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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엿보기 (4) ‘셈 못하는 카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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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셈 못하는 카운터




미국에서 햄버거를 사먹는 일도 장난이 아니다. 흔한 맥도날드 가게에 가서 1달러짜리 빅맥을 하나 사는 것은 간단하지만 애들 몫까지 시키려면 메뉴를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 이런저런 세트 메뉴가 많아 어떤 조합으로 사는게 싼지 계산을 잘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빅맥 두개에다 더블치즈 버거 한 개와 감자튀김, 드링크(콜라든 스프라이트든 마운틴듀등 어떤 메뉴를 시키던 간에 small이든 large든 크기만 정해 그냥 드링크를 주문하면 컵 하나를 받게 되고 그 컵을 들고 자기가 원하는 드링크를 골라 따라 마시면 된다)를 시키는 경우 어떤 세트 메뉴를 고르고 다른 것을 따로 주문하면 좋은지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들여다봐야 가장 싼 계산서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walmart같은 곳에 딸린 맥도날드 가게의 경우엔 대부분 영어를 잘 못하는 남미지역 아르바이트 걸이 카운터나 주문을 받는다(월마트는 미국 내에서도 임금에 박하기로 유명한 곳인데 남미계열 직원이 유난히 많은 것도 그때문인 것 같다).나도 영어가 서툴지만 그 사람들 발음은 정말 알아듣기 어려운 때가 많다. 더욱이 셈을 잘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계산서를 받으면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메뉴가 워낙 다양해서 내가 낸 주문대로 계산을 했는지, 메뉴가 빠진 것은 없는지, 계산이 틀린 것은 아닌지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유학생 K씨는 가족들과 여행 도중에 한 주유소에서 기막힌 일을 겪었다. 그 주유소는 일정액의 돈을 먼저 deposit한 후에 가솔린을 넣고 잔돈을 거슬러 받는 방식으로 기름값을 계산하는(prepaid) 곳이었는데 20달러를 예치한 후에 가솔린 14달러 어치를 넣고 잔돈을 받으러간 K씨는 남미계열 카운터 직원이 ‘twenty’달러라는 말을 못 알아들어 애를 먹다가 결국 ‘two ten’이라고 해서 겨우 이해시켜 잔돈을 받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미국인 카운터 직원도 셈이 서투르기는 큰 차이가 없다. 20달러에서 14달러를 빼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거기에 센트가 붙어 더하기 빼기를 하는 경우엔 좀 당황해한다. 예컨대 물건값이 14달러 57센트가 나온 경우 센트를 받기가 귀찮아 25센트 짜리 쿼터 두 개를 거슬러 받을 심산으로 20달러와 7센트를 주면 당황해하거나 내심 언짢은 표정(계산을 잘 하나 테스트하는 거야 뭐야 하는 식의 표정)을 지은 다음에 계산기를 두드려 셈을 하고 잔돈을 내주는 일이 많다. 한국에서는 뭐 별일이 아닌 건데 말이다.



그런데 여기엔 ‘센트’에 대한 우리와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다. 예컨대 이곳에선 ‘lucky penny’란 것이 있다. 카센터에서 자동차를 수리한 다음에나 복권을 사는 경우 등에는 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에 1센트짜리 동전을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액땜용이거나 행운을 비는 뜻이다. 화장실 옆 공중전화기 근처에도 그런 lucky penny가 많이 떨어져 있다. 이런 lucky penny는 줍지 않는 게 이곳의 관행이다(일종의 미신같은 것인데 처음엔 얘들이 길거리에 떨어진 센트를 찾아내 줍는 것을 재미있어 해서 놔뒀지만 지금은 하지 말라고 한다). 또 쇼핑센터나 음식점에서 몇 센트 정도가 잔돈으로 남은 경우엔 그냥 팁으로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센트 정도는 돈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몇 센트를 거꾸고 주고 쿼터나 다임으로 거슬러 받으려고 드는 나같은 손님은 미국인 시각에서 보면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그런데 뭐 어찌됐건 줘야 하는 팁도 아닌데 몇 센트라도 그냥 미국에 주는 것은 국부유출 아닌가). 그래서 센트가 들어 가는 계산을 피하려 하거나 셈을 잘못하는 카운터와 해프닝을 만들지 않으려면 현금말고 신용카드나 데빗카드로 계산하면 그뿐이고 속도 편하다.



<한국경제신문 문희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