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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정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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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LG상남언론재단 지원으로 2024년 9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영국 런던에서 연수중인 매일경제신문 이유섭 차장입니다. 9월4일 런던에 도착해 연수기 작성일 기준 두 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런던에서의 처음 한 달은 각종 정착작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문제는 아직도 끝내지 못한 작업이 남았다는 점이죠. 그래도 90% 이상 필요한 정착작업을 마쳤다는 판단에 ‘연수기: 정착편’을 씁니다. 미국이 아닌 영국이라는 점, 한국 출국 전에 집 계약을 미리 마쳤다는 점, 그리고 정답이 아닌 하나의 ‘케이스’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고 연수기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 구할 수 있다면 무조건 ‘미리’

연수를 앞두고 런던에 이미 거주 중인 한국인 분들께 집을 미리 구하고 가는 게 좋은지, 가서 구하는 게 좋은지를 물었습니다. 대부분은 와서 구할 것을 추천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영국은 집이 오래돼서 꼭 오셔서 보고 계약하세요”.

하지만 저희 가족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앞선 연수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저희는 영국에 올 때 큰 트렁크 2개, 이민가방 2개, 박스 3개, 기내용 트렁크 1개 그리고 유모차 1개 가지고 왔습니다. 연수기간이 1년에 불과하고, 물가가 비싼 런던으로 오다보니 가져와야할 짐이 많았습니다. 만 3세 아이가 있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많은 짐을 에어비앤비 숙소나 호텔에 옮기기도, 보관하기도, 짐을 풀었다 다시 싸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또 와서 구한다 해도 호텔이나 에어비앤비 숙소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갑니다. 최소한 살 지역 정도는 정하고 런던으로 오는 게 시간과 돈을 아끼는 방법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숙소 생활만 한 달 가까이 하는 불상사가 불어질 수도 있습니다. 런던 내 한인네트워크를 통해 살 집을 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만, 그럴 경우 한인 집중 거주 지역인 윔블던이나 뉴몰든 내 매물 위주로 보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런던에 오기 전에 집을 미리 구하는 것의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반드시 런던에 있는 누군가가 집보기(Viewing)를 대신 해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런던에 있는 지인이 찍어준 동영상으로 Viewing을 대신 했습니다. 매물 검색은 Right Move나 Zoopla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합니다. Viewing 약속은 이메일을 보내는 것보다 전화를 하는 게 더 빠릅니다. 집이 마음에 들면 필요한 서류를 갖춰서 ‘지원’을 하고, ‘통과’ 하면 그때부터 계약 작업을 진행하면 됩니다.

런던에서 집을 구하려면 부동산업체의 매우 까다로운 ‘평판조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내용은 앞선 연수기를 참고해주시면 되겠습니다.

1년 머무는 연수생 대부분은 기본 가구가 모두 갖춰진 Furnished로 구합니다. 저희 집에는 냉장고,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오븐, 식기세척기, 세탁기, 청소기, 토스터, 다수의 그릇, 다수의 컵, 수저와 포크, 칼, 식탁, TV, 소파, 침대, 베게, 시트 등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수저와 포크와 그릇 등 일부는 한국에서 가지고 왔고, 부피가 큰 것 중 완전히 새로 산 것은 현재까진 청소기 하나입니다. 청소기는 떠날 때 중고로 팔 계획입니다.

아파트(Flat)에 살지, 별채 가정집(Detached)에 살지, 주택(Terraced House)에 살지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개인 선호도에 따라 다릅니다만, 런던에 사는 연수생에게 가장 중요한건 아무래도 월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 3인 가족의 집은 Zone3와 거의 붙어있는 Zone2인 ‘그리니치’에 있고, 방 2개에 화장실 하나, 그리고 비교적 신축 아파트입니다. 월세는 2400파운드(약 430만원)입니다. 여기에 주민세, 전기세, 에너지세, 수도세를 별도 지불해야 합니다.

주소가 생겼다면, 다음은 통신과 계좌

집을 빨리 해결하면, 즉 ‘런던 내 나의 집주소’가 빨리 생기면 좋은 게 전화를 개통하고 은행계좌를 개설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제 아내는 통신사는 월 25파운드(4만4000원)에 데이터 무제한, 영국내 통화 무제한, 국제전화 100분, 데이터로밍 30GB 혜택을 주는 LEBARA를 쓰고 있습니다. 통신사 데이터가 무제한이라, 집에서 노트북 이용 시 별도 인터넷 서비스 가입 없이 데이터 테더링을 해서 쓰고 있습니다.

주소와 전화번호가 생기면 계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영국의 대표 인터넷은행은 몬조(MONZO)에 계좌를 개설했습니다. 10여분이면 계좌를 쉽게 개설할 수 있고, 2~3일이면 집으로 실물 체크카드가 배송됩니다. 이 카드는 교통카드로도 쓸 수 있고, 애플페이에 등록해 쓰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직까지는 다른 은행 계좌 개설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등록·등록·등록···

입주를 마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등록지옥’이 시작됩니다. 주민세, 전기세, 에너지세, 수도세 등을 내기위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등록입니다. 저의 경우 주민세는 별도 등록절차 없이 고지서가 자동으로 날아왔습니다. 나머지는 세입자가 일일이 신규회원가입 및 거주등록을 해야 합니다. 저희는 전기세는 British Gas, 에너지세는 E.ON, 수도세는 Thames Water에 등록을 했습니다. 수도세 등록은 쉬웠고, E.ON은 홈페이지 채팅상담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British Gas는 상담원과 30~40분 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운 좋게 매우 친절한 상담원과 연결된 덕이었죠.

계절과 정부의 물가정책 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현재 주민세는 월 269파운드(47만원), 에너지세는 월 119.3파운드(21만원), 수도세 월 49파운드(9만원), 전기료 월 60.61파운드(11만원)를 냈습니다. 겨울이 오면서 에너지세과 전기세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직까진 활용도가 높아보이진 않지만, 영국의 보험번호(National Insurance Number)와 의료보험 제도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 번호도 받아야 합니다. 보험번호는 정부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하면 되고, 영국에서 일을 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저희 가족 중에는 저만 받았습니다. 신청 후 번호를 받는데 3주 정도 걸렸습니다.

NHS 번호를 받으려면 동네보건소 주치의(GP) 개념인 GP 등록을 해야 하는데, 신청 후 2달이 지난 최근에서야 등록이 이뤄졌습니다. 그것도 저랑 아들만 등록됐고, 아내는 아직 등록 대기 중입니다. 한국에서 해외장기체류자 실손 보험 가입한 뒤 개인병원을 찾는 게 현실적으로 낫다는 게 현지 한국인들의 전언이고, 저희 가족도 그렇게 준비를 해왔습니다. 아무튼, 해외에 살 때는 아프지 않아야 합니다.

그 외 투표권 등록(Electoral Service)하라는 연락도 오는데, 참정권 없는 한국인이라고 하면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습니다. 아파트 단지에 살게 되면 택배 등을 받기 위해서는 컨시어지(Concierge)에 입주 등록도 잊지 않고 해야 합니다. 언뜻 마무리된 것 같지만, ‘등록지옥’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닐 것 같습니다. 남은 약 9개월간 저는 무엇을 더 등록해야할까요.

어린이집: 주 4일 보내는데 월 240만원, 정부 지원 받고도

저희 집에는 만 3세 남자아이가 한명 있습니다. 영국은 만 4세부터 학교를 갈 수 있기에 1년만 늦게 왔어도 교육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영국은 만 4세가 되면 1학년이 되는 게 아니라, ‘리셉션’이라 해서 학교에서 학생이 될 준비를 하는 일종의 ‘0학년’이 됩니다. 무료 공교육을 받으려면 공립학교를 보내야하고, 그러려면 학군이 좋은 동네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분들이 윔블던 거주를 선호합니다.

사립학교를 선호하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다만 사립학교 비용이 적지 않게 들고, 올해 집권당이 된 영국 노동당은 사립학교 비용에 대한 부가가치세 수준을 더 높이기로 한 상태입니다. 바로 이 사립학교보다도 더 비싼 게 바로 어린이집(Nursery)입니다.

저희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데 월 1,337.89파운드(약 240만원)를 내고 있습니다. 영국정부는 외벌이 가정에 주 15시간, 맞벌이 가정에 주 30시간의 어린이집 비용을 지원합니다. 저희 아이가 가는 어린이집은 종일반 기준이 10시간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이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일 어린이집에 보냅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보니, 맞벌이 가정조차 주3일만 어린이집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1년 연수의 목적이 자녀에 대한 조기영어교육인 경우가 많고, 저희 또한 다르지 않다보니, 엄청난 비용을 써가며 주 4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아이가 아프거나, 여행을 가거나, 공휴일이면 보내질 못합니다.

저희는 아이의 영어 학습 속도를 면밀히 분석해 투자 대비 효과가 턱없이 작다고 판단될 경우, 내년에는 과감히 주 2~3일까지 줄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과감히 실천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런던에서 아이 키우기’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 다른 연수기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차: 누군가에겐 ‘필수’, 누군가에겐 ‘옵션’, 누군가에겐 ‘사치’

마지막으로 자동차입니다. 1년의 연수기간동안 중고차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현지 한인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립니다. 저는 아이가 만 3세 임에도 불구하고 차 없이 1년을 살 예정입니다. 그래서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은 곳, 아주 가까이에 마트가 있는 곳으로 집을 구했습니다. 시내 주요 관광지까지 가는데 대중교통편으로 1시간 정도 걸리지만, 아직은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가 있으면 확실히 편하겠죠. 차 없이 런던을 구경하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영국을 놀러다니는데는 제한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주재원들은 보통 중고차를 삽니다. 딜러를 찾아가면 신차이긴 하지만 가격이 비싸서, 주로 Cargiant라는 중고차 사이트에서 구입을 합니다. 거의 정가로 생각하면 됩니다.

다만 자동차 보험료가 만만치 않게 비싸고, 국제면허증만 가지고 가면 보험 가입이 가능한 보험사가 정해져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대사관 번역공증 후 영국 DVLA를 신청해 영국 면허증으로 교환합니다. 비싸지만 한국계 보험 에이전트도 있습니다. 차가 있더라도 런던 시내로 가지고 들어오면 매번 15파운드의 혼잡세를 지불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