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아파트에 살다 보면 옆집 사람과 대충 눈인사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 이웃과 교류하며 지내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옆집에 또래 아이들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고 친하게 지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몇 가지 사례로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미국 일반 가정집의 생활을 엿보다 보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필자는 현재 미국 메릴랜드(Maryland) 락빌(Rockville)시 킹팜(Kingfarm)이라는 빌리지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미국에 정착하고서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다. 다섯 살짜리 아들 녀석이 심심했던지 옆집 딸아이와 놀고 싶다고 해 실례를 무릅쓰고 지나가는 옆집 아줌마에게 말을 걸었고,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게 됐다.
옆집 엄마의 이름은 에이미. 전형적인 미국 아줌마다. 얼굴은 자그마하지만, 좀 살집이 있는 몸매에 수다스럽다. 필자의 와이프를 만나든 동네 사람을 만나든 한바탕 수다를 떨어야 직성이 풀리는 귀여운 아줌마다. 남편인 마이크는 미 육군에 근무 중이다. 어찌하다 보니 아이를 넷이나 낳게 됐다며 가정에서 네 자녀와 전쟁을 치르는 아저씨다.
막내딸의 이름은 엘리사. 미국 현지 리틀 뷰티 대회에 나갔을 정도로 예쁘장한 외모를 자랑한다. 커다란 파란 눈에 곱슬한 금발. 인형같이 생긴 사랑스러운 아이다. 본인 스스로 예쁜 것을 알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깜찍한 면모를 보일 때도 있다. 먼 훗날 언젠가 유명 영화배우가 될 것 같아 잘 대해주고 있다. (^^)
그 위로 이란성 쌍둥이 6살 형제가 있다. 그중 한 명은 브레이든. 정말 잘 먹는다. 필자의 집에 놀러 오면 눈치 안 보고 먹을 것을 요구한다. 미국 아이들의 영어는 간단하지만, 웅얼거리는 말투인데다 브레이든의 경우 남부 사투리도 섞여 있어 무슨 말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때도 있다. 브레이든은 그런 나를 배려한다며 이렇게 먹을 것을 달라곤 한다. 썸띵 투 이! 에이! 티!(Something to E!A!T!) 또는 에프! 오! 오! 디!(F! O! O! D!). 그 이후로 필자도 브레이든을 볼 때마다 이렇게 물어본다. 유 원 에프 오 오 디?(You want food?) 그러면 브레이든은 큰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쌍둥이 중 또 다른 한 명은 곱상한 외모의 남자아이, 저스틴이다. 하지만, 생김새와는 달리 개구쟁이 기질이 다분한 터프한 성격인데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냄새를 풍긴다. 필자의 와이프는 저스틴이 예쁘게 생겼다고 좋아하지만, 필자의 집에 잠시 놀러 온 후 나가면 추운 겨울에 창문을 활짝 열고 바닥을 걸레로 몇 번이고 닦아댄다. 발 냄새가 없어질 때까지.
(사진 1) 필자와 아들녀석(가운데), 브레이든(우)과 엘리사(좌)
(사진2) “I really love watermelon
(사진설명 : 한번은 브레이든에게 수박을 줬다. 브레이든은 반가운 표정으로 “I really love watermelon”이라고 말한 뒤 껍질마저 뚫을 기세로 이렇게 먹어치웠다. 남은 반통은 싸 달라고 하더니 집으로 가지고 돌아갔다.)
이렇게 개성이 강한 옆집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필자의 집을 찾아온다. 필자의 아들 녀석과 놀기 위해서다. 아들 녀석이 미국 아이들과 떠들며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최근엔 약간 성가신 측면도 없지 않다. 옆집 아이들의 방문 횟수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에이미는 남편 월급만으로 물가 비싼 이곳 워싱턴 근교에서 아이 넷을 키우기가 버겁다며 하소연하곤 했는데 얼마 전 미국 내 대형마트 중 하나인 Target에 일자리를 구했다. 그 때문에 에이미는 오후에 집을 비우게 됐고, 가끔 남편인 마이크 혼자 아이 넷을 돌보는 경우가 생겼다. 하지만, 마이크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닌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마이크는 아이 넷을 두 개조로 나눈 뒤 ‘브레이든-엘리사’조를 필자의 집으로 급파한다. “Sorry와 Appreciate를 연발하면서 말이다. 에이미는 근래 들어 미안한지 본인 혼자 아이를 돌볼 때면 필자의 집에 아이 맡기는 것을 자제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그런 옆집 사정을 보고 있노라면 미국의 평범한 가정에서도 자녀 양육은 쉽지 않은 문제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브레이든과 저스틴, 그리고 엘리사. 옆집 아이들의 느닷없는 방문은 필자에게 때로는 즐거움을 안겨주고 때로는 성가신 일이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미국 연수생활의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