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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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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강할까.

지난해 8월 미국 연수의 첫 발을 디딘 이후 계속 답을 찾아 고민하는 질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미국의 기부와 자원봉사 문화가 탄탄한 토대 역할을 한다고 본다. 미국은 도네이션(Donation)과 발런터리(Voluntary), 즉 기부와 자원봉사의 천국이다. 사회 곳곳이 기부와 자원봉사와 연결돼있다. 공공 도서관, 대형 박물관 등 주요 공공시설은 소위 ‘있는 사람들’의 기부를 기반으로 세워졌다. 대중 행사에 가면 자원봉사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들의 얼굴과 행동에선 봉사와 기부를 통해 인간으로서 한없는 행복이 배어나온다. 재원 부족 논란이 있는 아이들 초등학교도 종종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기부 행사를 열어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명문 대학인 듀크대와 UNC의 교수 및 학생들은 수시로 전공과 연계된 문화 행사, 과학 행사 등을 열어 지역 사회에 지식을 기부한다. 한국도 일본 등 이웃 국가에 비해 기부 문화가 상대적으로 자리 잡힌 편이지만 미국에 비하면 배울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문화엔 남을 배려하고, 타인을 포용하며 부족한 것을 함께 채워나가는 공동체 의식이 담겨있다. 외국인의 눈에서 보면 미국이라는 국가는 마음에 안 들어도 미국인과 미국 사회에는 우호적인 마음을 심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기부와 자원봉사가 또 다른 기부와 자원봉사를 낳는 선순환이 아주 잘 작동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한국도 좀 더 이러한 문화가 성숙한다면 지금보다 더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열린 듀크대 음대 교수들의 칸타타 공연)

(아이들 초등학교에서 열린 학교 재원 마련 기부행사. 선생님들이 무대에 올라가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의 예를 들고 싶다. 나는 비교적 미국의 기부와 자원봉사 문화를 십분 활용한 경우다. 특히 영어를 배울 때 굳이 유료 학원이나 튜터를 이용하지 않았다. 조금만 찾아보면 무료로 양질의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이 곳곳에 숨어있다. 내가 사는 노스캐롤라이나 곳곳엔 시나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리터러시(Literacy)’라는 기관이 있다.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고, 배움이 부족한 이들에게 수학도 가르친다. 일부 리터러시는 영어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외국인에겐 자원봉사 튜터를 소개해주고 일대일 교습도 시켜준다. 나는 현재 은퇴한 미국 변호사로부터 주 1회 영어 튜터를 받고 있다. 일반 교회에서도 무료 영어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영어 실력 향상을 목표로 일반 자원봉사 대학생들과 매칭해 주는 프로그램, 전문 교수와 박사 과정의 강사로부터 받는 발음 수업, 토론 수업, 작품 수업 등 무료 코스가 매 학기 이어진다.
내가 몸 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UNC) 저널리즘 스쿨은 지난해 10월 이름을 ‘미디어 저널리즘 스쿨’에서 ‘허스만(Hussman) 저널리즘 미디어 스쿨’로 바꿨다. UNC 동문이자 중견 미디어 기업 오너인 월터 허스만(Walter Hussman) 씨가 모교인 저널리즘 스쿨에 2500만 달러라는 거액을 기부해 그의 이름을 학과명에 붙여준 것이다. 이 분이 거액을 기부한 이유는 하나다. 가짜뉴스 홍수 속에서 저널리즘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중요성과 신뢰가 커질 것이고, 커져야 한다는 바램으로 거액을 아낌없이 기부했다. 그래서 ‘저널리즘’을 ‘미디어’ 앞으로도 옮겨 달다는 요청도 했다고 한다. 명분 하나에 한 평생 쌓은 재산을 큰 바램 없이 투자하고, 그것으로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인의 기부와 자원봉사 문화는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맨 처음엔 청교도 또는 기독교라는 종교적 문화에서 그 근원을 찾아봤다. 하지만 같은 기독교 문화인 유럽은 미국과는 확연히 다른 면이 있다. 아마도 미국 건국 전후에 그 배경이 숨어있을 것이다. 두 학기째 배움을 주고 있는 한 언론인 출신 미국 선생에게 이 근원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분이 한 달 만에 답을 줬다. 이 선생이 찾은 답은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었다. 1700년대 미국 건국 시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곧바로 도서관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에 관한 책을 3권 빌려 읽었다. 우리에게 벤자민 프랭클린은 피뢰침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 이상이다. 국부, 건국의 아버지, 최초의 미국인 등이 프랭클린에게 붙여진 별칭이다. 에이브러험 링컨, 조지 워싱턴 등을 제치고 대통령이 아니었던 인물이 미화 100달러의 정중앙을 차지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국 주요 화폐 인물. 대통령이 아니었던 인물은 알렉산더 해밀턴(10달러)과, 벤저민 프랭클린(100달러) 두 명뿐이다.)

독서광이자 천재 끼가 다분했던 프랭클린은 언론인과 인쇄업자로서 거부가 됐다. 그는 일찌감치 은퇴를 하고 사회 공헌으로 인생 2막을 이어갔다. 당시 미국 필라델피아의 유력 인사들을 모아 사교 모임을 만들고 이 모임에서 만든 기부 자금을 통해 소방서와 대학교는 물론, 사실상 전 세계 최초의 공공 도서관을 만들게 된다. 일반 서민들도 어렵지 않게 책을 접해야 하며 그래야 자신의 권익에 신경 쓰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가 발전한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그의 철학과 모범적 선행은 이제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이끌었다. 미국은 앞으로도 한참을 앞서서 달릴 것 같다. 바로 미국인들의 기부와 자원봉사 문화를 보면서 점점 더 확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