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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사커대디’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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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사커대디’ 되기

캘리포니아 어바인에는 경기장이 많다. 5분 만 걸어가면 축구, 농구, 야구장 중 하나는 나올 정도. 2022년 기준 어바인 내 축구장은 70개, 농구 코트는 37개에 이른다.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덕분에 매 주말 각 경기장엔 새벽부터 온갖 리그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뛰는 경기가 열린다.

이곳에 온 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방과 후 참여할 수 있는 리그를 찾았다. 아이들이 한국에서 구기 종목을 따로 배운 적이 없었던 터라 비교적 초반 부담이 적은 축구 리그에 참여하기로 했다. 여러 리그가 있지만 지인이 추천해 준 AYSO(American Youth Soccer Organization)에 등록했다.

AYSO는 미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전국 유소년 축구 리그다. 1964년에 9개 팀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거의 900개 이상 커뮤니티에서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거쳐 간 학생만 600만 명 이상. 이곳 어바인에서도 40년 이상 리그를 운영해왔다.

수십 년 간 AYSO가 초등학생, 유치원생 부모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의 축구 철학 덕분이다. AYSO는 단순한 축구 프로그램이 아닌 축구를 중심으로 설계된 어린이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때문에 축구를 못해도 문제 없다. 아이가 축구를 통해 팀 스포츠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게 핵심. 실제 부모 오리엔테이션에서 지역 담당자가 여러차례 이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9월이 되자 시즌이 시작됐다. 첫 경기가 열리기 전 이메일로 배정된 팀 감독으로부터 알림이 왔다. 초등학생인 첫째는 8~10세 어린이가 참여하는 10U 중 한 곳, 유치원생인 둘째는 6U 팀 중 한 곳의 일원이 됐다. 10U의 경우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모여서 1시간씩 연습한다. 각 팀마다 10명 이상으로 구성된다. 정식 경기는 매주 토요일 오전에 열린다. 나이가 어린 6U 팀은 주중 연습시간이 없다. 대신 토요일에 단체로 연습하고 3대3, 4대4 경기를 뛴다. 훈련이라기 보단 공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식이다.

두 아이가 영어도 낯선데 축구도 서투른 터라 걱정이 컸다. 하지만 기우였다. 시즌이 시작되고 경기를 거듭할 수록 즐거워졌다. 첫째의 경우 축구 하면서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고 낯선 문화에도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축구 리그도 많다. 하지만 AYSO는 긍정적인 코칭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내 입장에서 더 좋은 선택지가 됐다고 본다. 게임에 지거나 실수 했다고 아이를 혼내는 일은 전혀 없다. 사실 감독과 코치 모두 해당 팀에서 뛰는 아이 부모다. 자원봉사 형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더더욱 긍정적인 코칭이 이뤄진다. 실수해도 잘했다 격려해 준다.

모든 아이들이 골고루 경기에 뛸 수 있게 하는 정책도 장점이다. 각 팀마다 인원 수가 차이나 경기 때마다 조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못 뛰는 선수는 없다. 무조건 3쿼터 이상은 다 뛸 수 있게 출전 시간을 안배한다. 실력이 모자라도 경기를 뛰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포지션도 돌아가면서 맡는다. 공격과 수비를 매 쿼터 마다 바꿔준다. 골키퍼도 돌아가면서 한다.

시즌이 진행되면 특별한 이벤트도 열린다. 같은 팀끼리 기념사진을 찍는 ‘포토데이’가 대표적이다. 드넓은 잔디구장에서 프로 축구선수처럼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 행사다. 별도 추가 비용 없이 등록비에 다 포함돼 있다. 사진이 나오면 아이에게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한다. ‘고요한 사이드라인 토요일’(Silent Sideline Saturday)도 특이한 경험이었다. 매 경기 때마다 감독과 코치, 부모들은 양쪽 진영에 앉아 아이들을 크게 응원하고 지시한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고 아이들끼리 온전히 축구를 즐기게 하는 행사다.

AYSO 등록 후 일주일에 세번 아이를 데리고 축구장에 가는 일은 우리 가족 모두가 가장 즐겁게 참여하는 일상이 됐다. 아이들도 즐겁지만 나와 아내 역시 즐겁고 신나긴 마찬가지다. 축구 경기 재미에 흠뻑 빠진 아이를 마음껏 볼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