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어떻게 ‘표현의 자유’ 천국이 됐나…인물로 보는 수정헌법 1조
저는 미국으로 연수 오기 전 국제부에서 근무했습니다. 주로 미국 기사를 썼는데요, 그중 90%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관련 기사였죠. 트럼프 대통령에 관한 외신을 읽고 또 기사를 쓰면서 궁금증이 생겼던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관련 기사 가운데 유난히도 수정헌법 1조 관련 언급이 많았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2017년 9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앨라배마 주에서 있었던 공화당 지지 유세에서 NFL의 한 선수를 겨냥해 막말을 퍼붓습니다. 그가 언급했던 선수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이었습니다. 흑인 피의자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과 이로 인한 사망 사건 등을 문제 삼아왔던 캐퍼닉은 미국 내 흑인과 유색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다른 선수들처럼 기립하지 않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일을 언급하며 “구단주가 이런 선수들을 경기장에서 끌어내 해고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발언이 나온 이후 “대통령이 선수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식 석상에서 특정 개인을 향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유세 현장에서 이뤄진 정치 연설 중에 나온 발언이고, 정치 연설은 반드시 중립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에 해당된다는 지적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처럼 상반되어 보이는 두 주장의 근거가 모두 미국 수정헌법 1조였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수정헌법 1조와 관련된 논란은 일상입니다. 지난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팔로워들을 차단하자 차단 조치를 당한 사람들이 “반(反)헌법적 조치”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에 대해 수정헌법 1조 위반이라고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까칠했던 CNN 백악관 출입기자를 출입정지시켰다가 “수정헌법 제 1조에 명시된 권리를 침해했다”며 CNN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법원은 “출입 금지 조치를 즉각 풀라”며 CNN 손을 들어줬고, 백악관에서 쫓겨났던 기자는 9일 만에 의기양양하게 복귀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속을 긁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늘 체면을 구긴 것은 아닙니다. 포르노 배우였던 스토미 대니얼스가 2006년 자신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폭로하자 트위터를 통해 “완전한 사기이자 멍청한 사람들에게 가짜 뉴스를 제공하는 미디어를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비아냥댔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지만, 법원은 해당 트윗이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된다고 판결했습니다.
수정헌법 1조가 과연 무엇이길래 수많은 논란의 한가운데 위치하는 것일까요. 미국 사회는 왜 수정헌법 1조에 그토록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까요. 제가 몸담고 있는 조지아대 그래디 칼리지에서는 최근 수정헌법 1조와 관련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인물을 키워드로 1960년대 이후 나왔던 수정헌법 1조와 관련된 주요 법원 판결과 그 영향을 되돌아보는 자리였는데, 개인적으로 수정헌법 1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기에 이 자리를 빌려 세미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수정헌법 1조는 국교 수립을 금지하고 종교의 자유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그리고 정부에 대한 청원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First Amendment to the United States Constitution, 일반적으로는 The First Amendment라고 합니다. 원문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redress of grievances.“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인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수정헌법 1조는 1791년 채택된 이래 미국에서 오랜 기간 수많은 판결에 인용돼 왔습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각종 기념비적인 판결을 통해 그 의미가 크게 확장돼 왔습니다. 1960년대가 민권운동과 여권운동, 베트남 전쟁 등 정치적 격변의 시대였던 데다 1950년대 메카시즘 광풍을 겪은 미국 사회가 자기반성에 나서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광범위한 인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정헌법 1조의 외연을 넓히는 데는 언론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펜타곤 페이퍼’를 놓고 1971년 미국 정부와 뉴욕타임즈(NYT)간에 벌어졌던 소송전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1968년 5월까지 인도차이나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기록한 보고서인 펜타곤 페이퍼를 극비리에 작성 중이었습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사람 중에는 전직 해군장교이자 MIT 부설 국제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었던 대니얼 엘스버그가 있었습니다. 엘스버그는 작업 도중 석연치 않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백악관이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발표한 내용이 상당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상자 숫자에서부터 전쟁의 원인까지 말입니다. 특히 미국이 베트남 참전의 구실로 내세운 ‘통킹 만 사건’이 북베트남의 도발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미국 군대가 조작한 사건이라는 단서도 담겨 있었습니다.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 엘스버그는 “백악관의 거짓말을 조사해 달라”며 보고서 내용을 의회에 제보합니다. 하지만 의회는 조사에 나서지 않았고, 엘스버그는 평소 잘 알던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보고서를 복사해 넘깁니다. 뉴욕타임즈는 6개월간 보고서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한 끝에 내용을 공개하더라도 미국의 국익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1971년 6월 13일 1면 게재를 시작으로 보고서 내용을 폭로하는 연재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합니다.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 보도에 격노, 법무부에 뉴욕타임즈가 더 이상 관련 기사를 쓰지 못하도록 연방 법원에 제소하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법무부는 안보에 미치는 악영향을 근거로 내세워 연방 1심 법원으로부터 국가기밀서류 공표를 금지시키는 임시명령을 얻어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법무부의 성공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뉴욕타임즈 보도가 막히자 워싱턴 포스트가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후속 보도에 나섰고 보스턴 글로브와 시카고 트리뷴, LA타임즈까지 미국 유수의 언론들도 여기에 동참했습니다.
리처드 닉슨대니얼 엘스버그
뉴욕타임즈는 미국 정부의 보도 통제가 수정헌법 1조 위반이라며 연방 대법원에 제소했고, 6월 30일 역사적인 재판이 열립니다. 이 재판에서 사법부는 “사전검열(제한)을 가하기 위해 정부는 언론 보도가 국가에 ‘치명적이며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증거를 충분히 제시해야 한다”며 뉴욕타임즈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래디 칼리지의 조너선 피터스(Jonathan Peters) 교수는 이 판결에 대해 “언론과 대통령간의 파워게임에서 언론이 우위에 서게 된 결정적 계기”라면서 “이 판결 이후 지금까지 법원이 정부의 언론 사전검열을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취재원 보호와 관련된 판결도 있었습니다. 1972년 있었던 ‘Branzburg v. Hayes’ 판결이 그것입니다. 켄터키 주 루이스빌에서 발행되는 ‘Courier Jounal’ 기자였던 폴 브랜즈버그(Paul Branzburg)는 인터뷰를 통해 10대 마약상들과 청소년 마약 복용자들의 실태를 담은 기사를 씁니다.
폴 브랜즈버그이 기사가 지역 사회에서 이슈화되면서 브랜즈버그는 법원에 출석해 배심원들 앞에서 취재원 관련 내용을 밝히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취재 당시 취재원 보호를 약속했던 브랜즈버그는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언론의자유를 내세우며 법원 출두 요구를 거절했고, 법정 모독죄로 기소됩니다. 기자에게 법원에 출두해 증언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가? 이같은 질문에 연방 대법원은 5대 4로 ‘그렇지 않다’는 판결을 내립니다. 당시 재판부는 “일반 시민들은 배심원 앞에서 증언해 달라는 요구가 있을 경우 비밀 정보라 하더라도 증언할 의무가 있다”며 “기자들이 취재원 보호를 명분으로 소환장에 불응할 권리를 달라는 것은 일반 시민들이 누리지 못하는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며, 법원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힙니다.
얼핏 보면 재판부가 언론의 자유에 대해 제약을 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재판부는 “기자에게 소환장을 발부하려면 정부는 기자로부터 얻고자 하는 정보가 국가 이익과 상당한 수준으로 관련돼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는데, 앞서 펜타곤 페이퍼 사건을 통해 살펴봤듯 정부가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판결 이후 주 정부들은 언론인의 취재원 보호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잇따라 만들기 시작합니다. 대법원 판결 당시 언론인의 취재원 보호 권리를 법으로 보장한 주는 17개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49개주가 관련 법을 제정한 상태입니다. 포린 폴리시(FP)에 따르면 미국 정부와 언론계는 1970년대 이후 정보 유출과 취재원 보호 문제에 관한 ‘신사협정’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행정부는 기밀 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해도 기자에 대한 소환장 발부를 추진하지 않고, 기자는 그 대신 국가 안보나 공공의 이익을 위협하는 정보를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정부는 이 불문율을 깨고자 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수정헌법 1조는 소수 인종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Hate Speech)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주는 것일까요? 놀랍게도 그렇습니다. 두 사건의 예를 들어보죠.
1977년, 미국 나치당의 일원이었던 프랭크 콜린(Frank Collin)은 나치 복장을 입은 채로 반(反)유대인 시위를 벌이겠다고 발표합니다. 시대착오적인 시위를 하겠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더 황당했던 것은 콜린이 밝힌 시위 장소가 스코키(Skokie)라는 유대인 타운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리노이 주 시카고 근처에 있는 이 작은 도시는 주민의 절반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중에는 나치 수용소에 갇혔다가 극적으로 생명을 건진 사람도 적지 않았죠. 당연히 주민들은 격분했고, 지방 정부와 법원에 나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지방정부는 나치당의 행진을 막는 조례를 제정했고, 법원도 “스코키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 네오나치의 집회를 금지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한 콜린의 반응은 역시나 상식 밖이었습니다.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연방대법원에 항소를 한 것이죠. 당연하게도, 그 어떤 변호사도 이 사건을 수임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라는 NGO에서 콜린의 변론을 맡겠다고 나선 것이죠. 더 놀라운 일은 변호사가 데이비드 골드버거(David Goldberger)라는 유대인이었다는 것입니다.
프랭크 콜린데이비드 골드버거
골드버거는 이 일로 경찰 경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엄청난 살해 위협에 시달렸고, 나중에는 이혼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확고했습니다. 수정헌법 1조의 적용을 제한하는 것은 곧 국가의 감시권한이 강해진다는 것이고, 이것은 결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연방대법원 역시 골드버거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나치 마크를 앞세운 시위는 상징적 발언으로, 수정헌법 1조가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사전 제약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콜린은 승소 이후 예정대로 스코키에서 집회를 강행했을까요?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시카고에서 행진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프레드 펠프스(Fred Phelps)라는 목사 이야기입니다.
프레드 팰프스펠프스는 극단적인 반(反)동성애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자연재해와 총기난사, 해외 파병군인의 전사 등 모든 나쁜 그리고 비극적인 사건들을 동성애자들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교회 신도들을 동원해 실력행사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불행한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장에서 동성애자들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인 것입니다.
2006년 3월 10일 있었던 매튜 스나이더의 장례식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성애자였던 스나이더는 미 해병대 소속으로 이라크에 파병됐다 전사했습니다. 이날 펠프스의 교회 신도들이 몰려왔습니다. 이들은 “이 군인을 죽게 한 신에게 감사 한다” “하나님이 동성애를 용인하는 미국을 벌하고 계시다” “군인들이 동성결혼을 위해 죽고 있다”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매튜 스나이더의 아버지는 분노했고, 시위대를 고소했습니다. 그의 분노와 괴로움은 법정에서 한 증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들은 장례식을 미디어 서커스로 만들었고, 우리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 했다. 내 아들은 한 무리의 광대들에게 둘러싸인 채가 아니라, 군인으로서 품위 있게 묻혔어야 했다.”
지방법원은 500만 달러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으나, 연방대법원은 그 시위가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보호 범위 내에 있다고 판결합니다. 장례식 자체를 물리적으로 방해하거나 가족들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한 것은 아니며, 단지 공적 관심사에 관한 의견을 표명한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한 개인의 감정이 상처받았다고 소송을 걸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처벌받는다면 관련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재판부의 우려도 반영됐습니다.
혐오 발언에 이토록 관대한 미국이라니. 언뜻 봐서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미국 같은 다민족, 다문화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혐오 발언을 용인한다면 후유증이 엄청나지 않을까요. 하지만 법적 처벌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국이 혐오 발언에 대해 관대한 것은 아닙니다. 혐오 발언이 단순한 발언에서 그치지 않는 순간, 다시 말해 범죄를 부추기고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끼치거나 혹은 실질적 차별을 야기할 경우 가차 없는 처벌을 내립니다.
이 밖에도 수정헌법 1조와 관련된 판례들은 차고 넘칩니다. ‘허슬러’라는 포르노 잡지를 운영하던 래리 플린트(Larry Flint) 회장 사례도 재미있습니다.
래리 플린트그는 덕망 있던 목사이자 TV에도 자주 얼굴을 내비치던 제리 폴웰을 술 광고에 등장시킵니다. ‘제리 폴웰이 자신의 첫 경험을 털어놓다’는 제목의 광고에는, 그가 술을 마시고 자신의 어머니와 성관계를 가졌고 염소와 수간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광고 하단에는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글씨로 “패러디일 뿐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이라고 써 놓았죠. 격분한 폴웰은 플린트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지만, 연방대법원은 “공직자나 영향력 있는 인물에 대한 풍자는 명예훼손이 아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처럼 미국 수정헌법 1조는 표현의 자유를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로 보호해 왔습니다. 플린트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이 밝힌 무죄 판결의 이유를 보면 오늘날 미국 사회의 번영에 수정헌법 1조가 적지 않게 기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정헌법 1조의 핵심은 자유로운 생각의 흐름이 갖는 근본적인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개인 자유의 한 측면일 뿐만 아니라 진실과 사회 전체의 활력을 추구하는데 있어 필수적이다. 공공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좋지 못한 동기에서 비롯된 많은 행위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