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합리적인 미국, 합리적인 미국인-2
지난 3월 얘들 봄방학을 맞아 그랜드 캐년 쪽으로 여행을 가다 처음으로 속도위반 딱지를 뗐다.
호텔예약을 하고 떠난 길이라 하루는 유타주에서 시간에 쫓겨 속도제한이 65마일인 편도 1차선 도로를 75마일을 넘나드는 속도로 달리다 백밀러로 보니 갑자기 흰색 밴이 바짝 뒤쫓아오고 있었다.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다’ 싶어서 80마일 가까이 속도를 높였는데 이번엔 밴이 라이트를 켜고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 차는 바로 marshall이었던 것이다(police가 없는 조그마한 동네에는 대신 marshall이 단속을 한다. police 차가 아니라고 방심하다 큰 코를 다친 셈이다).
marshall은 내쪽으로 다가와(보통 단속에 걸리면 경찰이나 marshall이 뒤쪽에서 차적 조회 등을 하느라 30분 정도 걸리고 그동안 운전자는 핸들에 손을 올려놓고 가만 있어야 하는데 얘들이 뒤칸에 타고 있어서인지 그런 일은 없었다) 보험등을 확인하고는 자기 차로 오라더니 ‘83마일로 찍혔지만 75마일(10마일 오버)로 해줬다’면서 시인하는 서명을 받고는 벌금규정이 담긴 봉투를 내줬다.
속도위반벌금은 10마일 오버까지는 50달러, 20마일은 75달러, 30마일은 150달러 등으로 2배씩 늘어나며 벌금은 경찰이 아니라 해당 카운티의 판사에게 내게 돼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처럼 단속현장에서 경찰과 시비할 일도 생기지 않고 부정의 여지도 남기지 않으니 괜찮은 방법이다. 그런데 벌금규정을 보면 과속 운전자가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버틸 수 있고 그러면 판사의 심판에 따라 방어운전교육 4시간을 받고 벌금을 내지 않을 수도 있게 길이 열려 있다. 내 경우엔 벌금이 적어 그냥 내고 말았지만(벌금은 현금이 아니라 check나 money order로 낸다) 벌금이 많은 경우엔 벌점까지 붙어 보험료 부담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방어운전교육을 받는 코스를 택한다고 한다. 판사도 하도 많이 이의를 받아서인지 대부분 교육을 받도록 하는 판정을 내린다고 한다. 미국의 합리적인 시스템은 할말이 많은 속도위반 문제에 대해서도 구제받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을 열어 두고 있는 셈이다(미국인들 얘기는 콜로라도주 주변에서 특히 유타주가 속도위반 단속이 세다고 한다. 앞으로 그랜드 캐년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은 주의할 것).
자동차 주차요금과 관련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몇가지 룰과 관행이 있다.
먼저 길거리에 주차하는 미터파킹 요금은 덴버지역의 경우 15분 주차에 25센트짜리 쿼터 한 개를 받지만 일요일엔 대부분 무료다. 운전자가 무료임을 알 수 있게 미터기에 커버까지 씌워 둔다(이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일텐데 무료로 이런 것까지 서비스하는 것을 보면 미국은 세금을 참 잘 쓴다). 일요일은 평일과는 달리 바쁜 일이 없으니까 편한 대로 차를 세우라고 뜻인 지는 모르지만 일요일에도 요금을 받는 우리와는 다른 정책이다.또 주차허용시간이 다 돼도 5분 정도 는 여유를 준다고 한다(단속요원은 시간이 다 됐어도 한번은 그냥 지나가고 다음에도 조치가 안되면 견인해 간다고 한다).
2시간 또는 하루종일 주차 조건으로 요금을 받는 정규주차장 또는 간이주차장은 시내 중심이냐 아니냐, 야구.농구장 등 이용시설과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야구장 바로 앞에는 10달러를 받지만 조금 떨어진 곳은 5달러, 많이 떨어진 구역은 3달러 하는 식이다. 극장이나 음식점에선 자신이 조금 떨어져 있는 주차장에 직접 차를 세울 때는 무료지만 바로 앞에 다른 사람이 대신 주차해주는 valet 파킹은 10달러를 받는다. 편한 만큼 돈을 더 내라는 것이다.
미국엔 자원봉사자들이 많다. 주로 노인들이지만 50대 안팎의 사람들도 있다. 골프장에도 자원봉사자가 있다. 경기를 진행하는 embasaddor들인데 이들에게도 현금이 아닐 뿐 일당이 주어진다. 한 할머니 진행요원은 “하루 진행을 봐주면 하루 그린피를 면제해준다”면서 “이번 한번만 하면 할아버지랑 한 게임을 할 수 있다”며 자랑했다. 그들도 골프를 좋아하는 골프마니아인 것. 그렇다보니 플레이어들을 마구 쫓지도 않고 진행을 빨리 해달라고 말할 때도 게임을 아는지라 조심스럽게 한다. 골프장 입장에선 임금을 들이지 않아도 좋고 자원봉사자들은 그린피를 벌어서 좋으니 ‘누이좋고 매부좋은’ 셈이다.
또 대부분의 골프장들은 비가 와서 게임을 끝내지 못한 경우 다른 날 와서 게임을 무료로 할 수 있게 해주는 ‘rain check’를 끊어 준다. 한국에선 비가 와도 대부분 공을 치지만 골프장측에서도 혜택을 주거나 뭔가 배려를 해줘야 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것이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문희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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