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나는 집 근처 우체국을 향해 빠른 속도로 걷고 있었다. 손에는 반송해야 할 책 소포가 들려
있었다. 얼굴은 흔한 런던 날씨처럼 찌푸린 채였다. ‘9시반 제 시각에 우체국이 문을 열어야할텐데…
줄은 또 얼마나 길까.’ 볼일을 마치고 바로 영어 밋업(meetup)을 가야 하는 일정이었기에 마음이 급
했다. 무엇보다 두세번씩 우체국에 들락날락 해야 하는 내 처지가 짜증났다.
들고 있는 책이 문제였다. 온라인 사이트 ‘아마존’에서 구매한 영어회화 중고책이었다. 아마존에서
몇번 중고책을 사봤는데, 거의 새책 수준으로 깨끗하고 배달도 신속했다. 그런데 뒤늦게 알고 보니 내
가 주문한 판본이 2003년 것이었다. 부랴부랴 아마존에 접속해보니 다행히 중고책 판매처의 상태가
‘배송 전’으로 표시됐다. 급하게 ‘주문 취소 요청’ 버튼을 눌렀다. 다음날 도착한 메일. “우리는
주문과 동시에 배송 준비 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제 와서 배송 취소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책이 도착할 때 즉석에서 ‘수취 거부’를 하는 것. 둘째, 받은 책을 근처
우체국에서 반송하는 것이다. 두번째 경우 ‘발송자 수취(Return to Sender)’로 하면 배송료를 물지
않아도 된다.”
깔끔한 해법이었다. 우체부와 엇갈려 ‘수취 거부’ 타이밍은 놓쳤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두번째 옵션
대로 해도 주문할 때 지불했던 책값과 우송료 모두를 돌려받게 된다(get fully refunded)고 안내 했으
니까. 책 소포를 뜯지도 않고 그대로 집 근처 우체국에 들고 갔다. 영국에서 우체국에 가면 하세월이다.
번호표도 없이 대기줄에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사람은 속이 타는데 창구 직원과 고객들
이 시덥잖은 농담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직원이 일 하다가 창구 뒤쪽으로 사라져 한참 지나 나오
기도 한다. 계산하는 고객들의 손길은 또 얼마나 느린가. 가끔씩 내가 끼어들어서 동전을 세주고 싶다
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20분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됐다.
“이걸 반송하려고요.”50대로 보이는 안경 낀 흑인 직원은 미소와 함께 받아들더니 곧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발송자 주소가 없는데요? 여긴 본인 주소밖에 없잖아요”사실 그랬다. 받아본 소포에는 내
주소와 이름만 적혀 있고 보낸 측 주소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 “네? 그렇긴 하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그냥 우체국 가서 ‘발송자 수취’로 하면 된다고 했어요.” “이대로는 접수할 수 없어요. 이대로 부
치면 본인에게 소포가 가게 돼요.” “근데 제가 아는 바로는… 여기 e-메일을 보시면요.”
직원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보세요. 이건 제 문제가 아니죠. 그쪽에서 보낸 측과 해결해야 할 사안
입니다. 제가 말씀 드릴 것은 이대로는 발송이 안 된다는 겁니다. 주소를 알아내서 이런 라벨을 붙여
오셔야 해요.” 그가 유리창 너머에서 바코드가 기재된 ‘리턴 라벨’을 흔들어 보였다. 더 시간을 끌
어봐야 소용없었다. 낙관이 낙담으로 바뀌자 분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나이스하게 나가야 한다.
여기는 영국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약점을 잡히고 우습게 취급된다. 아니 투명인간으로 치부될 수
도 있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며 중고책 판매처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 영국에서 1년 가까이
살았지만 여전히 영문 메일 작성에 꽤나 시간이 걸린다. 겨우겨우 보낸 메일에 다음날 답장이 왔다.
지난번 메일 송신자와 다른 담당직원이었다.
“반송을 원하신다면 본인 주소에 크로스(X)를 하시고 ‘발송자 수취’라고 쓴 뒤 우체통에 넣으세요.”
이건 내가 처음 받은 메일과 표현만 다르지 같은 내용 아닌가. 아무래도 매뉴얼대로 대응한 모양이었다.
혈압이 솟구쳤다. 다시 썼다. “문제는 그쪽 주소가 제게 없다는 겁니다. 소포 포장에 제 주소만 있단
말입니다. 주소를 알려줘야 보낼 것 아닙니까.” 다시 답장이 왔다. 또다른 직원이다. “포장에 있는
바코드가 우리 주소입니다. ‘발송자 수취’라고 쓰면 우체국이 바코드를 스캔해서 우리 주소로 보낼
겁니다.”
포장지에는 내 주소와 결부된 바코드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랴 하라는 대로 해야지. 다시 우체국에 갔
다. 또다시 20분을 줄서서 직원에게 말했다. “이 바코드를 긁으면 발신자 주소가 나온다는데요.”직원
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이 바코드는 그쪽 주소에 해당하는 거고요. 발신자 주소란에 아무 것도
없잖아요.” “그래도 한번만 확인해주시면…” “100퍼센트 장담하건대 이건 안되는 거라고요. 제대
로 주소를 받아오세요.” 수차례 실랑이 끝에 겨우겨우 바코드를 긁게 하는 데 성공했다. 아뿔싸, 그런
데 정말 무효(Null) 표시가 되는 게 아닌가. 유리창 너머 직원은 거봐란 듯 나를 흘겨봤다. 다시 책소
포를 들고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메일을 썼다. “그쪽에서 하라는 대로 했지만 바코드는 먹히지 않았
다. 아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데 뭐가 그리 어렵나. 내가 벌써 일주일째 이 문제로 씨름하고 있지 않은
가.”
그날은 내가 다시금 중고책 판매처의 답장을 받은 날이었다. 또다시 바뀐 메일 송신자는 마지못해 안내
하는 듯 중고책 판매처의 주소와 우편번호를 알려줬다. 그러면서 다시금 “발송자 수취라고 쓰면 배송
료를 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 말은 ‘발송자 수취’로 분류되지 않으면 내가 배송료를 물어야 한
다는 뜻이다. 그깟 몇 파운드가 대수냐 라며 물 수도 있겠지만 일주일 이상 시달린 탓에 독이 오른 터
였다. 게다가 이게 물건을 받은 뒤 환불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배송 취소를 요구했던 거란 걸
강조해야 했다. ‘내 잘못이 없으니 총액 환불을 받아야 한다’는 고집이 생겼다.
일단 포장지 여백에 판매처의 주소를 적었다. 그와 함께 ‘발송자 수취’라고 큰 글씨로 썼다. 과연 우
체국에서 이 주소를 원래 소포를 보냈던 발송지로 납득하겠는가. 공식적인 ‘리턴 라벨’도 아닌데 말이
다. 어쩌다 이런 일에 휘말려 우체국을 세번씩 가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찌푸린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
기던 중이었다.
“굿모닝(Good morning)~”
어딘가에서 나지막한 인사가 들려왔다. 집을 나와 막 우체국이 있는 대로 쪽으로 접어들려는 참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런던1존 서남부 핌리코(Pimlico)다. 교통 요지 빅토리아역과 가깝고 각 대학 캠퍼스들도
걷는 거리에 있어 한국인 유학생, 워킹 홀리데이 체류자들이 꽤나 많이 산다. 내가 사는 플랏(flat)만
해도 총 4명의 거주자가 모두 한국인이다. 각자 방을 하나씩 쓰고 부엌과 욕실 등을 공유하는 전형적인
서블렛 거주다. 지난해 7월 런던에 첫발을 디딜 때 여기 둥지를 튼 이래 이사한 적 없이 죽 눌러 살았다.
플랏메이트들과는 아침 저녁에 가끔 얼굴 마주칠 뿐 모두 각자 일상에 바쁘다. 그 중에 한 명이 나를 마
주치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한국인들끼리 ‘굿모닝’이라니 그럴 리는 없잖은가. 런던에서 외국인 친
구들을 여럿 사귀긴 했지만 그 중에 핌리코 인근에 사는 이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나는 목소
리의 주인공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길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아는 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걷는 방향 1m 앞의 남자일 수밖에 없었다. 가슴팍까지 오는 빗자루를 마치 마이크 스탠드처럼 팔꿈치에
걸친 채 싱글싱글 웃는 남자. 예순 가까이 돼 보이는 흑인 청소부. 그가 내게 인사한 것이다.
“굿.. 모닝..” 나는 얼떨결에 답했다. 딱히 인사를 건넨 이유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예컨대 길을 묻
는다거나(현지인 청소부가 누가봐도 아시안인 내게 길을 물을 리도 없겠지만) 떨어진 물건을 지적하는 것
같은. 빗자루가 지나쳐 온 방향 따라 말끔해진 길이 펼쳐져 있었다. 빗질을 하다 잠시 쉬며 고개를 들어
인사한 것일까. 그는 내가 지나칠 때까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보였다. 새벽 몇 시에 나왔는지,
그가 지나치는 모든 이에게 그런 아침인사를 건네 온 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평온한 미소는 그때까
지 일그러졌던 내 얼굴을 황급히 펴게 만들었다. 나는 마치 남의 물건에 손대다 들켜서 멋쩍어진 사람처
럼 당황했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목줄을 한 검은 개를 끌고 템즈강변 쪽으로 산책 가는 중년 남성이 보였다. 아침부터
정성스레 씻긴 듯 매끈한 털이 아침 햇살에 빛났다. 맞은 편에선 선글라스를 끼고 핫팬츠 차림으로 뛰어
오는 여성이 보였다. 런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러너들이다.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 때고, 좁은 골목이
건 큰 대로변이건 손쉽게 이렇게 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해는 일찌감치 떴지만 거리는 이제 부산해
지는 기분이었다.
런던의 시간은 한국보다 느리게 흘러간다. 이곳에선 대형마트와 우체국 등 관공서를 제외하곤 상점들이
꽤 늦게 연다. 세탁소만 해도 오전 9시에 열어서 오후 6시면 닫는다. 출근 전에 드라이할 옷을 맡기고 밤
11시에 찾으러가는 한국식 세탁소를 생각했다간 낭패 보기 일쑤다. 평일밤 11시까지 운영하는 세인즈버리
등 대형수퍼도 토요일은 9시까지, 일요일은 5시까지 운영하고 닫는다. 24시간 편의점이 골목마다 있는 곳
은 서울 뿐이 아닐까 싶다. 은행은 오후 4면 닫고, 볼일을 보려면 미리 예약해야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인터넷 와이파이가 많이 공급되긴 했지만 여전히 지하철의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보다는 책이나
신문을 들여다본다. 한국의 차도를 요동치게 하는 크락션 소리를 잘 들을 수도 없다. 사우스뱅크나 바비칸
같은 공용시설은 시민에게 공간을 개방해서 학생이건 취준생이건 자유롭게 드나들며 공부를 하고 세미나도
한다. 공공박물관은 입장이 무료다. 콘서트 티켓값이 싸진 않지만, 5파운드 정도 내면 서서 볼 수 있는 입
석표도 풍부하다. 요컨대 이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고 있다. 그 저녁에 충실하기 위해 헌신하는
낮 동안은 각자 자리에서 직업인으로서 자긍심을 발휘한다. 한국에서 서비스 업종에 강요되는 ‘감정노동’
따위는 없다. 고객이든 직원이든 원칙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청소부가 먼저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여유,
그 인사에 화답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이곳에서 영어회화 밋업을 하는 동안 한국뉴스가 화제가 된 게 몇 번 있다. 그 중 압권이 하버드-스탠퍼드
대 동시 합격 천재소녀의 거짓말 소동이고 다른 하나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다. 전혀 관계가 없
어 보이는 두 사태이지만 해외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볼 때 불가사의하고 이해되지 않는 대표사례들이기도
했다. 남부럽지 않게 잘 살게 됐지만 여전히 성공컴플렉스에 시달리며 자녀교육에 올인하고 고학력으로 보
상받으려는 몸부림. 세계 최고수준의 교통망과 통신망을 갖췄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는 ‘소통의 벽’에 갇
혀 공유되지 못하고 서로를 불신하는 정부 거버넌스와 시민의식.
영국문화나 영국사회가 한국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다. 영국인들의 참을 수 없이 느린 일처리와 이해되
지 않는 매뉴얼을 되풀이하는 원칙주의가 답답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여기선 기다리고 기다리면 원칙대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이 있다.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최하위 직원을 닥달하는 소비자의 ‘갑질’이 통용
되지 않는다. 한국의 직업인들이 각자 전문성에 대한 존중을 받는다면 천재소녀가 최일류대학에 대한 압박
을 덜 받지 않았을까. 메르스 사태에서 상호이해관계에 얽힌 ‘정보 은폐’의 욕망이 상대적으로 덜하지
않았을까.
그날 아침 나는 결국 우체국에서 책을 반송하는 데 또다시 실패했다. 하지만 아마존 고객서비스와 몇 차례
통화한 끝에 3주만에 내가 결제한 금액 전부가 환불됐다. 나를 상대한 어느 직원도 “사랑합니다 고객님”
“비밀번호 눌러주실게요” 같은 간지러운 말을 하진 않았다. 다만 그들은 되풀이해서 “정해진 약관에 따
라 내 권리가 보호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 다음에 같은 일이 생긴다면 한층 여유를 갖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귀국을 앞두고 1년 간의 경험이 과연 어떻게 나
를 변화시킬지, 한국사회의 변화에 일조하게 될지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