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 아빠의 미국 온라인 탐구생활2
– 온라인 퍼스트가 된 미국 실용 공교육 현장
지난해 주위의 우려와 만류에도 미국행을 결심한 건 세 딸에게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며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안가도 여행을 다니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산불과 코로나로 한동안 여행 계획을 접고 ‘집콕’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 미국 초등학교의 온라인 교육 현장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세 딸이 미국 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받기 시작한 건 올 3월부터다. 미국에 온 지 7개월 만이었다. 그 전까진 아이들이 줌(Zoom)으로 온라인 수업만 받았다. 지난 3월부터 오전엔 여전히 온라인 수업이지만 일주일에 2번씩 오후에 2시간 동안 학교에 가는 하이브리드 모델로 바뀌었다. 우리 아이들로선 지난해 봄부터 한국 학교들이 문을 닫은 걸 포함하면 1년 3개월 만에 교실에서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첫 등교를 하며 아이들의 얼굴에 서린 긴장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6월 초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아이들이 미국 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각자 30시간도 채 안됐지만, 그나마 아이들이 컴퓨터 화면으로 만나던 미국 친구들을 직접 교실에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개 무량했다.
지난 3월 첫 등교일. 부모들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동차에 있어야 했다.
세 아이 모두 온라인 수업을 받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절실했던 건 공간의 중요성이었다.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미국 연수를 준비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살 지역과, 집, 차를 고르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UC버클리 한인학생회 홈페이지를 통해 집과 자동차, 살림살이를 한꺼번에 넘겨받았다. 나처럼 UC 버클리에 방문연구원으로 와서 생활한 후 귀국하던 한국인이 살림살이 일체를 넘기는 이른바 ‘무빙 세일’(Moving Sale)을 받은 것이다. 수월하게 미국 생활을 시작할 줄 알았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집과 차를 무빙 세일로 받는 것이 초기 정착엔 확실히 장점들이 많다. 하지만 ‘펜데믹’ 시대를 간과한 것이 절반의 실패였다.
다섯 가족이 생활할 집을 고르면서, 처음엔 방 3개의 타운하우스를 찾았다. 하지만 방2개 아파트가 싸게 나오길래 덥석 잡았다. 방 두개에 조그만 뒷마당이 딸린 단층 타운하우스로 단지 내 작은 수영장도 있었다. 살인적인 집값으로 악명 높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월세는 예상 외로 저렴했다. 방 2개지만 아이들이 어리니 한 방에 재우고, 어차피 여행을 다닐 거면 집에 있는 시간이야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한국에서 덜컥 계약을 완료하고 건너왔다. 나처럼 무빙 세일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보통 질로우(Zillow)와 같은 부동산 중개 사이트를 통해 집을 검색해 계약한다.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이메일을 보내고 자신의 신분과 재정도 증명해야 한다. 내가 넘겨받은 집은 법인 소유로 일반 중개 사이트엔 매물을 올리지 않았다. 애초 이 집을 찾았던 사람도 직접 미국에 와서 발품을 팔아 구했다. 저렴한 월세에 비해 학군도 좋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후회가 커졌다. 아침부터 아이들 모두 줌 수업을 해야 하는데 공간이 부족했다. 실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날 오전에는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온라인 수업을 받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여는 사람은 아침 8시부터 30분 동안 영어 보충 수업인 ELD(English Language Development) 수업을 받는 초등학교 4학년 큰 딸이다. 첫째는 ELD 수업을 들은 후 오후까지 아이들이 함께 자는 방에서 혼자 컴퓨터로 줌 수업을 받았다. 또 다른 방에선 와이프가 매일 아침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제공하는 영어 수업을 온라인으로 들었다. 둘째와 셋째는 오전 9시부터 거실에서 각자의 노트북과 태블릿으로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는 헤드셋을 끼고, 킨더인 막내는 스피커를 켠 채 수업을 듣는다. 그만큼 가구와 장비도 많아져야 했다. 애들이 쓸 노트북과 태블릿, 헤드폰은 기본, 책상과 소파까지 추가로 사야했다. 코로나에 산불까지 겹치면서 집콕 생활은 더 늘어났고, 공간의 중요성은 그만큼 커졌다. 오전 수업만 있는 수요일을 제외하면 초등학생들의 수업은 보통 오후 2시 전후에 끝난다. 킨더들의 온라인 수업은 하루에 1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난 세 아이들의 컴퓨터를 세팅한 후엔, ‘5분 대기조’가 된다. 수업 중 갑자기 내려온 지시나 과제, 프로젝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1년 가까이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과 숙제를 옆에 앉아 도와주다 보니 애들보다 나의 영어 실력이 더 늘어난 거 같다.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고 영어공부 하라는 말이 와 닿았다.
미국에서 직접 집을 구하거나, 한국에서 사전 계약하는 것 모두 장단점이 뚜렷하다. 방문연구원 집을 물려받는 경우 대부분 신분들이 뚜렷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미국에 와서 직접 집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애초엔 월세와 교통, 그리고 아이들 때문에 학군을 우선 참고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교통 환경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동안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살면서 바트(전철)를 타 본 적은 단 한번이다. 캐나다 국경 근처에 있는 글래시어 국립공원을 비행기로 다녀오면서 오클랜드 공항에서 집 근처 역까지 바트를 탄 것이 유일하다. 버스는 단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 내 주변 한인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년 동안 시내 식당에서 밥을 먹을 일도 거의 없었다. 식당 음식은 온라인으로 배달 받거나 미리 주문한 음식을 직접 가서 픽업했다. 집을 선택했을 때 또 하나 눈 여겨 봤던 건 집 근처에 있던 공원이었다. 공원 내 테마파크(?) 수준의 놀이터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지난 봄까지 놀이터가 폐쇄돼 이 역시 이용할 수 없었다. 아파트 단지 내 수영장도 최근 6월에야 문을 열었다.
그나마 코로나 시국을 거치며 지금 사는 아파트가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작은 뒷마당이다. 외출 자제령이 떨어졌을 때도 마당에서 운동을 하며 상추와 같은 채소를 키우고, 아이들은 마당에 설치한 트램폴린에서 뛰어놀았다.
지난해 할로윈. 집에서 각자 분장을 한 아이들이 컴퓨터 화면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지켜본 미국 공교육은 예상 외로 실용적이고 합리적이었다. 첫째와 같은 초등학교 고학년들은 구글 클래스룸과 줌 사용이 필수적이었다. 줌을 통해 수업을 듣고, 구글 클래스룸으로 과제나 퀴즈를 푸는 식이다. 지금은 한국 학교에서도 구글 클래스룸을 사용한다고 들었지만, 지난해 미국에서 처음 만난 구글 클래스룸은 생소했다. 기존 노트북에 아이의 미국 구글 클래스룸 계정을 등록하려고 했지만, 이미 내가 사용하는 한국 구글 계정과 계속 충돌이 생겼다. 결국 아이의 학교에서 크롬북을 대여해 구글 클래스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지켜본 구글의 위력은 막강했다. 수학 시간엔 구글 엑셀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부터 배우고, 사회 시간엔 캘리포니아 주의 대표 동물이 무엇인지 구글로 검색해 해당 이미지를 업로드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구글의 생태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영어, 수학, 과학 등 전담 교사가 있는 고학년들은 수업 시간에 맞춰 해당 교사들의 줌 링크도 직접 찾아가 들어야 한다. 처음엔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가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줌 링크가 잘못 등록돼 아이들이 수업을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일부 나이 많은 교사는 컴퓨터 화면에 있는 아이들의 출석체크에 수업 시간 절반을 소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가 온라인 수업에 점점 익숙해지는 모습이었다. 구글 클래스룸을 사용하지 않는 저학년들은 교사에 따라 학년마다 선호하는 앱이 다르다. 학교가 사용하는 포털과 앱도 따로 있다. 최근 아이들이 다닌 학교에서 2021년 가을 학기에도 온라인 수업을 원하는 가정을 접수 받고 있다. 미국인들의 재택 근무가 하루 아침에 없어지지 않는 이상,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결합된 하이브리드형 교육도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수업 중 유튜브 영상을 따라하는 막내
아이들이 배우는 수업 콘텐츠도 실용적이다. 교재들은 교사마다 다르고, 수업 시간엔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을 적극 활용한다. 운동하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줘 아이들이 따라하게 하고, 책을 읽어주는 유튜브를 봐야 숙제를 할 수 있다. 전세계 각국의 수많은 기념일도 중요한 수업 콘텐츠다. 아일랜드의 대표 기념일인 ‘생 패트릭 데이’엔 모두 녹색 옷을 입고 아일랜드의 문화와 역사를 배운다. 할로윈 때는 아이들 모두가 할로윈 복장을 입고 수업을 들으며 컴퓨터 화면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지난해 9월에는 둘째의 수업 시간에서 한국에선 어떻게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지 소개하는 동영상을 수업 시간에 틀어줘 놀란 적이 있었다. 수업 진도는 교사들이 일주일 전 자신들이 사용하는 앱과 이메일을 통해 온라인에 미리 공유한다. 코로나로 인해 교사와 아이들의 직접 만남은 줄어들었지만, 교사와 학부모와의 대면은 오히려 늘어났다. 매주 아이들이 해야 하는 과제를 제출하고 다음주 수업 교재를 받아오는 게 아이들이 아닌 학부모 몫이 됐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세 딸 덕분에 일주일에 최소 3번은 학교를 찾아야 했다. 갈 때마다 담임들을 만나 아이들에 대한 간단한 평가와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의 진도나 상황을 일일이 챙기는 데 한계가 있는 온라인 수업을 보완하기 위해 교사들은 매일 구글 클래스룸이나 앱에 그날 해야 할 과제와 숙제를 올린다. 아직 배우지 않은 수학 공식이나 과학 개념에 대한 설명도 숙제로 주어질 때가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코로나로 인해 기존 교사들의 업무가 학부모들에게 전가됐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온라인 수업 100일 기념으로 각자 만든 종이 안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 둘째반
내성적인 우리 아이들로선 온라인 수업이 잘 맞는 편이었다. 영어를 못해도 가만히 들으면 되기 때문이다. 대신 숙제는 나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와 같은 외국인에게 온라인 수업의 가장 큰 한계는 영어를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 연수가 결정되면서 영어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급한 마음에 집 근처 대형 영어 학원을 보내려 했지만, 영어 테스트에서 떨어져 원어민 수업은 물론 해당 학원에 등록도 못했다. 가장 낮은 레벨의 수업도 들을 수준이 안된다는 이유였다. 영어를 사실상 한 마디도 못한 채 미국에 온 아이들로선 온라인 수업만 진행되면서 친구를 직접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서 그나마 영어 듣기는 조금씩 늘어났지만, 말문은 좀처럼 트이지 않았다. 이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던 건 ELD 클래스였다. ELD나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수업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가정의 아이들에게 주정부 차원에서 제공된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할 때 영어를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힐 경우, 영어 시험을 거쳐 해당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ELD 수업을 받는 외국 출신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지만, 지금 아이들 학교에선 학년당 2~3명 수준이었다. 전담 ELD 교사가 있는 학교도 있지만, 예산이나 기부금이 부족한 학교는 학년당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ELD 수업을 옆에서 지켜본 결과,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미국에서 태어난 네이티브들이었다. 아이들의 ELD 수업처럼 캘리포니아 주민들도 각자 동네 카운티의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간단한 영어 테스트를 거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들었던 학교의 ELD 클래스
어른이나 아이들이 캘리포니아에서 공교육을 받기 위해선 해당 비자와 함께 캘리포니아 그 지역에 살고 있다는 ‘거주지 증명서’ 2개를 학교나 해당 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전기 요금이나 인터넷 요금 고지서, 보험이나 차량 등록증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여기까진 기존 알려진 ‘족보’들과 동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시대. 집 렌트 계약만 이뤄지면 모두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신청해 받을 수 있다. 참고로 캘리포니아의 경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에겐 신체검사서와 치아검사서를 추가로 요구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검사서는 쓸모가 없다. 캘리포니아 현지 의사가 작성한 검사서만 인정한다. 신체 검사나 치아 검사는 한국에서 든 보험으로는 대부분 커버가 되지 않는다. 과거엔 비싼 의료 비용과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한인 의사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한가지 팁을 더 한다면 구글 리뷰를 적극 활용하면 더 좋다. 내 경우엔 동네에서 구글 리뷰가 높은 소아과를 선택해 메일을 보내 세 딸의 건강검진 비용을 문의했다. 답장은 전화로 왔는데, 3명이 함께 받는 조건으로 1인당 50달러씩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치과는 한인 치과를 이용했지만, 이 역시 할인은 가능했다.
학교 학부모들이 기부를 위해 참가한 온라인 와인 시음회
미국 교육 시스템에서 지금도 적응되지 않는 건 학교 기부 문화다. 대놓고 현금을 펀딩해달라는 건 기본이다. 아이들이 읽은 책의 페이지에 따라 돈을 기부하는 독서 챌린지도 연다. 아이가 10페이지를 읽으면 10달러, 20페이지를 읽으면 20달러를 기부하고, 아이들이 읽은 페이지(부모의 기부금)들은 홈페이지에 공유되고 시상까지 한다. 학교나 학부모들이 주최하는 골프나 와인 행사는 그나마 덜 노골적이지만 학부모들이 더 자발적이다. 한 번은 학교 기부를 위한 온라인 와인 시음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한 학부모와 관련 있는 와인 업체가 주최한 시음회였다. 참가비 120달러를 내면 이를 주관한 학부모 집에 직접 가서 해당 와인을 수령한다. 금요일 저녁 다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 와인 시음회를 벌인다. 각자 자신과 아이들을 소개하고, 와인 전문가의 설명이 이어졌다. 시음회가 끝날 무렵 일부 학부모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집에 있는 와인을 꺼내 경매에 부쳐 팔린 금액을 학교에 기부하는 행사도 벌였다. 코로나 시국에 미국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는 길이 멀다고 느껴진 하루였다. 반전은 캘리포니아 로컬 와인으로 구성된 온라인 시음회가 생각보다 알찼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