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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시겠어요?”
2001년 7월 29일 오후 뉴욕을 거쳐 랠리-더램(RDU;Raeigh-Durham)공항에 도착해서 렌트카를 픽업하자 마중나온 유학생이 물었습니다. 13시간의 국제선 비행과 1시간 반의 미국 국내선 비행을 마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하기 괜찮냐는거죠.
겉으론 태연하게 “괜찮다”고 했지만 저는 잔뜩 긴장했었습니다. 피곤한건 둘째였습니다. 문제는 제가 운전을 거의 할 줄 몰랐다는 겁니다. 어차피 미국에서 운전이 필수이니 첫날부터 부닥치자는 마음으로 렌트를 한건데 막상 운전석에 앉으니까 덜~덜~덜~ 떨렸습니다.
유학생이 자기 차를 몰고 앞서고 저는 뒤따라 갔습니다. 그는 보통 60-70마일(96-112㎞)로 차를 몰았는데 저는 30마일(48㎞)이 넘으면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아파트까지 가는 길이 왜 그렇게 멀고 힘들게 느껴졌는지…
당시 제 일기를 뒤져보니까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차를 모는데 마음 속으로 많이 걱정됐지만 식구들이 걱정할까봐 내색않음. ○○○씨 차를 따라가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 약간 무서움. 그래도 꾸역꾸역 붙어감.” 미국에서의 운전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면허를 딴건 1997년 초입니다. 그런데 차를 사지 않아 운전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연수차 출국하기 전까지 핸들을 잡은건 다섯번 정도입니다. 그것도 옆에 누가 앉아서 봐줬었죠.
완전히 ‘장롱 면허’라 미국에서의 운전이 걱정돼서 출국 전에 2주 정도 도로 연수를 하려 했는데 일에 쫓기고 환송회 다니며 술 먹는 바람에 하루 2시간만 받았습니다. 그때 학원 강사가 “차 몰려면 한참 연수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한국 운전 면허증과 국제 운전 면허증에 이어 지금 미국 운전 면허증(노스 캐롤라이나)을 갖고 있습니다. ‘전문가적 식견’에서 보자면 미국에서 운전하기가 한국에서 운전하기 보다 훨씬 쉽습니다.
제가 ‘전문가적 식견’이라고 표현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건설교통부와 경찰청을 출입했었고 동아일보와 대한손해보험협회가 1996년부터 공동으로 추진해 온 ‘교통 캠페인’을 맡아 왔습니다.
교통 관련 기사를 참 많이 썼고 외국 출장을 자주 다녔는데 그러면서 1997년 초에 ‘사람잡는 운전, 사람 살리는 차 문화’라는 제목의 졸저를 냈고 2001년 7월 말 출국 직전에는 ‘ 출발, 교통 선진국’을 편저로 냈습니다.
교통안전공단과 녹색교통운동이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교통문화지수 개발 및 평가사업에 자문위원으로 2년간 참여했고 경찰청과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의 교통안전표어 전문 심사위원으로 3년간 위촉됐습니다. 교통방송에 1년간 고정 출연하고 세미나, 공청회에 발표자 또는 토론자로 많이 초청받았습니다.
전국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안전벨트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당신의 질서가 한국의 얼굴입니다’라는 식의 교통안전표어를 볼 수 있는데 전부 제가 7000-8000여편의 공모작 중에서 선정한 겁니다. 제가 심사해서 선정한 표어중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저도 크면 아빠처럼 운전할래요'(1999년 최우수작)입니다.
장롱 면허를 갖고 있으면서 교통문제에 대해 전문가 대접을 받았으니 내심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선수가 반드시 훌륭한 감독(코치)이 되는건 아니잖아요. 운전 못한다고 올바른 교통 문화를 얘기하지 말란 법이 없죠.
저 같은 장롱 면허 소지자도 금방 적응했으니까 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 운전 경험이 있는 분은 미국에서 운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몇가지를 알아두면 말입니다.
△ 도로 이름
미국은 대부분의 도로가 번호로 돼 있고 여기에 NORTH, SOUTH, EAST, WEST 등 방향을 알리는 글자가 붙어 있어 다른 주나 도시를 찾아 가기가 쉽습니다. (예:SOUTH-I 85, EAST-I 40, NORTH 15, SOUTH 501…)
대개 짝수는 동서 방향, 홀수는 남북 방향입니다. 작은 도로는 이런 번호가 없지만 지도를 보고 위치를 확인하면 됩니다. 아무리 작은 길도 지도에 다 표시돼 있습니다.
지도와 표지판을 보면 지명 뒤에 약칭이 많이 나옵니다. St=street, Ave=avenue, Rd=road, Dr=drive, Blvd=boulvard, Pl=Place를 말하는데 주소를 확인할 때는 정확히 봐야 합니다. (예:Penny Street과 Penny Road는 다른 도로)
△ INTERSTATE
미국 대륙을 가로 지르는 가장 큰 고속도로입니다. INTERSTATE를 줄여서 I라 하고 거기에 방향과 숫자를 붙입니다. 지도를 보면 하늘색 바탕에 방패 모양의 표지판으로 나옵니다.
10, 20, 40 등 짝수는 동서 방향으로 대륙을 관통합니다. I 10이 가장 남부 지역에서 동서 방향으로 대륙을 지나고 I 80과 90은 북부에서 동서 방향으로 대륙을 지나는데서 알 수 있듯 남부에서 북부로 올라갈수록 도로 숫자가 커집니다.
15, 35, 85 등 홀수는 남북 방향으로 대륙을 지납니다. 서부에서 동부로 갈수록 숫자가 커져서 I 5는 가장 서부, I 95는 가장 동부지역에서 남북을 이어줍니다.
구간에 따라서는 동서 및 남북 방향의 INTERSTATE가 겹칩니다. (예:I 40과 I 85가 일부 겹치면 도로 옆에는 I 40, I 85 표지판이 같이 나란히 서 있음)
△ BELTWAY
INTERSTATE와 같은 색깔, 같은 모양의 표지판이지만 숫자가 세 자리로 돼 있는데 대도시 주변을 도는 순환도로를 말합니다. (예:워싱턴 D.C.에는 I 395와 I 495, 뉴욕에는 I 278, I 495, I 678이 있음)
△ 기타 도로
-US(또는 FEDEARL) HIGHWAY : 지도에 잎사귀 모양으로 표시. INTERSTATE처럼 길지 않지만 몇개 주를 이어주는 고속도로. INTERSTATE처럼 두개 도로의 구간이 겹칠 수 있습니다. (예:US 15와 US 501이 겹치는 구간에는 US 15-501 또는 그냥 15-501로 표기. I 85와 15-501이 겹치는 구간은 표지판에 I 85, 15, 501이 같이 표기됨)
-State 도로 : 한국의 국도에 해당되겠군요. 동그라미안에 숫자 표시
-County 도로 : 지방도로. 직사각형안에 숫자 표시
-유료 도로 : 도로 이름에 TPK(Turnpike), HWY(Highway), EXPWY(Expressway)가 붙어 있으면 대부분 유료입니다.
△ BUSINESS
INTERSTATE는 해당되지 않지만 US HIGHWAY를 달리다 보면 BUSINESS로 표시된 도로가 나옵니다. 미국에 와서 한동안 헷갈렸습니다. BUSINESS는 본선에서 나와 옆으로 새는, 일종의 간선 또는 지선을 말합니다. 본선과 가는 방향이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도로입니다.
예를 들어 15-501을 달리는데 ‘EXIT 000, BUSINESS 15-501’이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이건 15-501 본선이 아닌 15-501 간선으로 나가는 출구를 알려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15-501 본선으로 계속 가려면 이 출구로 나가면 안 됩니다.
지도에는 BUSINESS를 BUS라는 약칭으로 표기하고 본선은 BY-PASS를 줄인 BYP로 표기합니다. (예 15-501 본선은 BYP 15-501, 간선은 BUS 15-501로 표기)
△ 방향 확인
한국에서는 표지판을 따라 가다가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방향 표시가 애매하게 돼서 자기가 맞는 길에 들어 섰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도로가 갈라지면 반드시 표지판이 있으니까 자기가 들어선 도로가 몇번 무슨 방향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I 40과 I 85의 일부 구간이 겹친다고 했는데 어느 지점에서 갈라집니다. 그러면 자기가 들어선 도로가 I 40인지 또는 I 85인지 알려 주는 표지판이 계속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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