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 지겨우면 인생이 지겨운 것”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런던엔 사시사철 눈과 귀를 사
로잡는 크고 작은 이벤트가 열린다. 처음엔 하나라도 놓칠까 성급히 결제 버튼을 누르지만,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잦은 문화행사에 이내 ‘실탄 위기’를 겪는다. 남는 건 마이너스 통장을 쥔 런던
의‘문화 된장녀’다.
이걸 극복하는 방편 중 하나가 ‘멤버십’ 가입이다. 대부분의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등은 연간
회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본인 관심사에 따라 두루 가입하길 권한다. 1년간 해당 행사를 무료 혹
은 할인가로 감상할 수 있는데 결산해보면 최소 본전은 뽑을 수 있다.
먼저 전시 할인. 알려진대로 런던의 공공 박물관, 갤러리는 입장이 무료다. 단 이는 상설전시에 한
해서다. 진짜 앙꼬는특별전(기획전)이다. 큐레이터와 박물관 측이 적게는 1-2년, 길게는 5년전부터
준비해서 선보이는 야심작들이다. 그런만큼 이들 전시를 보면 현대 예술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
는지, 주요 작가의 대표작과 경향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다. 대신 입장권 가격도 침이 넘어가게 비
싸다.
예컨대 런던 도착하자마자 찾아갔던 테이트모던의 마티스 기획전과 말레비치 회고전. 통합 입장권 가
격이 22파운드(약 3만7천원)에 달했다. 이걸 따로 끊느니 테이트 멤버십(연 69파운드, 데빗 카드 결제
시 62파운드)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런던의 테이트모던, 테이트브리튼과 리버풀의 테이트리버풀 등
모든 ‘테이트 뮤지엄’을 1년간 무료료 이용할 있다. 나는 런던의 두 테이트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기획전을 섭렵해서 반년도 안돼 본전을 뽑았다.
바비칸 멤버십도 가입했다. 런던 최대 문화복합공간 바비칸센터의 모든 전시를 무료 입장할 수 있고
(전시당 평균 8~10파운드) 바비칸 상영 영화 할인을 적용받았다. 또 바비칸 내 모든 카페에서 주문시
10~15% 할인을 받는데 이것도 1년간 돌아보면 쏠쏠하게 도움이 됐다.
다만 가입하고 제대로 활용 못한 멤버십도 있다. 잉글리쉬 헤리티지 멤버십이 대표적이다. 영국 지방
에 산재한 ‘잉글리쉬 헤리티지’에 무료 내지 할인입장할 수 있는 회원권으로 연 49파운드. 문제는
자가용이 없다보니 지방 구석구석 여행할 기회가 없어 활용할 일이 없었다. 뒤늦게 홈페이지(www.eng
lish-heritage.org.uk)를 찾아가니 런던 근교에서 열리는 회원 전용 이벤트도 많았는데 이걸 미처 챙
기지 못한 게 아쉽다.
다음은 공연 할인. 런던 문화생활에서 가장 고심한 게 이것이었다. 공연장과 공연 종류에 따라 천차
만별이긴 해도 한번 보려면 40-50파운드는 치러야 제대로 된 좌석에서 즐길 수 있었다. 공연 성수기
에 일주일에 두세번씩 이런 공연을 보고나면 부실한 은행 잔고에 금세 빨간불이 켜진다. 분명한 건
공연의 경우 ‘싼 게 비지떡’이란 사실이다. 서둘러 예약하고 괜찮은 자리에서 제값을 낼수록 관람의
질은 높아진다.
그래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아닌가. 가장 유용했던 것은 Student Pulse라는 어플이었다. 주요
공연을 학생 할인으로 예약하게 해주는데, 가입 때 딱히 학생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 이 어플에 고
지되는 공연들은 최상급 공연까진 아니라도 믿고 볼 수 있는 수준급들이다. 바비칸센터에서 런던심포
니 오케스트라를 7파운드에, 데니스 마추에프의 피아노 공연을 단돈 5파운드에 볼 수 있었다.
또다른 방법은 ‘데이시트’를 노리는 것이다. 런던의 뮤지컬/연극/발레 등 주요 공연은 대체로 이른
아침 한정된 좌석을 ‘폭탄 가격’에 내놓는다. 물론 선착순이다. 오전 10시쯤 데이시트를 판다고 하
면 이보다 1~2시간 전에 가서 줄서야 한다. 로열오페라의 경우 데이시트를 매일 67매 내놓는데 프로
덕션과 좌석 구역마다 금액은 다르지만 어쨌든 원래 가격의 절반도 안되는 값에 살 수 있다.
가끔은 이벤트로 ‘깜짝 할인’을 하기도 한다. 나는 Young Vic에서 매진 행렬 중이던 연극 ‘욕망이
라는 이름의 전차’(질리언 앤더슨 주연)를 ‘로또 추첨’에 당첨돼 볼 수 있었다. 오후 5시까지 줄
서서 대기표를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운 추첨을 했는데 여기에 뽑힌 이들은 그날 저녁 공연을 15
파운드(원래 가격 30-40파운드)에 보는 거였다(매일 20매 한정). 가끔 홈페이지에서 일괄 가격에 선착
순 할인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극장과 프러덕션의 고도의 상술이자 대서민 서비스라는 건 두말할 나
위 없다.
실은 공연 할인을 위해 멤버십을 하나 가입했었다. 공연 예매 때마다 붙는 결제 수수료(평균 3파운드)
가 아까워서 이걸 아끼려고 예매대행사 ATG 멤버십에 들었다. 그러나 모든 공연이 해당되는 것도 아니
고, 위에서 열거한 방식으로 싼 표들을 구해 보다보니 멤버십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렇듯 각종
멤버십은 자신의 취향과 동선, 재력 등을 감안해 신중히 골라 가입하길 바란다.
공연과 관련해 또다른 할인 루트는 국제적 ‘번개 사이트’라 할 밋업(www.meetup.com)에서 공연관람
밋업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이 밋업이라는 것은 내 런던 생활의 최대 활력소이자 현지 친구 사귀기의
중요한 발판이었다.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다음 편에서. ‘내가 런던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밋업에
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