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LG상남언론재단 지원으로 2024년 9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영국 런던에서 연수중인 매일경제신문 이유섭 차장입니다. 이번 연수기에서는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극명히 엇갈리는 영국의 공공보건의료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NHS)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영국에서 의료서비스는 ‘공짜’입니다. 다만 영국 비자 신청 시 보건 부담금을 가족 1인당 300만원 가까이 내야하기 때문에 ‘완전한 공짜’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 국제기구 근무에 따른 비자면제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보건부담금도 면제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NHS 혜택을 받을 경우, 진정한 무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입장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NHS는 악명이 높습니다. 공짜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죠. “발바닥에 유리가 박혀 살이 찢어져 응급실에 갔더니 3시간30분을 기다렸다. 알고 보니 빠른 편이었다”, “GP(General Practitioner)에서 아이에게 잘못된 백신을 놔줬다”, “GP 건물에 들어가니 아프리카 오지에 온 것 같더라”, “진찰을 전화로만 하고 처방전을 주더라” 등 NHS에 대한 불신에는 영국인 한국인이 따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하기에 영국에 정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GP 등록입니다. GP를 한국어로 쉽게 의역하면 ‘우리 동네 보건소’입니다. NHS 홈페이지를 통해 집에서 가까운 GP를 찾은 뒤 홈페이지로 등록신청을 하면, 1~2달 뒤에 GP 등록이 됩니다. 그때 NHS 번호도 발급되기 때문에 GP 등록은 빨리 할수록 좋습니다. GP를 거치지 않고 개인병원에 가는 건 가능하지만, 종합병원에 가려면 응급실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GP를 거쳐야 합니다.
감기·몸살로 GP 가면 처방도 없이 격려만
저희 가족이 등록한 GP에는 의사가 총 12명이 있습니다. 캠브리지, 버밍엄, 셰필드 등 대부분 이름 있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입니다. 이들은 Consultant로 불립니다. 말 그대로 진찰을 해주는 의사란 뜻입니다. 가슴과 등에 청진기를 대고, 눈 코 입 귀를 들여다보고, 혈압을 재고, 심장박동을 체크하고, 손으로 복부를 눌러보고 하는 수준의 진찰입니다. 그러다 필요하다 싶으면 처방전을 써주고, 피검사나 소변검사나 대변검사를 의뢰하기도 합니다. 피를 뽑고, 소변이나 대변을 수거는 하지만 분석은 종합병원에 맡깁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퀸엘리자베스 종합병원 정문의 모습.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GP다보니 감기에만 걸려도 괴로운 환자들 사이에서는 불신과 악명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이나 노인이 아닌 이상, 의시가 진찰 신청 당일 만나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 코와 귀에 목 등에 직접 약을 뿌려주는 서비스가 GP에는 없다보니 이래저래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4살 아이가 심하게 비염을 앓아 GP를 가본 적이 있는데, 두 번 모두 친절하게 진찰을 해줬지만, 한번은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약을 추천해줬고, 또 한 번은 “날씨가 따뜻해지면 나을 거다”라는 말을 들은 게 전부였습니다. 결론적으로 틀린 처방은 아니었던 게 약국에서 추천해준 코스프레이를 사용한 뒤 아이의 비염이 눈에 띄게 개선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질병이 중증일 가능성이 있으면 상황이 조금 달라집니다. 저는 런던에 온 뒤 3~4개월 만에 몸무게가 약 10kg 정도 급감했습니다. 한식에 비해 나트륨 섭취량이 크게 줄었고, 간식·야식·과식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연수 초기 정착과정이 쉽지 않고, 3세 아이 ‘풀타임 육아’도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무엇보다 한국에 있을 때 몸무게가 인생 최대치였기에 저는 모든 게 정상화의 과정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성화에 GP 진찰 신청을 했고, 만나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GP에서는 피검사와 대변검사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나올 거라 자신했지만, 출국 직전에 한국에서 치료한 치질이 문제가 됐습니다. 환부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다보니, 대변에서 소량의 피가 검출된 겁니다. 그러자 GP에서는 신속하게 종합병원에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 그리고 폐와 복부 CT를 의뢰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종합병원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큰 병일 가능성이 생기면 모든 게 빨라진다
모든 것은 영국 무상의료서비스의 악명치고는 매우 빠르게 이뤄졌습니다. 1월22일 퀸엘리자베스 종합병원 간호사와 전화상담, 23일 병원방문 및 피검사, 24일 병원방문 및 대장내시경용 장 결정제 수령, 1월29일 CT 촬영, 2월1일 위 및 대장내시경, 당일 결과설명 및 사진자료 등 수령. 약 열흘 사이에 모든 검사가 마무리 됐습니다. 대기시간도 거의 없었습니다.
대장내시경을 받기 전에 같은 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받은 적 있는 한국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영국에서 대장내시경을 받으면, 한국의 대장내시경을 신뢰하기 어렵게 된다. 그만큼 매우 전문적이고 꼼꼼하게 봐준다”. 사실이었습니다. 영국에서 대장내시경은 수술실 같은 방에서 리드(Lead Nurse) 간호사와 보조간호사 2명이 참여합니다. 리드 간호사는 내시경 전문가 자격(Gastroenterology Clinical Endoscopist)을 갖추고 있습니다. 위도 대장도 정말 들어갈 수 있는데까지 들어가 샅샅이 살펴봅니다. 예를들어 대장내시경 검사결과에 Terminal ileum (말단회장)이 들어갔다면, 항문(Anal Margin)부터 시작해 대장의 모든 장기를 관찰했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내시경이 완전한 수면이 아닌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겁니다. 위내시경은 목에 마취 스프레이만 뿌리고, 대장내시경은 진통제 주사만 놓은 상태에서 진행됐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밤새 고생해서 속을 비운 상황이라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위내시경은 큰 불편함 없이 약 10분 만에 끝났습니다. 문제는 대장내시경이었는데,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 했습니다. 대장내시경 도중에 자세도 한번 바꿔야했습니다. 완전한 수면내시경을 했다는 후기가 있는 것을 보면,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모양입니다. 어쨌든, 다시는 하기 싫지만, 할만은 했습니다.
내시경을 마치니 리드 간호사가 “암도 용종도 발견된 게 없다. 일부 조직만 검사를 해 암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는지만 체크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줬습니다. 회복실에 앉아있으니 속을 편하게 해주는 죽이 아닌, 치킨 마요 샌드위치를 갖다 줬습니다. 그리고 검사한 모든 장기를 촬영한 사진과 결과 파일도 몇 분 만에 갖다 줬습니다.
2~3주 뒤 복부와 폐 CT 결과도 ‘이상 없음’으로 나옴에 따라 저는 ‘암 가능성 환자군’ 리스트에서 빠졌습니다. 내시경에 비해 CT 결과는 다소 늦게 나왔는데, 아마 이상 징후가 발견됐다면 훨씬 신속히 정밀검사가 이뤄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밖에 모든 게 끝나면 무료 의료서비스를 받을 자격을 증명해야 합니다. 병원에서 요청 메일이 오면, 여권과 비자 그리고 세금 내용 증명서만 보내면 됩니다.

가벼운 병은 약국, 중증 의심되면 GP로
영국 NHS에 대한 개인의 평가는 당연하게도 개인의 경험이 좌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경험을 바탕으로 NHS 활용 팁을 공유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감기 몸살 등은 약국에서 해결한다.
2. 발목 접지르거나, 심하진 않은 상처 등도 GP 진료를 신속히 받긴 어렵다.
3. 중증이 의심되면 GP를 방문한다. GP를 방문할 때는 미리 공부를 해서 증세를 최대한 자세히, 그러면서도 다소 과장해 이야기 한다.
4. 검사결과(피, 소변, 대변 등)를 빨리 받고 싶다면 GP를 거치지 않고 바로 사립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결국 종합병원을 갈 수밖에 없다.
5. 아이와 노인은 GP든 응급실든 패스트트랙이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