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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연수생활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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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이민가방을 끌고 혈혈단신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지 딱 6개월이 지났다. 처음엔 낯선 곳에
혼자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개학하고서는 영어에 절절매느라, 방학 때는 ‘정신줄’ 까지 놓고
노느라 런던 생활을 뒤돌아볼 틈이 없었다. 반환점을 돌아선 이 시점에서야 LG상남언론재단 홈페이지
에 접속해 다른 연수자들의 연수기들도 보면서, 나도 그간의 시간을 되새김할 여유가 생겼다. 


내가 해외연수기간을 함께 하기로 선택한 과정은 런던시티대학(City, London University)의 파이낸셜
저널리즘(석사과정)이다. ‘런던’에 있는 ‘금융과 비즈니스’에 특화된 ‘저널리즘’ 과정을 구글검색으로
찾다가 알게 되었다.


가족단위 연수가 아닌 나홀로 해외연수이기 때문에 미국보다는 영국, 한적한 교외 보다는 대도시를 찾다
보니 런던이 가장 적합한 도시였다. 매스미디어가 일찌감치 발달한 이곳에는 저널리즘으로 유명한 학교
들이 여럿 있지만, 시티대학의 저널리즘 과정은 이론보다는 실습을 중심으로 구성된 점이 달랐다. 혼자
앉아 책을 파고 들어야 하는 이론 위주 수업보다는 실습 위주의 수업이 영어 공부와 실제 업무에도 도움
을 주는 ‘일석이조’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절반 이상이 지난 지금 되돌이켜 보면, 나의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반년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 영어 ‘울렁증’


해외 연수에서 영어가 나아지길 기대하지 말라고들 하지만, 내 경우는 좀 다를 줄 알았다. 한국에서도
아주 못하는 편은 아니었고, 이곳에 와서도 본격적인 학교 수업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사람
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얘기는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어느 하나 쉽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 듣기와 말하기가 물론
가장 난해하다. 영국식 액센트는 가뜩이나 어려운 리스닝을 더욱 어렵게 한다.


워밍업을 위해 등록한 입학전 영어과정(Pre-sessional) 첫 수업날. 오전 8시 30분 시작인데, 20분 가량
일찍 도착했다. 출입구가 닫혀 있길래 프론트에 있는 직원에게 문을 열어달라 했더니, “하~파스테이트,
하~파스테이트”라며 문을 열어주질 않는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재차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여전
히 “하 파스테이트”. 어리둥절해 하고 있으니 그제서야 다시 이야기를 해준다. “The door will be
open at eight thirty”. 영어인가 싶었던 그 말은 결국 “half past eight”이었다. ‘해프 패스트’가
아니라 ‘하프 파스트’구나, 이곳에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자, 영어 때문에 내내 애를 먹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클라스메이트의 절반이 네이티브 스피커인데다 나머지도 런던에서 공부를 한 유럽국가 출신이 다수였다.
나와 남미 친구들이 가장 못하는 축이었다. 영국식 영어라 잘 안 들리나 싶었지만, 같은 반 미국 친구의
얘기도 알아듣기 힘든 거 보면 엑센트를 탓할 것도 아니다.


말하기는 더욱 겁났다. 점점 ‘동양에서 온 과묵한 만학도’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말이 안되고, 안 들리
다보니 수업에서도 소극적이 되었다. 거북이 목처럼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아르헨
티나와 브라질에서 온 마리아와 파비오는 나보다 영어 문법이나 어휘실력은 부족했지만, 수업시간에
짧은 영어로 질문도 척척하고 선생이 묻는 질문에 답도 곧잘 했다. 특히 코소보, 이집트에서 온 기자
출신 동급생은 한번 입을 열면 닫지를 않았다.


반면, 난 얘들이 쉴새 없이 떠드는 상황에서(속으론 답답해 미치겠지만) 염화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
이는 데 그쳤다. 어쩌다 나한테 질문이 나와도 가장 짧은 영어로 대답하고, 얼른 시선이 나한테 떠나길
바랐다. 그러나 이 친구들은 한번이라도 말할 기회가 주워지면 마이크를 놓지 않고 해댔다. 특히 TV 뉴스
제작수업에서 난 최대한 스크린 뒤로 숨으려 했지만, 이 친구들은 그 부족한 영어실력에도 굴하지 않고
앵커를 시켜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이렇게 몇 개월이 흐르다 보니 내 실력은 정체돼 있는 반면, 이
친구들의 영어실력은 변화가 눈에 띄었다.  


영어가 늘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얼굴에 철판을 장착”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그 쪽팔림’을 무릅쓰고 입을 떼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아직도 내입에서 더듬더듬 기어 나오는 브로큰
잉글리시를 내 귀로 들으며 ‘셧더마우스’ 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이제는 이럴 때마다 속
으로 되뇐다. “그래 나 영어 못해. 하지만 외국어니까 못하는 게 당연하고, 잘하는 게 신기한 거지!”  



영어 실력향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철판!


영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영어에 기죽어서 보낸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다. 해외(특히 서양)
에선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 물을 얻을 수 있다. 적극성은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데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해외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는 점에서 절대로 중요한 덕목이다. 


이 과정의 대부분이 실습위주다. 기사작성, TV뉴스 제작이 주를 이룬다. 수업은 이를 위해 알아야 할 것
들을 설명하고 실제 해보는 데 전부 할애된다. 가장 이론에 충실한 수업이라 할 수 있는 언론윤리 과목
마저도 실제 사례를 갖고 그룹별로 토론해서 어떻게 보도할지, 그 보도 방침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는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좀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록 내가 얻어 가는 것이 많다. 수업시간엔 학생들의 질문
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는 궁금한 것이 있어도 수업시간이 끝나고 조용히 묻는 데 익숙하지만, 이곳 학
생들은 수업시간에 가급적 해결을 본다. 특히 자신들이 원하는 것(예컨대, 인턴자리) 등을 얻기 위해 적
극적이다 못해 전투적으로 질문하고, 의견을 개진한다. 바보 같은 질문을 던져 교수한테 그다지 좋은 반응
을 얻지 못할 때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그런 과정들이 하나하나 누적돼 커가는 과정인 것을, 교실안
의 모두가 알고 있다. 


이곳의 과정은 딱 내가 원하는 내용과 구성의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나의 영어
울렁증과 소극성으로 인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100% 만족스럽지가 않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앞으로 연수 오실 분들과 아직 절반의 연수생활이 남아있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영어?
어차피 네이티브 스피커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고작 1년의 연수생활을 통해 능숙해지긴 힘들다.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고(단, 웃으면서) 입을 열라! 더 많이 소통할 수록, 더 많이 얻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