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 연수지를 결정할 때 여러 고려 사항 가운데 하나는 바다 낚시를 즐길 수 있는지 여부였다.
한국에서 골프는 다음날 티업 약속이 잡혀있을 때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귀찮다는 생각이 앞섰다. 반면 바다 낚시가 예정돼 있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딸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다음날 에버랜드 간다며 “잠이 오지 않는다”며 설레어 하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듯싶었다. 골프채는 10여년이나 된 구닥다리를 치고 있지만 낚시 채비만큼은 값비싼 전동릴 등을 구비했다.
집사람은 “낚시 갈 때 정성만큼 다른 일을 눈에 불을 켜고 했으면 벌써 마누라 호강시키고도 남았겠다”며 비아냥거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잡은 물고기 밑밥 주는 것 봤냐”며 가볍게 응수한 뒤 바다로 휘리릭 날아가곤 했다. 그렇다고 바다낚시를 많이 다녔던 것은 아니었다. 일요일에도 출근하다 보니 토요일에만 갈 수 있는데다 물때와 날씨도 맞추고 다른 일정도 감안해야 하고 낚시 비수기인 겨울을 제외하다 보면 기껏 일년에 3~4번이 고작이었다.
이 때문에 처음 연수 대학은 플로리다로 정했다. 대학 선배가 잠시 교수로 있던 대학이었는데 “낮에 골프치고 저녁에는 대서양에서 보트 타고 별을 보며 낚시했는데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었다”나. 꿈에 부풀어 있는데 집사람이 굴왕신처럼 얼굴이 일그러지며 반대했다. 플로리다는 봄만 돼도 거리에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뜨겁다는데 애들 일사병 걸리게 하고 싶느냐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곳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로 온 뒤 시름에 빠져있던 차에 지난해 9월 버지니아 비치(Virginia beach)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히 피어(Pier)에서 낚시를 하게 됐다. 피어는 바다나 강쪽으로 100~150미터쯤 나무 교각을 박아 그 위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말한다. 그날 같이 갔던 다른 연수자와 함께 4시간 가량 낚시를 해서 아이스박스를 절반 이상 채웠다. 바다에 바늘을 넣기만 하면 도미와 조기의 중간쯤 되는 스팟 피시(spot fish)가 올라오는데 그런 낚시 천국이 없었다. 사실 한국 연안은 물고기 씨가 말라서 재미를 보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 뒤부터 이곳 연수자들이 애용하는 사이트를 뒤졌다. 대략 180마일(290킬로미터), 3시간 정도 자동차를 몰고 가면 노스캐롤라나 남부 해안의 윌밍턴(Wilmington) 등지의 피어에서 바다낚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며칠 뒤 다른 연수자들과 함께 당일 저녁 동네 사람들과 회 파티를 기대하며 새벽같이 출발했다.
집사람도 버지니아비치에서 잡은 스팟 피시를 소금을 뿌려 구워 먹기도 하고 매운탕도 끓여먹어 보고는 오히려 등을 떠밀었다. 집에서 빈둥빈둥 노느니 반찬거리라도 마련해서 살림에 보태라나. 한국보다 싸다고 구워먹는 쇠고기도 한두 번이지, 미국 음식에 가족 모두가 물려 있던 차였다. 스팟 피시는 아가미 근처에 점이 하나 있어서 붙은 이름인데 맛이 좋아서 미국 사람들도 선호하는 물고기다.
하지만 웬걸, 입질은 줄기차게 해대는데 올려보면 허탕이었다. 물고기 주둥이가 작아 낚시바늘을 삼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잡아봐도 기껏 손가락 두개 크기만한 스팟 피시들만 올라오는 게 아닌가. 물고기에 새우와 갯지렁이만 적선하다가 신경질이 나서 그만 철수하고 말았다. 원래 놔줘야 하는, 만 네살짜리 아들의 손바닥만한 물고기들을 주변 눈치를 보면서 아이스박스에 슬며시 집어넣을 때의 비루한 내 모습이란…
얼마 뒤 밤 낚시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낚시 행선지도 바꾸었다. 주변 사람들 몇 명에게 추파를 던져봤으나 “아내가 밤에 혼자 있기 무서워한다” “너무 피곤할 것 같다” “지난번에 안 잡혔는데 이번이라고 잡히겠느냐” “골프 약속이 잡혀 있다” 등등 온갖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를 들이대며 뒤를 빼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오후 2시쯤 혼자 자동차를 몰고 오후 5시 정도에 윌밍턴에 도착했다.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고 밤 2시까지 버틴 결과 스팟 피시와 숭어과의 일종인 시 멀릿(sea mullet) 스무 마리 가량을 잡을 수 있었다. 크기는 손바닥만하거나 조금 더 컸다. 새벽 길을 3시간 동안 허겁지겁 달려 집으로 돌아온 뒤 그날 저녁 동네 사람들 몇 명을 불러놓고 회도 뜨고 매운탕도 끓였다.
처음에는 다들 서너 점씩 입에 넣어보고는 “이게 얼마만이냐”는 둥 “채플힐 같은 미국 촌동네에서 회를 먹을 줄 몰랐다”는 둥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회가 몇 점 되지 않다 보니 눈치를 보느라 회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모자라는 밥이 오히려 남는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사실 웬만큼 큰 물고기가 아니고서는 머리, 지느러미 잘라내고 뼈 발라내고 껍질 벗겨놓으면 회 부위가 얼마 남지 않는다.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고 한국에서 특종 취재할 때보다 더 많은 정성을 들여 낚시 정보 취합에 들어갔다. 들은 바로는 노스캐롤라이나는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교민들 가운데 진짜 낚시꾼들은 팀을 짜서 4시간 걸려 버지니아로 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의 혼자 다니는 나로서는 4시간은 꽤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당장 채플힐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비치까지의 거리도 서울에서 동해가는 것보다 더 멀었다. 참고로 서울 종로구청에서 강릉시청까지 거리가 235킬로미터이다. 그렇지 않아도 낚시 한답시고 혼자 왕복 6시간이나 차 몰고 다니는 것도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보는데 버지니아 비치까지 간다고 하면 거의 미친 놈 취급할 것 같았다.
그러다 낚시를 좋아하시는 교민 한 분과 같이 낚시를 가면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물때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물고기가 달나라 물고기도 아니고 기본 습성은 한국과 같을 텐데 그런 낚시의 기본을 놓치다니…
참고로 물때는 달의 인력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때를 말한다. 초등학교 때 배웠다시피 달의 위치에 따라 그믐과 보름에는 조수 간만의 차이가 가장 큰 사리가 나타나고, 상현달이나 하현달이 뜨면 조수 간만의 차이가 가장 작은 조금이 나타난다.
물고기의 종류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연안의 방파제나 갯바위 같은 곳에서는 통상 사리 때 물고기가 더 잘 잡힌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야 물 흐름이 뒤집어지면서 물고기의 입질이 활발하고 깊은 곳에 있던 물고기가 얕은 곳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반면 배낚시의 경우 낚시꾼들은 조금 물때를 선호한다. 조류가 강하면 채비가 바닷물에 휩쓸려버려 물고기가 낚시 바늘을 물었는지 알기 어렵다. 낚시꾼들의 낚싯줄도 서로 엉켜버려 낚시를 하기 힘들어진다.
또 바닷물은 하루에 두 번씩 움직인다. 즉 두 번의 들물과 두 번의 날물이 생긴다. 들물에는 연안으로 물고기들이 바닷물과 함께 들어오면서 왕성한 먹이 활동을 한다. 반대로 물이 먼바다로 나가는 날물에는 물고기들도 은신처나 더 깊은 곳으로 나가니 좋은 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낚시 시간 역시 중요하다. 일몰과 일출 때 먹이 활동이 활발한데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일출 때보다 일몰 때가 최고의 시간이다. 다음으로 낮보다는 밤이 좋다. 정리하면 사리 기간에 일몰과 들물이 겹치면 환상의 낚시 시간대이다. 낚시꾼들은 이를 황금 물때라고 부른다.
하지만 물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날씨이다. 낚시를 다녀보면 물때가 아무리 좋아도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다. 물고기들이 수온 변화에 민감해 전날보다 수온이 조금이라도 내려가면 은신처로 숨어 움직이기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긴 게 ‘샛바람(동풍)이 불면 어부도 반찬이 없다’는 속담이다. 한국에서 통상 샛바람은 한번 시작하면 며칠간 불기 때문에 어획량이 확연하게 줄어들게 된다.
사족이 길었는데 어쨌거나 교민 한분을 따라 동네 연수자 한명과 함께 노스 캐롤라이나 해안의 노스 톱세일 비치(north topsail beach)로 피어 낚시를 떠났다. 들물 시간은 새벽 4시 가량이었다. 밤 1시쯤 도착해 아침 8시 정도까지 낚시를 즐겼다. 조황은 이전보다는 나았지만 기대치는 밑돌았다. 기껏 프라이팬 정도 크기의 조그만 홍어 두세 마리와 힘이 좋아 당기는 손맛이 일품인 블루피시(blue fish) 두세 마리를 덤으로 잡은 정도였다.
블루 피시는 등푸른 생선으로 고등어와 비슷하게 생겼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 먹고 사는 어종이라 루어(lure, 가짜 미끼)로 잡았다. 집에 돌아와 회를 떠 먹었는데 제주도에서 먹었던 고등어회처럼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이후 피어 낚시터를 이곳 저곳 가보다가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에머랄드 아일(emerald isle)의 보우그 인렛 피어(Bogue Inlet pier)를 발굴해 지금까지 애용하고 있다. 피어 입장료가 대략 8~10달러인데 이곳은 낚싯대를 두 대까지 들고 갈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물고기도 비교적 잘 잡히는 편이다.
[지난해 9월 버지니아 비치에서 잡은 스팟 피시들]
[전형적인 미국 피어의 모습]
[노스캐롤라이주 남쪽의 머틀 비치로 여행갔다가 처음으로 잡아본 물고기를 만지고 있는 아들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