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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시행착오 줄이기(2) 시간표’ 원고에서 학위 과정과 달리 비학위 과정은 연수의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므로 시간표를 만들어 연수를 진행시키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구체적으로 얘기하려 합니다.
비학위 과정 연수의 장점은 학부나 대학원 강의를 연수주제에 맞춰서, 그러니까 입맞에 맞춰서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학점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책을 읽고 강의에 참석하는게 가능하지요.
문제는 자기가 강의를 잘못 고르거나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을 때 ‘자유’가 ‘방종’ 또는 ‘나태’로 이어져 아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강의를 잘못 고르면 흥미를 잃고 방향을 완전히 상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가을학기 과목을 다시 보죠.
월 수 : 오후 2시20분-3시35분 정책분석, 오후 3시55분-6시25분 탐사보도
화 목 : 오전 9시10분-10시25분 화술, 낮 12시-오후 1시반 작문, 오후 1시반-2시반 발음
‘정책분석’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정책을 검토하고 수립하고 시행할지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과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대학원 과목입니다. 수강생은 40명. 그룹별로 특정 사례에 대한 문제점과 정책대안을 만들어 전체 학생 앞에서 발표합니다.
‘탐사보도’는 학부 과목으로 탐사보도의 본질, 방법, 문제점을 다뤘습니다. 수강생은 15명. 강의가 시작되면 탐사보도에 대한 강의와 토론에 앞서 교수와 학생들이 뉴욕 타임스에 실렸던 지난주의 주요 뉴스에 대해 먼저 얘기를 나눴습니다.
‘화술’은 학부 과목으로 정책 담당자들이 의회, 이익단체, 언론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설득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작문’과 ‘발음’은 대학이 아니라 ESL 과목입니다.
한 학기를 지내놓고 나서 스스로 평가해 보면 이렇게 만든 시간표는 아무리 점수를 후하게 줘도 100점 만점에 60점이 안 넘을 것 같습니다.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됐나.
제가 학부와 대학원에서 수강한 과목들은 모두 좋았습니다. 강의 주제와 방법이 아주 효과적이었고 교수들도 제게 친절했습니다. 문제는 제 영어가 짧아서 소화가 제대로 안 됐다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입맛에 맞지 않고 잘 소화하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지난 학기 수강한 과목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밥있는 밥상을 보고도 즐기지 못할 때 답답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학부와 대학원에서 과목을 3개나 들으려 했던건 아닙니다. 첫 학기에는 1과목 정도 듣는 대신 모든 시간을 영어에 주력하려 했습니다.
ESL 회화와 방송 라디오를 활용해 귀를 뚫고 입을 트게 하고 연수주제와 관련된 책이나 논문을 읽으며 Fundamental을 튼튼히 한 뒤 두번째 학기에서 연수 주제를 심층적으로 공부하려 했던 겁니다. 그러나 본의와 달리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1주일에 5회, 하루에 2시간반씩 가르치는 ESL 정규 회화반이 있습니다. 필기 배치고사(Placement Test)와 인터뷰를 거쳐 Level(1-6)을 결정하는데 필기 시험에서 100점 가까이 받는 바람에 가장 높은 6단계의 대기자 명단(Waiting List)에 올라갔습니다.
정규 회화반을 수강하지 못하니까 시간이 많이 남아 할 수 없이 대학과 대학원에서 듣는 과목을 1개에서 3개로 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1주일에 두번씩 하는 ESL의 작문과 발음 과목을 듣게 됐습니다.
당초 계획과 달리 학부와 대학원 과목을 많이 듣게 됐지만 두마리 토끼-영어와 대학 강의-를 잡기가 힘든 상황. 욕심은 많고 능력은 못 미치니 초조해졌습니다.
시간표대로 강의실을 따라 다니고 이것 저것 손을 많이 댔지만 남는 것, 잡히는 것은 별로 없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찾아서 정리해 놓은 것이 그나마 다행.
이번 학기 역시 ESL 정규회화는 대기자 상태여서 1주일에 두번 하는 회화반과 ‘미국 문화’를 수강하게 됐습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는 지난 학기처럼 3과목을 골랐습니다.
월 수 : 오전 11시15분-오후 1시15분 회화, 오후 2시20분-3시35분 인터넷 정치
화 목 : 오전 10시55분-오후 12시10분 세계화와 정책분석, 오후 3시40분-6시10분 의회론, 오후 6시반-8시반 미국문화
아직 학기가 진행중이지만 지난 학기 연수를 100점 만점에 60점이라 가정하면 이번 학기는 80점은 될 것 같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알게 모르게 영어가 많이 늘었고 지난 학기의 경험을 토대로 미국 대학의 강의에 좀 더 잘 적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강의를 잘 알아듣는건 아니지만 가끔씩 질문하거나 교수의 질문에 답할 정도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과목의 교수들이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기도 하구요.
시행착오 뒤의 보람이라고 할까요. 그런걸 예정된 연수기간의 절반을 보내고서야 느끼니 참 안타깝습니다. 실천 가능한 목표와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아는건 어려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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