집에서 3년은 버틸 수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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