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맘편하게 車운전하기… ‘렌트’부터 ‘내비’까지 A to Z
자동차 운전은 나름대로 문화 영역이다. 차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와 별개다. 관건은 현지인 흉내를 얼마나 비슷하게 잘 내느냐다. 그래서 관찰이 중요하다. 걱정이 많았다. 주워듣다 보니 알아야 할 게 산더미였다. 머리가 복잡해지자 몸이 위축됐다. 외려 좀 무모해져야 사고 안 치지 싶었는데 정말 그랬다. 흐름에 맡기면 된다.
어차피 디테일은 경험의 선물이다. 편한 길을 추리고, 길목마다 요령을 짚어 봤다. 구매와 면허는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에 해당하지만 나머지는 지역 상관없다.
▦ 렌트
자가용을 구할 때까지는 렌터카를 타야 한다. 최대한 이르게 빌려야, 시세 상관없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2021년 3월 미국 도착 시기(8월 중순)를 정하자마자 열흘 400달러가량에 계약했다. 대형 업체 둘 중에는, 에이비스(Avis) 쪽이 허츠(Hertz)보다 싸고 가성비가 나은 것 같다. 서부 갔을 때도 에이비스 차를 빌렸고, 괜찮았다.
미국 동부 플로리다 마이애미 시내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다.
▦ 구매
한국계 대표가 운영하는 페어팩스 소재 중고차 매매업체에서 1년간 탈 차를 샀다. 언론사 특파원 등 DC에 파견된 한국 주재원들의 단골 업체여서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품을 많이 들이기 싫었다. 카맥스(CarMax)나 쿤스(Koons) 같은 현지 업체가 선택지 등 면에서 나을 수 있어도 팔고 나면 끝인 반면 이곳은 서비스가 장점이다. 거래 직후 보험 가입을 도와주고 차 등록을 대행해 주는가 하면, 잔 고장 수리나 엔진 오일, 와이퍼 등 소모품 교체 같은 사후 유지 보수도 제공한다. 장거리 운행 전에 찾아가면 전반적 점검을 해 주고, 차 관련 문의에도 친절하다. 편의를 많이 봐주기 때문에 차에 관한 한엔 연수 기간 내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일찌감치 맺는 업체 측 재구매 약정 덕에 귀국 때 차 처리도 쉽다. 좀 비싸게 판다는 평이지만 되살 때 상당 부분 돌려주는 만큼 임대료로 여기면 마음이 편하다.
아이까지 세 식구라 해치백이지만 최소형차를 샀는데 가구 같은 부피 큰 짐을 날라야 할 때 불편했다. 여행 짐 줄이는 시간도 아깝다. 넉넉하다 싶은 차를 권한다.
▦ 보험
구매 때 인터넷 보험 중 하나를 골라, 가입까지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손쉽다. 많이 망설이지 않고 업체가 추천한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를 선택했다. 현지 면허증이 없는 상태에서 빨리 진행하려면 옵션이 많지 않다. 운전자 둘, 반년 700달러 남짓이었다. 한국 보험사에서 가입 이력을 확인해(온라인) 제출하면 깎을 수 있다.
미국 동부 북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 타이슨스 지구 대형 아파트 단지 인근 사거리.
신호등들이 전선에 걸려 있다. 아슬아슬하다.
▦ 면허
서두르면, 한 달 안에 현지 운전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다. 현지 면허증은 사진과 주소지가 함께 포함돼 있어, 신분 증명에 유용하다. 버지니아는 별도 테스트 없이 면허증을 교환해 준다. 적어도 두 번 차량국(DMV)에 가야 하는데 워크인(예약 없는 방문)도 되지만, 첫 인터뷰는 가능한 가장 이른 날로 미리 약속하는 편이 낫다.
서류는 긴가민가한 것까지 전부 챙겨 가자. 신청 양식(DL 7)은 주(州) DMV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해, 방문 전에 작성할 수 있다. 신청서에 기재하는 면허증 번호는 한국에서 쓰던, 국내 면허증의 번호다. DMV에도 국내 면허증 원본을 들고 가야 한다. 필요 서류는 여권, 미국 비자(J1), 출입국 신고서(I-94), 교환 방문 자격 증명서(DS-2019), 거주 증명 서류(최소 2개 종) 등이다. 거주 증명은 집 임대차 계약서, 전기 등 공공 요금 청구 우편, 주소지로 발급된 은행 서류 등으로 가능하다.
자격, 준비 서류 등에 문제가 없을 경우, DMV 측이 2, 3주쯤 뒤 재방문 일정을 잡아 준다. 이 기간 동안 DMV는 한국 경찰 측에 교환 신청자의 면허가 유효한지를 직접 조회한다. 그래서 다른 주와 달리 버지니아는 한국 영사관이 발급하는 ‘영문 공증서’가 필요 없다. 확인이 끝나면 DMV가 절차를 마무리하러 다시 방문하라는 내용의 문건을 우편으로 보내는데, 이 편지와 함께 첫 방문 때 DMV가 점검만 하고 돌려준 서류들을 다시 챙겨 가면, 신청을 접수하고 시력 검사, 사진 촬영 등을 거쳐 임시 면허를 발급한다. 며칠만 기다리면, 정식 면허증이 우편으로 집에 온다.
면허증에는 운전자의 신장과 체중이 미국만 쓰는 피트ㆍ인치와 파운드 단위로 기입된다. 길이는 금세 환산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1피트는 10인치가 아니라 12인치) 미리 셈해 가자. 즉석에서 사진을 찍는데, 카메라 위치가 낮으니 그것도 감안하자. 성인 남성의 경우 멀뚱히 서 내려다보고 찍었다가는 머그샷처럼 나오기 십상이다.
정차한 미국 스쿨버스 뒤로 차들이 줄줄이 멈춰 서 있다.
▦ 주행
안전을 위해 가급적 과속은 하지 않는 게 좋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융통성 없는 ‘준법 주행’을 고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교통은 무엇보다 흐름이 중요하다. 주변 차들이 다들 빨리 달릴 경우, 표지판의 속도 제한 수치를 10마일까지는 넘겨도 경찰이 허용하는 것 같다. 1마일은 1.6킬로미터다. 단속 카메라는 흔치 않다. 다만 커브, 오르막 등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곳에선 속도를 줄이자.
알다시피 1차로는 추월차로다. 느리게 달리다가는 뒤차가 바짝 따라붙기(tailgating) 십상이다. 하지만 장거리를 갈 때, 속도 유지만 된다면 1차로 주행이 나쁘지 않다. 앞에서 천천히 달리며 시야를 가리고 험한 길에서는 돌도 많이 튀기는 트럭을 피해 들락거릴 필요가 없다. 뒤차가 부담스러울 때는, 잠시 나갔다가 들어오면 된다.
단속 중인 경찰이 보이면, 일단 서행이 기본이다. 그러면서 차선을 바꾸고 최대한 멀찍이 돌아가야 한다. ‘무브 오버(move over)’ 규칙이다. 경찰을 위협하거나 업무를 방해하려 했다는 오해를 사면 벌금 500달러에 자칫 법원에 가야 할 수도 있다.
시내 도로의 경우 아예 멈춰야 하는 때도 많다. 먼저, 횡단보도로 사람이 길을 건널 때다. 미국은 철저히 보행자 우선이다. 그래서 적색 신호 때 길을 건너는 사람이나 무단 횡단자가 흔하다. 그렇다고 차로 들이받을 수는 없다. 그림자만 보여도 세우는 게 안전하다. 적색등을 켜고 정차 중인 스쿨버스를 만나도 그렇다. 따라오던 차는 물론, 분리대가 없다면 중앙선 너머 반대 방향 차도 정지해야 한다. 구급차나 소방차 역시 얼른 길을 터 주고 잠자코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대상이다.
미국에는 신호등 없는 교차로가 많다. 유럽에 흔한 회전 교차로는 드물고, 대부분 단순 십자형이다. 일단, 도로 오른편 빨간색 ‘우선 정지(stop)’ 신호가 교차로에 진입하려는 차들을 세우는 기능을 한다. 이 신호를 만나면, 무조건 최소 3초간 멈춰 정면과 측면을 살펴야 한다. 정지 신호 없는 길을 달리는 차가 우선이고, 정지 신호가 모든 방향에 다 있으면(all-way) 선착순이다. 교차로 도착 순서대로 출발한다.
애매하다 싶은 거리에서 신호등 노란불이 켜지면 가급적 과감하게 돌파하는 편이 낫다. 노란불 시간이 제법 길다. 무리하게 멈췄다가 뒤차가 추돌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시내 도로에서는 우회전만 가능한 차로가 수시로 나온다.
▦ 회전
미국에서는 파란불이면, 좌회전 신호 없이도 비보호 좌회전이 가능하다. 정면에서 오는 차가 뜸할 때, 기민하게 돌아야 한다. 통행량이 많아 마주 오는 차가 끊이지 않는 경우 난감해지는데, 신호가 교체되는 타이밍을 노려 보자. 빨간불로 바뀔 때 잠시 전방 차들이 정지하고 측면 차들이 미처 출발하지 못한 절호의 순간이 있다.
중앙선을 벌려 안쪽에 황색 점선을 긋고 왕복 양방향에 좌회전 화살표를 그려 놓은 곳이 있는데 좌회전 대기 공간(turn lane)이다. 정차만 가능하고 주행은 안 된다.
‘빨간불일 때 돌면 안 된다(no turn on red)’는 경고문만 없으면, 우회전은 언제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맞은편에서 좌회전하거나 왼쪽 측면에서 오는 차와 횡단보도 보행자가 없는지 교차로 앞에 멈춰 충분히 살펴야 한다. 우회전만 가능한 차로가 도로 맨 오른쪽에서 수시로 나오는 만큼 신경 써야 한다.
유턴은 금지 표지판이 없을 경우 교차로 앞의 1차로에서 비보호로 상시 가능하다.
▦ 주차
도시는 주차가 까다롭다. 혼자 다닐 때는 지하철(DCㆍ버지니아ㆍ메릴랜드는 메트로) 등 대중교통을 타는 편이 낫다. 하지만 가족 단위로 이동할 경우 자가용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 메트로가 제법 비싸고(북버지니아와 DC 초입 사이를 이동하는 데 요금이 최소 3달러) 배차 간격이 꽤 긴 데다, 접근성도 썩 훌륭한 편은 아니다.
거리 주차(street parking)가 싸기는 하다. 시간당 3달러가 안 된다. DC도 그렇다. 가능 구역마다 정산기가 있다. 요금 체계상 25센트 동전을 많이 쓰고, 신용카드로도 결제 가능하다. 하지만 대세는 휴대폰 앱(파크 모바일ㆍParkMobile)이다. 간편하다.
워싱턴DC 등 미국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리 주차 요금 정산기.
구역 번호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다.
문제는 주차 자체가 편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단, 아무데나 댈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차 라인이 그려져 있지 않으면 금지다. 장애인 전용 구역은 물론 관광 버스나 트럭, 상업용 차량 등만 허용되는 곳이 적지 않다. 입식 표지판을 살펴야 한다. 게다가 시간 제한이 있다. 통상 2시간쯤 지나면 다른 데로 옮겨야 한다. 번거롭다. 인도 턱에 바싹 대야 하고, 주행 방향과 반대로 대도 안 된다. 주변 차를 잘 보자.
좀 비싸도 건물 내 사설 주차장을 활용하면 신경 쓸 일이 적다. 10~15달러 정도면 시간 무제한이고 휴대폰 앱(스폿 히어로ㆍSpotHero)으로 적당한 곳을 찾으면 된다.
▦ 주유
일반적으로, 회원제 창고형 대형 마트 ‘코스트코’에 딸린 주유소가 가장 저렴하다. 무료로 타이어 공기압을 점검하고 에어를 보충할 수 있게 해 주는 주유소도 있다.
▦ 내비
생소한 마일 대신 익숙한 킬로미터로 거리 단위를 설정해 놓으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미국 땅이 워낙 넓다 보니 인터넷 통신 접속이 안 되는 구간이 꽤 있다. 예컨대 구글 맵을 쓸 경우 국립공원 여행 때 실시간 연결이 끊겨도 미리 경로를 저장해 놓았다면 덜 당황스러울 것이다. ‘웨이즈(Waze)’라는 내비게이션 앱이 유용한데 사용자들이 공유하는 정보를 활용해 교통 정체나 경찰 단속 구간을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