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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셋 아빠의 미국 온라인 탐구생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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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셋 아빠의 미국 온라인 탐구생활4

– 코로나가 바꾼 여행의 정석

지난 5월 15일 토요일, 가족들과 캘리포니아 120번 도로를 타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달리고 있었다. 요세미티로 가는 120번 도로는 꾸불꾸불한 데다 심한 경사로 악명이 높다. 그나마 두번째 방문이라 마음은 여유로웠다. 공원 내 롯지까지 도착 한 시간을 앞둔 오전 11시 30분. 와이프가 앉아 있던 조수석의 앞 타이어에서 갑자기 ‘펑’ 하는 굉음과 함께 흰색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다행이라면 매표소를 앞둔 정체로 천천히 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기우뚱해진 차를 갓길에 주차했다. 와이프와 아이들을 보니 놀란 것 외엔 큰 이상이 없었다. 차에 내려 확인한 앞쪽 타이어는 펑크로 너덜거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은 자동차 보험을 들었던 한인 에이전트. 휴대폰을 열었는데, 산속이라 전화가 안 터졌다. 트렁크를 찾아보는데 스패어 타이어도 없었다. 2008년식 미니밴을 사면서 정작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수석 앞 타이어 펑크가 난 미니밴. 원래 올라가던 길에서 사고가 났는데, 갓길이 좁고 위험해 반대쪽 갓길에 주차했다.

조수석 앞 타이어 펑크가 난 미니밴. 원래 올라가던 길에서 사고가 났는데, 갓길이 좁고 위험해 반대쪽 갓길에 주차했다.

와이프와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왔던 길을 혼자 걸어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면서 봤던 길가의 한 호텔이 기억났다. 30분 넘게 걸어가자 호텔이 보였다. 호텔 주차장 입구에서 LTE 신호가 한 가닥 잡혔다. 곧바로 한인 에이전트에게 연락했는데 사고를 접수하는 보험사 콜센터 번호를 알려주는 것 외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미국 보험사에 사고(클레임)를 접수하는 건 우리와 비슷하다. 내가 든 보험은 우리로 치면 저가형 다이렉트 보험. 한국과 다른 점은 견인을 요청해도 보험사 직원이 직접 오지 않고 인근 로컬 자동차 서비스 센터와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다. 전화 신호가 오락가락하며 몇 번이 끊어진 끝에 겨우 한 시간 반 거리의 서비스센터와 연결됐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100달러 추가 요금을 내야 했다. 신용카드 결제를 위해 또다른 자동응답 번호로 넘어가는데 그 사이 전화 신호가 또 끊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사고 3시간 반 만인 오후 2시에야 사고를 접수할 수 있었다. 견인차 도착 예정 시간은 오후 5시였다.

사고를 접수하고 다시 와이프와 아이들이 있는 차로 되돌아 가 안전을 확인했다. 견인 차량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드라이버와 통화하기 위해선 전화가 터지는 호텔 주차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내 차는 스패어 타이어가 트렁크가 아닌 2열 조수석 아래에 붙어 있었다. 다시 차에 가서 확인해 보니 스페어 타이어가 있었다. 다시 호텔로 내려와 보험 에이전트에게 이 사실을 알려줬는데 이미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30분 이상씩 걸리는 호텔과 차 사이의 산등성을 계속 오르내렸고, 예전 요세미티에서 경험했던 8시간 등산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보험사 직원에 따르면 견인차가 와도 단순 운전사일 수 있기 때문에 즉석에서 스페어 타이어 교환이 안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 황당한 건, 견인을 하더라도 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차에 타지 못한다는 것이다. 견인이 돼도 아무 소용이 없었던 셈이다. 결국 견인 서비스 신청을 취소하고 스페어 타이어를 교환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다시 불렀는데, 오늘까지 못 올 수 있다는 절망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전화를 걸 수 있었던 호텔에선 토요일 오후라 빈 방이 없었다. 공원까지 오가는 셔틀 기사들도 퇴근했다.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호텔 로비에 ‘피신’시키고 혼자 스페어 타이어 교환을 시도했다. 강원도 운전병 시절로 돌아가 스페어 타이어 교환을 시도했지만 육각 렌치가 마모돼서 타이어 분리조차 쉽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기 위해 호텔 내려와 인근 콜택시를 찾았다. 요세미티까지 가는 택시 업체를 찾았는데, 5인 가족이 탈 차는 없었다. 애들이 어리다고 사정했지만 5명을 태우는 건 불법이라는 대답만 되돌아왔다. 다른 콜택시 업체를 찾아볼 때 이미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콜택시 업체들은 연결이 됐지만 5인을 태울 수 없다는 답변만 듣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적이 찾아왔다. 전화기에 매달려 있는 내 앞에 커다른 트레일러 트럭이 선 것이다. 운전석 문엔 ‘Car Repair’라는 큼직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알고 보니 최초 내가 신청했던 견인 차량이었다. 차량 출발 이후 취소했는데, 전화가 안 터져 취소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던 건 해당 차량은 견인 뿐만 아니라 스패어 타이어도 교환이 가능했다. 차량에 연결된 전동 드릴로 10분 만에 스패어 타이어를 교환해 줬다. 난 요세미티에서 마시려고 가져 온 나파밸리 와인을 트렁크에서 꺼내 바로 건네며 “You’re my hero”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 지갑이 현금이 있었다면 모두 줬을 것 같다. 악몽과 같았던 8시간을 보내고, 공원 안 롯지로 갈 수 있었다.

기적처럼 나타난 견인차

기적처럼 나타난 견인차

미국 도로를 다니다 보면 길가에 타이어 조각들이 널 부러진 걸 쉽게 볼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타이어를 직접 교환하는 차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미국에서 한국과 같은 보험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장시간 운전을 해야 되는 경우엔 긴급 상황을 일으키는 타이어나 배터리를 사전에 점검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니라 직접 수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추는 것이 꼭 필요하다. 물론 요세미티를 가기 전에도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했지만, 펑크가 날 진 예상하지 못했다. 사고 이후부터는 배터리 점프하고 타이어를 갈 수 있는 장비를 새롭게 갖췄다.

국립공원과 얽힌 안 좋은 추억부터 되새겼지만, 사실 좋은 기억이 훨씬 더 많다. 우리 가족이 지난 한 해 동안 찾은 미국 국립공원은 18곳에 달한다. 여기에 국립 유적지나 국립 해안공원 등을 포함하면 20곳이 훌쩍 넘는다. 애초 국립공원을 그만큼 다닐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4학년인 큰 애 덕분에 연간 국립공원 회원권을 무료로 발급받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에선 4학년이 되면 온 가족이 무료로 국립공원을 방문할 수 있는 회원권을 발급할 수 있다. 연간 회원권의 실제 가격은 80달러지만, 4학년 아이와 함께 국립공원에 다니면서 느낀 그 가치는 훨씬 컸다. 입구에서부터 4학년에게 지도는 물론 기념품까지 주는가 하면, 공원 내에 각종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 중단된 상황이지만, 큰 아이가 느낀 자부심은 남달라 보였다. 우리 가족은 최대한 많은 국립공원을 방문하기로 마음 먹었고,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도 해당 지역의 국립공원 존재 여부였다. 디즈니월드와 유니버셜스튜디오가 있는 플로리다 올랜도를 갔을 때도 우리 가족은 마이애미 근처의 국립공원 두 곳부터 찾았다. 가는 길에 덴버를 경유해 록키 국립공원도 찾았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국립공원을 가진 캘리포니아에선 바다에 있는 국립공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찾았다.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길거리 악어.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길거리 악어.

옐로스톤 명물인 바이슨들

옐로스톤 명물인 바이슨들

야생동물 천국인 록키마운틴 국립공원

야생동물 천국인 록키마운틴 국립공원

국립공원은 자연과 야생동물, 그리고 그 지역의 특징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대자연 교과서다. 일단 국립공원을 찾기 전에 해당 홈페이지를 찾아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하다. 비싸지만 공원 내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대부분 국립공원들이 산이나 사막에 있기 때문에 외부에 숙박시설을 잡을 경우 이동 시간만 몇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요세미티나 옐로스톤 같이 인기 있는 국립공원 내 숙박시설들은 비싸기도 하지만, 예약 자체도 쉽지 않다. 하지만 수시로 체크하다 보면 빈 방을 발견할 수 있다. 캠핑을 좋아한다면 국립공원 내 캠프나 캐빈 같은 시설을 예약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들이 많은 나로선 대부분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딸린 롯지를 이용했지만, 혼자 공원을 찾았을 때는 텐트나 캐빈을 이용했다. 공용 화장실과 공용 샤워실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야생에서 먹고 자는 운치나 만족이 남다르다.

국립공원마다 숙박이나 식사할 곳은 있지만, 전화나 인터넷이 안되는 곳이 많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특히 인터넷이나 전화로 연결되는 내비게이션의 경우 대부분 먹통이 되기 때문에 구글에서 사전에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받는 것이 필수다. 셔틀버스나 하이킹 코스도 미리 알아봐야 한다.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접해 있는 글래시어 국립공원의 경우 내부 숙박시설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글래시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도로에 들어갈 수도 없다. 공원 숙박시설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사전에 해당 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 예약이 필수다. 공원 내 셔틀버스도 마찬가지다. 자이언 국립공원처럼 인기 있는 셔틀 버스가 대표적이다. 아이들과 많은 국립공원을 다닐 계획이라면 공원 내 방문센터(Visitor Center)나 기프트샵에서 파는 국립공원 여권을 사서, 국립공원마다 그 특징과 방문 일자가 새겨져 있는 스탬프를 받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스탬프 찍는 맛에 국립공원을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라인 교육의 장점 중 하나는 이동성이다. 국립공원 여행 중 호텔에서 아침마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들,

온라인 교육의 장점 중 하나는 이동성이다. 국립공원 여행 중 호텔에서 아침마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로컬(logal)이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미국 국립공원도 ‘National Park’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는 미국에서 가장 지역(local) 특색이 강한 곳이었다. 예컨대 반트럼프 라인이 굳건한 캘리포니아의 국립공원에서, ‘Redneck’라는 이름의 와인을 본 적이 있었다. 레이블엔 “You know you’re a redneck if you drink this wine”라고 박혀 있었다. Redneck은 네이버 영어사전엔 “모욕적으로 쓰여 교육 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미국의 시골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실제 어원도 고개를 숙이는 육체 노동을 많이 해서 뒷목이 빨간 시골 노동자다. 이 정도 해석이라면 좋게 말해 ‘백인 시골뜨기’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비슷한 말로 ‘white trash’가 있다는 걸 안다면, 그 어감이 더 이해 갈 거 같다. 트럼프 시대를 보내면서, 이 단어는 white nationalism과 시너지를 더해 강력한 정치적 파티로 자리잡았다. 미국에 오기 전까진 이 단어의 존재도 몰랐다. 미국에 와서도 언론을 통해 접하지만, 평소엔 쓰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국립공원 기념품 샵에서 이 단어를 만난 것이다. 실제 미국에선 로컬들이 내셔널이 되고, 그 내셔널을 글로벌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국립공원부터 헐리우드까지 그 뿌리도 깊다.

미국 국립공원에서 만난 ‘레드넥’ 와인

미국 국립공원에서 만난 ‘레드넥’ 와인

코로나가 바꾼 건 국립공원 여행만이 아니다. 일반 호텔도 마찬가지다. 아침 조식 풍경부터 크게 달라졌다. 코로나 이후 호텔 조식은 예전처럼 식당에서 먹거나, 포장한 음식을 받거나, 아예 조식을 주지 않는 경우로 나눠진다. 호텔 수영장이나 피트니스 센터도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된다. 그나마 달라지지 않은 건 가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