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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출산, 그리고 오바마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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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연수 기간이 절반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학실력 향상, 가족과의 여행 등 거창한 계획들이
많았지만 저의 경우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출산이었습니다. 와이프가 임신 7개월인 상황에서
미국에 입국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출산비용과 낯선 환경에서의 출산, 유학생
이나 시민권자가 아닌 상황에서 미국 보험회사가 판매하는 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한지 등 여러 걱정
거리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미국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우여곡절 끝 보험가입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해야했던 문제는 출산을 보장하는 건강보험 상품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연수
생들이 출국 전 대부분 가입하는, 국내 보험회사들의 해외 건강보험은 임신ㆍ출산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보험회사의 건강보험도 기왕증(旣往症ㆍpre existing conditionㆍ보험 가입
전부터 갖고 있는 그 보험이 보장하는 질병)은 보장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뒤 다행히 수소문 끝에 임신한 상태에서도 가입할 수 있는 건강보험을 찾았습니다.
미국 대형 보험사중 하나인 BCBS사의 건강보험이었습니다. 월 보험료가 405달러로 가장 비싼 상품
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저희가 입국한 지난해 8월은 이 건강보험에 가입
할 수 있는 기간(이를‘open enrollment period’라고 부릅니다. 미국에서는 한 해의 특정 시기인
이 기간에만 보험 가입이 가능합니다. 통상 11월~다음해 2월)에 해당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주
로 이주한 지 60일 이내에 가입가능’이라는 예외조항 덕분에 보험 가입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보험회사는 꽤 까다로왔습니다. 가입서류를 낸 뒤에도 ‘미국에서의 안정적인 체류’를
입증하는 보완서류를 여러 차례 요구했고 사소한 트집을 잡았습니다. 결국 신청서를 낸 지 40일
넘게 지나, 출산 예정달을 며칠을 앞두고 가까스로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임신
후기에 보험에 가입할 경우 회사가 손해를 볼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아마 좀더 까다롭게 굴지 않
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자연분만 출산수가, 한국의 7배

 

가장 궁금한 것은 출산비용일 것입니다. 출국 전 “미국에서 출산하면 돈 천만원은 족히 들 것이
다. 만약 조산이라도 하면 억대가 깨질지도 모른다”며 농반진반 주위 분들이 염려하는 말씀을
들었기에 저희도 매우 궁금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출산비용은 산모의 상태, 병원의 성격이나 규모에 따라 편차가 있습니다. 저희 경험으
로 말씀드리자면 보험이 없다면 중산층에게는 결코 만만한 비용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저희가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청구명세서를 살펴보겠습니다. 보험회사가 병원에 지불해야 하는 전체 출산
비용(자연분만 출산비용,대학병원 2박3일 입원, 산전 초음파 검사 1차례)의 합계는 약 6,400달러
입니다. 이 가운데 저희가 낸 보험료(3개월분)와 앞으로 내야 할 자기부담금(deductible)의 총액,
즉 순수하게 저희가 부담해야할 액수는 3,215달러입니다. 전체 출산비용을 보험회사와 저희가 절
반씩 부담한 셈입니다. 생각보다 싸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 비용에는 산후조리 비용이 빠진 것
을 고려해야 합니다. 국내에서는 출산비용의 상당부분이 수백만원대의 산후조리원 비용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더 세분화해 한국과 미국의 자연분만 출산비용을 비교해 보면 격차가 좀더 실감이 납니다.
가령 국내병원의 출산수가(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지불하는 비용)는 36만원(2015년 기준)인데
미국의 보험회사가 미국 병원에서 지불하는 자연분만 보험수가는 2,397달러였습니다. 7배 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지요. 또 와이프가 출산을 며칠 앞두고  초음파 검사를 한 번 받았는데 병원이
보험회사에 청구한 비용은 331달러(환자 부담분 140달러)였습니다. 국내 초음파검사 건강보험
수가가 5만원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이 또한 6배에 가깝습니다.
 
여담이지만 초음파 검사의 경우 비용 문제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 임산부에게
는 산전에 단 한번만 한다고 합니다. 와이프가 한국에서 산전 검사를 할 때는 다달이 초음파
검사를 받았지만 미국에서는 촉진이 흔했습니다. 즉 미국에서는 산전 진찰을 받을 때는 의사들은
손으로 산모의 배를 만져 아기의 위치를 확인하고, 줄자로 배 둘레를 재 아기의 크기를 측정한다
고 합니다. 어쨌든 저희가 제왕절개를 했다면, 그리고 보험이 없었다면 부담해야할 출산비용은
최소한 1,500만원이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환자당 의료인력 한국보다 많은 점 두드러져

 

한국과 미국에서 출산을 모두한 저희 경험에 비춰보건대 의료비 격차를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중
하나는 의료인력의 숫자가 아닐까 합니다. 저희는 미국병원에서 출산후 2박3일 동안 입원했는데
산모와 신생아를 돌보기 위해 병실에 들른 간호사는 주사를 놓는 간호사, 아기를 목욕 시키는
간호사,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는 간호사, 산모를 돌보는 간호사 등으로 세분화돼 있었습니다.

 

OECD의 보건통계(2011년)로 살펴봐도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숫자는 미국(11.1명)이 한국(4.7명)
에 비해 2배 이상 많습니다. 여기에 간호사 한 명이 맡는 환자의 숫자가 미국이 훨씬 적기 때문
에 좋은 서비스가 가능하겠지요.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도 미국(2.5명)이 한국(2.0명)보다
20% 가량 많습니다. 높은 의료 비용을 발생시키는 원인은 여러가지겠지만 이처럼 환자당 진료ㆍ
간호하는 인력 숫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비싼 미국의 출산비용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인 저희가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비용으로
출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보험을 강제한 ‘오바마케어’덕이 아닐까 합니
다. 미국의 보험회사들이 만약 오바마케어 이전(2013년)이라면, 저희가 가입한 보험과 같은
거액의 의료비를 보장해야 하는 보험을 판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현지 보험 에이
전트의 설명이었습니다. 외국인이지만 까다로운 보험가입 절차를 통과한 것도 오바마케어 덕택
이라고 봅니다.

 

참고로 오바마케어법으로 불리는 개혁의료법(ACA)의 핵심은 개인이 평생 보험사로부터 지원받
을 수 있는 의료비 한도 설정 금지, 기존 질병 및 병력을 이유로 보험가입 거부 금지, 저소득
층 의료보험(메디케이드)확대 등입니다.

 

시행 3년차를 맞은 오바마케어는 의료비용 증가를 둔화시켰고, 저희 같은 외국인들에게도 간접
적이나마 혜택을 주는 등 정착단계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민간보험을 이용해야 하는 만큼
보험료의 급격한 인상(저희가 가입했던 보험의 경우 올해 월 보험료가 490달러로 25%가까이
인상됐습니다) 등으로 부담이 커졌다는 일각의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오바마케어를
줄곳 반대해온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현실에서 오바마케어의 앞날이 궁금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