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학부모 되기
해외에서 처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 긴장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한국에서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일인데, 낯선 곳에서 말도 안 통하는 아이를 보낼 때는 그 미션의 난도가 수퍼 어메이징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직접 겪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겪고 스스로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그렇다.
(1) 학기 시작은 언제인가
우리 가족은 8월말에 미국에 도착했다. 첫째는 한국에서 1학년 1학기를 마친 참이었다. 한국 학교 쪽에는 해외출국과 관련된 이런저런 서류 제출을 했다. 당초 계획은 9월초 학기 시작부터 첫째가 합류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는데, 연수 준비를 한참 하던 사이에 알게 되었다. 이미 우리가 도착하기 전인 8월11일부터 학기가 시작했다는 것을. 안 그래도 학기를 언제 시작하고 끝나는지는 디스트릭트 교육청마다 차이가 있는데, 팬데믹의 여파로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일정의 편차가 더 벌어진 모양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시작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지만, 수업일수가 다소 모자랄 수 있으리라는 우려가 들었으나 통제 불가능한 요인이므로 그냥 받아들이는 것 외엔 별 수가 없었다.
한국 학교 재학사실에 관한 서류는 미국에서 특별히 필요하진 않은 분위기였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우리의 경우 이곳에서 어차피 1학년 1학기가 시작되는 경우여서 묻지 않았을 수 있다. 2학년 이상이라면 한국 학교에서 떼어주는 서류를 받아가는 게 안전하다.
(2) enrollment
(사진: 이곳 교육청 홈페이지의 신규학생 등록 사이트)
도시마다 교육청마다 서로 다른 프로토콜을 사용하겠지만, 우리가 있는 Mountain View Whisman School District의 경우 온라인으로 새로운 학생을 enroll할 수 있다. 복잡하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서류를 업로드하면서 입력하면 된다. 예방접종증명서는 한국 질병청에서 내주는 영문증명서(온라인으로 발급)로 올리고, 이곳 거주증명은 집 계약서 등으로 올리는 식이다.
여권, 비자, 등등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서류들이나 비상 연락처(5명이나 필요하지만) 등의 기재는 사실 어렵지 않다. 다만 두 가지가 조금 까다로울 수 있다. 첫 번째는 거주증명이다. (거주 증명을 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따로 글을 썼다. 집 계약서 하나만으로는 안 되고 추가 서류가 필요하다. 이 교육청에서는 휴대폰요금 고지서와 인터넷요금 고지서도 인정)
(사진: 이곳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학생 등록을 위한 거주증명 서류)
두 번째는 TB (Tuberculin, 결핵) 테스트다. TB 테스트는 요구하는 교육청/학교가 있고 아닌 곳이 있다. 이곳 캘리포니아 내에서도 제각각이다. 한국에서 증명서를 받아와도 인정이 안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냥 여기 와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떨 때는 그냥 한국에서 받아온 뒤 인정해 달라고 해서 accept 되었다는 후기들도 꽤 있다. 약간의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고, 애매하면 미리 질문을 하는 게 좋다. 대충 Do you accept the TB test result done by Korean pediatrician? Or do you only accept the result signed by U.S. medical provider? 이라고 물어보면 된다.
(3) TB test
우리의 경우에는 이 대목에서 많은 삽질을 했다. 한국에서 TB 테스트를 받았으나 그 자체가 쉽지 않았다. 여러 차례에 걸쳐 방문했지만 아이가 거부해서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는 거의 억지로 했고, 미국에서 이걸 안 받아주면 큰일인데, 라고 생각은 했지만 당시엔 그래도 테스트를 해 가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우리가 있는 MVWSD 소속 nurse는 오직 미국의사의 서명만이 유효하다고 하여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클레임을 하기는 했지만 (ex. 한국과 미국 결과가 다를 이유가 없다 / 모든 학생들을 어떤 상태에서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는 게 정책인데 TB test 결과가 한국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지연시킬 수 없다 운운), 그들도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테스트를 다시 하지는 않았다. 대신 한국에서의 테스트 결과지와 당시 찍어둔 사진(테스트 부위가 별로 부풀어오르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등을 검토한 뒤 TB test 결과가 negative임을 확인한다는 서명을 미국 의사로부터 다시 받았다. (annual body check 결과를 의사에게 서명받아 제출해야 하는데 그때 부탁했다.) 미국 의사들 중에서 그렇게 해 주는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므로, 이런 경우를 겪지 않으려면 그냥 여기 와서 “테스트를 받으라”는 요구를 받으면 그때 받아 내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만약 그래도 꼭 한국에서 받아오고 싶다면 테스트시 전신샷, 해당 부위샷 각각 며칠 동안 찍어 두는 게 낫겠다. 그래도 인정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과정이 시간이 꽤 걸렸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당초 계획했던 9월 초 입학은 9월 중순까지 약 10일 가량 추가로 미뤄졌다. 8월에 학기가 시작했는데 이렇게 늦어져도 되는지 마음이 조금 급했다. 한데 조금 지내다 보니 여기서는 그게 큰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지역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우리가 있는 실리콘밸리는 워낙 사람들이 들고 나는 게 많아서인지 9월 중순 우리 아이가 들어온 후에도 10~11월까지 아이의 학급에 계속 새로운 학생이 추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연중내내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고 또 다른 곳으로 가는 듯 하다. 한국처럼 아이 학교에 맞추어 모든 것이 결정되고 이사도 마무리되는 분위기와는 꽤 다르게 느껴졌다.
(4) 뉴스레터 체크
일단 아이를 학교에 넣고 나면 도시락이라든가 / 교우 관계라든가 / 학업성취도라든가 하는 여러 문제가 또 있지만, 일단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교 일정을 잘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아무도 학교 안 가는 날 우리 아이만 간다든가, 모두 다 같이 잠옷 입고 오기로 한 날 우리 아이만 정상복(..) 입고 간다거나, 다 같이 준비물을 가져오기로 했는데 우리 아이만 빠뜨리고 갔고 나는 그 사실을 하교 때까지 몰랐다면? 그거슨 아니되오 ㅠㅠㅠ!
학교에서는 매주 뉴스레터가 온다. 이 뉴스레터는 아주 중요하다! 겁나게 길지만, 참을성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읽다보면 매주 반복되는 내용은 skip하게 됨) 다음 주 월화수목금 중에 특별한 날이 있는지, 뭔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게 있는지 보기 위해서다. (간혹 빠뜨리면 꼭 뭔가 참사가 일어난다. ㅠ) teacher’s service day (선생님한테 뭐 해주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쉬시는 날)도 있고, trimester day인 경우도 있고, 아무튼 일찍 끝나거나(early dismissal day) 학교를 안 가도 되는(no school day) 날도 있다. 학교마다 재량권을 가지고 자유롭게 하므로 우리 학교, 우리 반 것을 잘 봐야 한다. 또 요즘엔 팬데믹으로 학교에 오라고 하는 오프라인 행사가 드물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 이벤트가 있다. 흔한 것은 fundraise를 위한 각종 행사다. book fair가 있다면, 선생님이 원하는 책 리스트를 올려놓고 사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선생님에게 드릴 holiday gift를 위해 돈을 모으기도 한다(room parent가 주도). 적정 수준에서 참여하는 게 좋다. spirit wear라는 명목으로 학교 옷을 산다거나 학교에 donation을 하는 링크도 모두 뉴스레터 안에 있다.
(사진: 할로윈 풍경. PTA 가입을 독려하는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다. 노란 사자 옷을 입은 것은 교장선생님 😊)
(5) 학부모 교류- PTA 가입부터
지역마다 다를 수 있을 듯 한데, bay area의 상당수 학교에서는 Konstella 라는 플랫폼(휴대폰 애플리케이션)에서 학교-학부모 간 소통이 자주 이뤄지고 있다. Konstella 앱에 익숙해지고 이곳에서 다른 학부모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울러 이 학교는 교장선생님과 티타임을 일주일에 한 번씩 줌으로 진행하는데 처음에 한번 참여해 보니 생각보다 편안한 자리였다(그렇지만 한 번만 하고 더 참여 안함 ㅋㅋ).
또 (말하자면 학부모회라고 할 수 있는) PTA(parent-teacher association)에 가입하여(소액의 가입비 있음) 다른 학부모들과 교류하면 아이의 적응에도, 본인의 정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PTA 학부모들끼리 친해지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playdate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아이들의 교우 관계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겉도는 외국인이 아니라 ‘내부자’가 되어본다면 이 시스템이 왜 이렇게 생겨 있고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피부로 와 닿는다. 여기 사람들도 학교에 대해, 교사들에 대해, 교장선생님에 대해, 교육청에 대해, 혹은 어떤 제도에 대해 서로 다들 의견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다 저마다 이유가 있는 다이내믹 월드다. (PTA 내부에서도 누구는 누구랑 친하고 어쩌고 ㅋㅋㅋㅋ 세상 다 똑같다)
오자마자 PTA에 가입하고 또 room parent까지 어쩌다 하고 있는 관점에서 보면, 전혀 그런 것에 반응하지 않는 학부모들이 보인다. Konstella 가입도 안 하는 이들이다. 우리처럼 학부모 카톡방이 개설되지도 않고 서로 개인정보를 물어보는 것도 조심스러워들 하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가입을 독려해 달라고는 하지만 이런 학부모들에게 가 닿을 방법이 별로 없다. 아주 소수지만 아예 뉴스레터도 읽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는 분들도 있다. 주로 저소득층이거나 언어가 달라 (spanish가 공용어로서 모든 뉴스레터와 모든 문서에 병용되고 있지만) 장벽을 느끼고 그냥 아이가 잘 오가는 정도에 만족하는 것이다. 뉴스레터를 읽고 다른 학부모들과 이야기하고 그런 것은 모두 나름대로 시간을 꽤 소요하는 일이며, 일하는 엄마들은 더더군다나 그런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저마다 사정은 다른 것이고 이를 비난 /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학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학부모들과 교류하려고 하면 그만큼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관찰의 즐거움이랄까).
쓰고 보니 모두 학부모의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다. 사실은 아이가 잘 적응하고 친구들과 잘 사귄다면 다른 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잘 적응하느냐 여부는 또 아이마다 제각각이므로,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믿고 지지하고, 새로운 환경에 (엄마 아빠 때문에) 갑자기 뚝 떨어진 아이의 사정을 살펴주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모두 화이팅.
(학교가 끝나고 픽업하러 가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뛰어나오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