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딸 셋 아빠의 미국 온라인 탐구생활5

by

딸 셋 아빠의 미국 온라인 탐구생활5

– 미국을 이끄는 온라인 테크 공룡

미국 온라인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구글과 아마존, 애플 등 테크 공룡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IT 생태계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이들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구글의 경우 한국에서 즐겨 쓰는 메일이나 검색은 기본이다. 앞서 언급한 아이들의 학교 수업은 물론, 길을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 가고 싶은 식당을 정할 때나 해당 음식을 배달 받거나 픽업하는 것 모두 구글 생태계에서 이뤄진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동네에서 직접 찾은 차량 서비스 센터에서 점검을 받는데, 엔진에 연결되는 호스가 끊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점검 비용만 막대하게 챙긴 센터에선 정작 차량 수리는 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구글 리뷰를 찾아보니 평점이 최하 수준이었다. 다시 수리를 위해 동네에서 가장 평점이 높은 정비 센터를 찾았다. 끊어진 엔진 호스를 보여주니, 이베이 홈페이지에서 해당 부품을 검색해 주고, 수리는 유튜브를 보고 따라하면 된다고 했다. 현장에서 수리하는 비용도 저렴했다. 이후부터는 나에게 구글 평점은 진리가 됐다.

아마존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경험해 본 아마존 직구는 거대한 공룡의 한 단면에 불과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홈페이지들은 대부분 아마존으로 연결돼 있어, 학교 준비물부터 티셔츠까지 아마존 학교 홈페이지에서 구입한다. 오프라인 영향력도 막강하다. 아마존이 거의 모든 지역에서 운영하는 홀푸드 마켓은 비싸지만 신선한 제품들로 채워 슈퍼마켓 중에서도 프리미엄으로 꼽힌다. 배달이나 픽업 주문도 온라인으로 가능하다. 프라임 멤버에 가입하면 한국 못지 않게 빠른 배달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아마존의 반품 서비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마존에서 골프채를 구입했는데, 예상보다 무거워 반품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구체적인 이유나 흠집도 따지지 않았다. 반품할 수 있는 곳을 정해줬는데 인근 아울렛 쇼핑몰 중 하나인 콜스(Kohl’s)라는 곳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집 근처 콜스에서 골프채를 반품하니, 무료 할인 쿠폰을 줬다. 자연스럽게 콜스에서 옷을 구입하게 됐다. 뒷마당에서 사용할 수도 호스를 구입했다가 반품했을 때는 반품 장소가 동네의 홀푸드 마켓으로 정해졌다. 어떤 알고리즘이 적용되는지 모르겠지만, 반품을 하러 가면서 자연스럽게 홀푸드에서 쇼핑을 하게 됐다. 이처럼 아마존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네트워크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엄청나다.

아마존에서 구입한 상품의 반품을 접수받는 콜스 내 코너

아마존에서 구입한 상품의 반품을 접수받는 콜스 내 코너

테크 기업들이 온라인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그 네트워크와 인프라도 더욱 강해졌다. 예전 미국에 여행할 때만 하더라도 현금 사용 빈도가 월등히 높았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현금을 사용한 건 손에 꼽는다. 국립공원이 있는 시골에 가도 코로나를 이유로 신용카드만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나마 호텔 이용 후 팁을 놓을 때가 거의 유일하게 현금을 사용했다.

미국에서 온라인 생활이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미국에서 단기 방문자로 살면 꼭 가야 되는 곳이 있다. 운전면허를 따야 하는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SSN을 발급받는 SSN(Social Security Number) 사무실, 그리고 병원이다. 역설적으로 이 세 곳은 불친절과 같은 악명이 높아 미국인들도 최대한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꼽는다.

캘리포니아 DMV 앞에 길게 늘어진 줄.

캘리포니아 DMV 앞에 길게 늘어진 줄.

DMV는 코로나를 거치면서 더 악명이 높아진 듯 하다. 예전부터 불친절의 대명사로 꼽혔지만, 코로나 이후 더 심해진 것이다. 일처리가 늦어 갈 때마다 수십명의 대기줄을 외부 뙤약볕 아래에서 감수해야 하고,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 불친절한 직원들을 보는 것도 기본이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해외나 다른 주의 운전면허증을 인정하지 않는다. 국제운전면허증으로 다녀도 1년 동안 다닐 수 있다는 해석이 있지만, 대부분 신분증으로 사용하기 위해 운전면허증을 취득한다. 문제는 운전면허 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필기시험은 쉬운 편이지만, 실기의 경우 차선 침범과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면 바로 불합격이다.

한국 운전 경력 28년에, 군대에서 부식차까지 몰았던 운전병 출신인 난 캘리포니아 DMV의 운전면허 주행 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첫 번째 운전면허 시험에서 같이 탄 탑승자는 젊은 흑인 여자였다. 내심 운전을 잘 하고 있다고 판단했는데, 갑자기 DMV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더니 현장에서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차선을 침범했다는 이유였는데, 어디서 침범했는지, 왜 문제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대로 내렸다. 곧바로 두번째 실기 시험을 예약했는데 같은 차선 침범으로 탈락했다. 다행히 두 번째 감독관은 나의 ‘실수’를 현장에서 알려줬다. 미국에선 한국과 달리 도로 중간 차선이 황색선으로 된 경우가 있는데, 해당 차선을 미리 진입하면 좌회전과 우회전이 가능하다. 문제는 좌회전을 해야 할 경우 미리 진입해야 하는데, 나의 경우 황색 차선에 제대로 진입하지 않고 곧바로 좌회전을 해 탈락했다. 세 번째 실기시험에선 합격할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SSN 신청도 난관이다. 미국에서 불친절하기로 따지면 1, 2위를 다투는 것이 DMV와 SSN이다. SSN 사무실의 경우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 문을 열지 않았다. 전화 연결도 쉽지 않고 어쩌다 연결돼도 콜백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번은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SSN 사무실까지 찾아가 서류 전달을 시도했지만, 입구 문도 열어주지 않는 말그대로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후 수십차례 통화 끝에 SSN 인터뷰를 예약한 후 결국 SSN을 발급받았지만,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코로나로 굳게 닫힌 SSN 발급 사무소

코로나로 굳게 닫힌 SSN 발급 사무소

개인적으로 DMV와 SSN보다 더 힘들었던 곳은 다름아닌 병원이었다. 1년 가까이 병원 근처도 가지 않았던 우리 가족에게 최근 사고가 터졌다. 첫째의 새끼 손가락이 부러진 것이다. 아이가 다니는 여름 캠프에서 한 남자 아이가 던진 공에 새끼 손가락을 맞았는데 그대로 골절이 됐다. 캠프 원장에게 전화를 받았을 때 처음 들었던 말은 “It’s no emergency, but…” 책임을 회피하려는 캠프의 전형적인 대응이었다. 실제 별거 아니겠지 했는데, 이때부터 험난한 일정이 시작됐다. 미국 의료 체계의 민낯을 엿봤다고 할까.

미국에선 정말 큰 사고가 아니면 응급실에 바로 못 가다 보니, 긴급치료(Urgent care) 센터를 통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센터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심하게 골절된 상태였다. 문제는 오후 6시가 넘어서 모두 퇴근을 해야 된다는 상황. 제대로 깁스도 안해 준 상황에서 엑스레이 사진도 다음날 아침에야 받을 수 있었다. 전문의 상담을 추천하는데, 진료 가능 시간을 알아보니 3일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다음날 정형 전문 긴급치료(Urgent care) 센터를 찾아 더 정밀한 점검을 받은 결과, 아이 뼈가 제대로 붙을 수도 있다며 일주일을 더 지켜보는 게 좋겠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 사이 변화가 없으면 아이 손가락 뼈가 완전히 붙기 전인 2주 내엔 무조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일주일 후 동네 근처의 소아 정형 전문의 진료를 받고 다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역시나 수술을 권유했다. 하지만 본인은 수술을 못한다며 또다른 소아 정형 전문의, 그 중에서도 손가락 수술 전문의를 소개해줬다. 해당 병원에 연락해 보니 수술을 받기 전 아이의 손가락을 봐야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을 갈 때마다 스케줄러-리셉션-엑스레이담당-간호사-의사를 거쳐야 된다. 수술 전문의 진료 결과도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술 과정은 더 난관이었다. 수술 스케줄러를 통해 일정을 잡고, 병원에서 소개해 준 기관에서 수술 전날 코로나 테스트를 받았다. 문제의 캠프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통보까지 받아 내심 불안한 상황. 수술 직전까지 결과도 알려주지 않았다, 음성이 나오긴 했지만 행여 양성이 나왔다면 수술도 못 받을 뻔했다. 수술 예정 시간은 아침 7시 40분이었는데, 6시까지 가야했다. 수술을 하는 곳은 기존 진료실과 다른 수술 전문 센터에 도착해 접수를 하는데 이번엔 수술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손가락 골절 수술이었는데 미국 내 무보험이라 1만1000달러가 넘게 나온 것이다. 원래는 3000만원이 넘는데 그나마 60% 할인된 비용이라고 했다. 우리 돈으로 1300만원. 미국에서 맹장 수술 비용이 천만원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과장이 아니다.

한국에서 든 보험으로 후불 청구가 가능했지만, 수술비를 미리 현장에서 지불해야 했다. 미국에서 만든 신용카드와 직불카드로 결제를 하는데 한도에 부딪혀 결제가 안됐다. 한국에서 쓰던 카드는 한도가 가능했지만, 역시 결제가 안됐다. 새벽부터 미국과 한국 신용카드 회사의 콜센터에 계속 전화했는데 왜 결제가 안되는지 모르겠다는 답변만 받았다. 아이 수술을 진행할 간호사들은 이미 준비를 끝내고 옆에서 나를 지켜보는 상황. 결국 수술비를 나눠 결제해 8000달러까진 지불했다. 그러자 리셉션 직원이 동의하고 간호사들이 큰애를 수술실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이번엔 병원 행정 매니저가 와서 수술실 입구를 가로막았다. 수술비 완납이 안된 상태라 수술을 시키면 안된다는 거였다. 개인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해당 직원에게 휴대폰 뱅킹 앱을 열어 지불이 충분한 잔고를 보여줬다. 그 직원은 머쓱한 표정으로 이렇게 하는 게 어쩔 수 없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결국 아이는 수술을 받았고 그 사이 난 문을 연 은행에 가서 현금을 찾아 수술비를 완납했다. 새끼 손가락 수술이었지만, 마취 전문의가 와서 전신 마취를 한 후에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 가장 다행인 건 지금까지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아이의 휘어진 새끼 손가락을 바로잡고, 2개의 핀을 꼽아 고정시키는 수술이었다. 지인을 통해 한국의 소아 정형전문의에게 확인한 결과, 수술까진 이해하지만 비용과 과정에 대해선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한국에선 골절된 손가락의 경우 당일 진료가 끝나기도 한다고 했다. 결론은 미국에선 가능하면 아프지 말아야 한다.

단기 연수자들이 꼭 가면 좋을 곳도 있다. 바로 골프장이다. 원래 미국에서 골프는 대중적인 스포츠지만,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그 인기가 훨씬 높아졌다. 골프 부킹 앱에 접속하면 동네 대중 골프장의 경우 카트를 포함해 30~50달러 수준에 이용할 수 있다. 한국과 달리 사우나나 그늘집 이용은 힘들지만,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준비해 가면 4시간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특히 외국인으로서 현지인들과 4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어는 물론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는 장점이 있다.

한국 복귀를 앞둔 지금, 귀국에 필요한 정보도 기존 족보들이 무색한 상황으로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코로나다. 미국 내 한국 영사관에서 최소 일주일 전 자가격리 면제를 신청해야 한국에서 자가 격리 면제를 받을 수 있다. 자가 격리 면제에 또 다른 필수적인 조건은 코로나 음성 판정 결과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발 72시간 내에 발급받은 음성 판정서만 유효하다. 미국에 따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테스트를 받을 기관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