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 아빠의 미국 온라인 탐구생활3
– ‘돈 낸 만큼, 아는 만큼’ 돌아오는 사교육
온라인 공교육으로 아이들의 영어 학습에 한계를 느끼며 눈을 돌린 곳은 다양한 형태의 사교육이었다. 세 아이 중 미국 사교육을 처음 접한 건 만 6살인 막내였다. 방 2개짜리 집에서 아이들 3명을 계속 온라인 수업만 받게 할 공간도, 여력도 없었다. 알파벳도 모르는 막내에게 온라인 수업은 가혹하기도 했다. 결국 동네에서 대면 수업을 하는 사립 유치원을 찾아 보냈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비싼 학비를 감수했지만,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았다. 세 아이 중 가장 먼저 영어 말문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유치원에 보낸 지 석 달 만에 벌어졌다. 유치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4명이 한꺼번에 발생해 막내도 자연스럽게 그만뒀다. 캘리포니아에선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던 사람 중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도 그 사람의 동선은 물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자가격리도 셀프다. 2주 동안 셀프 격리 후, 막내도 언니들이 다니는 공립 학교로 옮겼다.
막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모든 학부모와 아이들이 차에서 코로나 테스트를 기다리는 중
첫째와 둘째의 경우 동네 친구들이라도 만나게 해주기 위해 지역 레크레이션 센터에서 운영하는 ‘Enrichment Program’에 보냈다. 미국 레크레이션 센터는 우리의 커뮤니티 센터와 비슷하다. 미국의 저력이 레크레이션 센터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인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Enrichment Program’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심화학습 과정이지만, 사실상 돌봄 센터로 보면 된다. 아이들은 집 대신 레이크레이션 센터에서 학교 온라인 수업을 받고, 센터에 있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리더가 아이들의 수업과 과제를 도와준다. 시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치고는 가격이 비쌌지만 전반적인 취지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적합할 것으로 기대했다.
결론적으로 오판이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아무 돌봄도 받지 못하고, 또래 센터 아이들과 말도 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나중에 미국 학부모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돌봄 센터를 보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학교 돌봄센터는 대기자만 50명이 넘어 적어도 3~4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나와 아이들 모두 만족했던 건 골프와 테니스, 수영 같은 스포츠 프로그램이었다. 골프와 테니스의 경우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배울 수 있고, 코로나 상황에서 또래 아이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유일한 접점이 됐다. 우리 아이들이 참가한 골프 프로그램은 ‘The First Tee’라는 프로그램이다. 미국 전역의 골프장들과 연계돼 있어, 레슨이나 실전 라운딩 모두 골프장에서 이뤄진다. 수업은 골프 스킬을 가르치기보다는 게임과 단체 운동을 위주로 골프에 친숙하게 한다. 한 달에 한번씩 아이들과 직접 라운딩을 하며 골프 관련 규칙과 예절을 습득하도록 해준다. 추가 비용을 내면 한국 중년 골퍼들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대디 캐디(Daddy Caddy)도 주말에 체험할 수 있다. 아이들의 주말 토너먼트를 신청하면 아빠나 엄마가 캐디를 하며 골프백을 메고 스코어를 계산해야 한다. 동반자 스코어까지 기록해야 되기 때문에 토너먼트 내내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부모들의 신경전도 남다르다. 그린에서도 이른바 ‘OK’ 없이 진행돼 스코어는 안 좋지만, 아이들에게 스포츠 룰을 접하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 레크레이션 센터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도 괜찮았다. 레고나 그림, 목공예 등은 인기가 높아 등록을 시작하는 날짜 아침부터 이른바 ‘광클릭’을 해야 참가할 수 있다.
아이들의 캐디로 함께 참가했던 키즈 골프 토너먼트
처음부터 영어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가장 애를 먹었던 건 학교 진도를 따라잡는 것이었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온라인 수업을 받았지만 또래들에 비해 진도가 오히려 떨어져 있었다. 영어와 수학, 과학 등은 시험이나 숙제를 받아도 문제조차 해석하지 못해 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미국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난이도가 높아지고 진도가 빨라진다. 주정부 차원에서 치러지는 4학년 영어 시험의 경우 토익과 비슷하고, 수학의 해법 방식도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방법과는 달랐다. 과학은 난해한 용어들 때문에 나조차도 구글 검색을 추가로 해야 했다. 결국에는 아이들의 학습 진도를 보강해 주기 위해 학습지와 같은 한국식 레슨부터 개인 과외도 시켰다. 넥스트도어(Nextdoor)와 같은 앱을 통해 근처에 사는 베이비시터를 검색해 보충 수업을 부탁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아이들이 정착한 것은 큰 딸의 학교 친구 집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과외를 받는 것이었다. 엄마가 한국인인 그 집엔 대학생과 고등학생 언니들이 있어 아이들이 숙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어는 몰라도 한국 문화에 익숙한 10대들이라, BTS 이야기와 같은 친숙한 이야기로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미국 사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품질을 ‘염탐’하기 위해선 그루폰과 같은 소셜 커머스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그루폰의 경우 자신이 사는 지역을 설정해 검색하면 동네 수학 학원부터 골프 레슨, 서핑 강습 등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4~8회 이용권을 대폭 할인해 판매한다. 문제는 한 번 이용해 보고 마음에 들 경우엔 인상된 가격이나 정가로 들어야 한다. 동네에 따라 다르지만, 캘리포니아의 경우 그루폰이나 액티비티 히로 같은 사이트를 통해 아이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구글 리뷰와 평점을 고려해 프로그램을 등록하는 게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다. 이렇게 찾아 낸 것 중 하나가 미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리딩 학원 이용권이었다. 이 학원은 사전 테스트를 통해 문법이나 발음, 독해 능력 등 아이의 수준을 평가한다. 테스트 결과, 4학년인 첫째를 제외하곤 2학년 둘째와 킨더인 셋째는 또래들의 학습 능력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첫째 역시 또래와 공부하기엔 큰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아이들의 영어와 학습 능력이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던 내가 반성한 순간이었다.
동네 레크레이션 센터에서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픽업하기 위해 기다리는 학부모 차들.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가거나 데리고 올 때, 부모들은 차에서 코로나와 관련한 질문을 받는다.
캘리포니아 북부에도 한국식으로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 한국이나 일본식 학원들은 매일 진도를 맞추기 위해 아이들의 복습과 예습은 필수다. 반면 미국 학원들은 추가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 주어진 세션(수업) 이외엔 복습이나 예습이 필요 없다. 시간당 강사 1명이 3명의 학생을 맡아 수업 질도 높은 편이다. 수업을 듣고 난 아이들은 포인트를 받고, 해당 포인트를 모으면 큰 인형이나 장난감을 살 수 있다. 이 때문에 해당 학원은 순식간에 우리 아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학원이 됐다. 물론 그 학원은 아이들이 다닌 사교육 프로그램 중 시간당 비용이 가장 비쌌다.
아이들이 다닌 영어학원. 시설과 내용은 좋았지만 가격이 비싸다.
지난 6월 방학 이후 아이들을 보내는 곳은 여름 캠프다. 한국에 비해 긴 여름방학이 있는 미국에선 여름 캠프들이 종류도 많고 활발하다. 등록을 빨리 하면 할수록 할인율이 높아, 대부분 봄부터 등록을 받는다. 우리는 여름 캠프를 종류별로 다양하게 등록해 참가해 봤다. 둘째와 셋째가 처음 참가한 여름 캠프는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 초등학교에서 직접 주관하는 여름 캠프였다. 오전에 3시간 동안 영어 리딩과 독서를 위주로 진행했다. 지역 예산이 편성돼 참가비도 무료였지만 만족도도 높았다. 한 달 정도 다니면서 아이들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 시간엔 부족한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회가 됐다. 첫째도 신청했지만 학교에서 3명을 모두 받아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참가했던 여름 캠프. 학부모들이 안으로 들어가진 못하고, 사진과 영상은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첫째는 동네 레크레이션 센터에서 운영하는 여름 캠프에 참가했다. 주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 대기자 명단에 올려 뒀는데 빈 자리가 생겨 등록할 수 있었다. 과거 돌봄 센터에 보냈던 경험이 우려됐지만, 이번 여름 캠프는 전혀 달랐다. 수영과 물놀이, 게임을 위주로 아이들의 참여를 적극 독려했다. 해당 캠프들이 끝난 이후엔 한국인들이 미국까지 와서 보낼 정도로 인기 있는 여름 캠프, 그리고 미국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고 들었던 사립 캠프도 2주씩 보냈다. 아이들의 만족도는 미국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캠프였다. 보드게임, 수영, 승마, 카약 등 매시간 알차게 구성된 프로그램의 캠프를 마친 아이들은 집에 돌아온 저녁에도 자신들의 하루 경험담을 풀어놓느라 쉴 새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