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VR 시대, 조지아대의 최신 커뮤니케이션 연구
제가 연수 중인 미국 조지아대 그래디 칼리지(저널리즘·매스 커뮤니케이션 대학)는 최신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메타버스·가상현실(VR) 환경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선도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VR 랩(Lab)의 경우, 미국 대학 중에서도 일류 수준의 설비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김주영·안선주 등 두 분의 한국인 교수들이 관련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데, BCP 펠로우 프로그램에서도 이 주제에 관해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2차례에 걸친 BPC 세미나를 통해 맛보기로 접한 내용을 공유해봅니다.
1. 메타버스에 사활 거는 미국 기업들
김 교수 설명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는 메타(구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소위 ‘테크 공룡’과 칩을 개발하는 엔비디아 등을 넘어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산업계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회계법인들이 앞다퉈 메타버스 담당 부서들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계적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언리미티드 리얼리티(Unlimited reality)’ 사업을 출범하고 ‘디멘션(Dimension) 10 스튜디오’를 만들었습니다.
초대형 유통업체 월마트도 메타버스에 뛰어들기 위해 상표권 등록을 했는데, 신고한 사업영역에는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 ‘디지털 토큰’ ‘가상 상품 온라인 소매점 서비스(On-line retail store service featuring virtual merchandise)’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전자제품 유통업체 베스트 바이는 고사양 컴퓨터 시장을 겨냥해 메타버스 투자에 나섰고, 패션잡지 보그는 메타버스에서 패션위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심지어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라는 메타버스 플랫폼 내 부동산 거래를 겨냥, 가상 부동산 매입을 위한 자금을 전문적으로 대출해주는 ‘테라제로(TerraZero)’라는 회사도 등장했습니다.
2. 메타버스 내 상호작용의 특징 및 메타버스의 위험성
김 교수는 지난해 말 발표한 논문에서 메타버스를 ‘An interoperated persistent network of shared virtual environments where people can interact synchronously through their avatars with other agents and objects’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론적 관점에서는 ‘가상 환경’ ‘상호작용’ ‘구현된 행위자(아바타)’ ‘동시 발생’ ‘몰입감’ 등이 모두 충족돼야 메타버스로 인정됩니다.
메타버스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아바타의 개입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소통하는 게 아니라, 아바타를 한 번 거쳐서 소통하는 것입니다. 진짜 자신과 아바타 사이에 1차 소통이 이뤄지고, 이어 아바타들 간에 2차 소통이 진행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여기서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의 소통이 과연 똑같은가’ 하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또 아바타를 통한 메타버스 상호작용에선 이른바 ‘프로테우스 효과(Proteus effect)’의 영향이 크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프로테우스 효과는 자기 외모에 대해 본인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즉 가상현실 속 아바타의 외형에 따라 내가 상대와 소통하는 태도도 달라지게 되는데, 멋진 아바타를 배정받은 피험자가 타인과의 거리를 더 가깝게 유지했다는 게 스탠퍼드대 연구 결과입니다. 이 효과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외모지상주의가 더 심해질 위험성도 있습니다.
아바타의 뒤에 숨을 수 있는 메타버스 특성상 성범죄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블로그 미디어인 ‘미디엄’에는 메타의 ‘호라이즌 월드’에서 남성 아바타 3∼4명에게 집단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VR 기기를 통해 내 위치는 물론 키와 팔 길이 같은 신체 정보, 시선의 움직임(그에 따른 감정변화 유추까지) 등 온갖 개인정보가 흘러나갈 수 있다는 지적도 높습니다.
3. 저널리즘에서 VR 활용의 장점과 한계
메타버스 플랫폼이 모두 3D 환경을 구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메타버스의 중요 요소인 몰입감을 가장 높여주는 것은 역시 진짜 같은 3D 가상 공간입니다. 안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메타버스가 네이버의 ‘제페토’처럼 PC 또는 모바일 VR 위주로 ‘아바타 꾸미기’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미국의 관련업계는 사실상 모바일 VR을 버리고 3D VR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에 메타의 ‘오큘러스 퀘스트2’ 같은 HMD(Head Mount Display)’가 주류로 자리를 굳혔고, 머리의 움직임뿐 아니라 몸 전체를 추적할 수 있도록 VR 글러브(장갑), VR 베스트(조끼) 등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VR 글러브의 경우 미묘한 전기자극으로 무게감을 느끼게 해주는데, 빗방울이 손에 닿을 때 느껴지는 무게까지 체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실감 나는 VR이 저널리즘과 결합하면 그야말로 가장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습니다. 독자 혹은 시청자를 넘어 현장에서 실제로 경험시켜 주는 것 같은 스토리 텔링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같은 사건을 가해자의 시각, 피해자의 시각, 수사관의 시각 등 여러 시각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안 교수는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안 교수는 저널리즘 영역에 VR을 결합할 경우 한계와 단점도 뚜렷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 직접 경험하는 듯한 몰입감은 장점인 동시에 최대의 단점도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객관성 하락 때문입니다. 글이나 2차원 화면에 비해 압도적으로 생생하므로, 자신이 본 콘텐츠를 맹신할 위험성이 커집니다. 객관적 독자·시청자로서가 아니라 실제 전쟁 한 가운데 있는 인물 A의 입장에서 감정적·주관적으로 뉴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실제로는 제작자가 의도한 관점으로 ‘재창조된 현실’을 경험하게 되는데, 체험하는 와중에 과연 ‘팩트 체크’를 하며 비판적으로 정보를 판단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 너무나 많은 정보가 동시다발적으로, 그것도 3D 가상 공간에서 시각·청각·촉각(나중에는 후각·미각까지 가능해질 것입니다)을 통해 전달될 경우 오히려 주된 메시지를 놓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안 교수는 “정보 과잉으로 과부하(overload)가 걸려, 오히려 정보처리 능력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실제 VR 교육 콘텐츠로 실험을 해 보면, 피험자인 아이들이 원래 전달하려는 맥락(학습에 필요한 ‘재미 없는’ 정보)을 벗어나 자기가 관심 있는 것(배경으로 만들어둔 강아지를 쫓아간다든지)만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안 교수는 이런 현상이 저널리즘 콘텐츠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