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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속살을 보다 – 구경꾼의 중간선거 관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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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는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구경꾼은 무대 한쪽에서 배우나 관객이 미처 눈치 채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고도 했지요.
저는 올해 미국에 와서 중간선거(midterm election)를 지켜보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비록 ‘관찰자’에 불과했지만.


변화…43 대 52, 178 대 243
오바마 2기 정권의 ‘중간 평가’ 성격이 짙은 이번 선거 결과는 ‘공화당 압승, 민주당 참패’
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상원마저 접수해 ‘여소야대’ 정국이 연출됐다
는 평가입니다.


미 상원 홈페이지를 보면 현 113대 의회의 정당 구성은 민주당 53석, 공화당 45석, 무소속 2석
입니다. 하지만 현 무소속 2석은 역사적으로 민주당과 코커스를 함께 치러 민주당 쪽으로 계산에
넣기도 합니다. 이 구성비가 이번에 민주 43석, 공화 52석, 무소속 2석으로 바뀌었습니다. 3석은
승자 미확정입니다. 무소속을 민주 쪽에 포함하면 45대 52가 됩니다. 하원의 경우 이번에 공화당
243석, 민주당 178석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14석은 아직 승자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전까지는
공화 233석, 민주 199석, 공석 3석이었습니다. 주지사 구성비는 공화당 31석, 민주당 17석, 미확정
2석입니다. 이전엔 공화 29석, 민주 21석이었습니다.



1. 새로운 얼굴들


<공화당의 신성>


37세의 톰 코튼(공화당)은 아칸소주에서 3선에 도전한 현 민주당 의원을 제쳤습니다. 아칸소주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배출한 곳입니다. 그는 아이비 리그(하버드 로스쿨) 출신 변호사이자 이라크에서
장교로 복무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The Atlantic’은 그를 보수 진영의 ‘슈퍼스타’라고
명명했고 ‘Time’도 주저 없이 그를 ‘공화당의 떠오르는 별(rising star)’이라고 불렀습니다.
앞으로 그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요.


네브라스카주의 미들랜드대 총장이던 벤 새스(42세, 공화당)는 정치 초년생에 가깝습니다.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지만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당내 경선
에서 의회를 네브라스카로 옮기자는 ‘이색 공약’으로 눈길을 끌었지요. 공약 하나로 일약 ‘전국구
인물’ 같은 관심을 모은 데서 볼 수 있듯이 그에게는 세인의 이목을 끌 줄 아는 ‘정치적 본능’이
있다는 평가입니다.


<101년 만의 승리>


스티브 데인즈는 P&G에서 13년 간 일한 간부 출신입니다. 2012년 공화당에 입당해 몬태나주 하원의원
으로 뽑혔습니다. 이번에 상원으로 옮겨가게 됐습니다. 공화당은 그의 당선을 크게 반기고 있습니다.
이번 승리로 이 지역에서 무려 101년 만에 공화당 상원의원이 배출됐다고 하네요.


<가장 비싼 선거>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으로 뽑힌 톰 틸리스는 주 하원의장입니다. 그는 민주당 현역 상원의원인
케이 헤이건과 맞붙었습니다. 이들의 대결은 ‘무지막지한 돈 선거’로 유명했는데요. 양당이 1억
300만 달러에 달하는 선거 자금을 쏟아 부은 것으로 보도가 됐습니다. 그래서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상원 선거’로 기록됐습니다.


<정치 명문가의 후예들>


공화당 부시 가문의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받는 조지 P. 부시는 텍사스주 랜드 커미셔너에 당선
됐습니다. 그는 차기 대권주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아들이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조카입니다. 공직 진출 첫 선거에서 당선된 건 가문에서 그가 최초입니다.


민주당의 케네디 가문도 정치 계보를 이어갔습니다. 코네티컷주의 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테드
케네디 주니어가 그 주인공입니다. 환경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온 그는 고 에드워드 케네디 연방
상원의원의 아들이자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입니다.


이밖에 웨스트 버지니아주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인 셸리 무어 카피토와 편의점 체인 ‘달러 제너럴’
의 전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퍼듀(공화)도 관심을 끄는 상원의 ‘프레시맨(freshman)’입니다. 하원
에서는 30세의 여성인 엘리스 스테파닉(공화)이 뉴욕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미국 역사상 최연소 여성
의원 기록을 세웠습니다.



2. 뜨거운 이슈들


이번 선거를 관통한 ‘전국적인’ 큰 주제는 경제, ‘의료개혁’ 방안인 오바마 케어, 이민개혁 법안
등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각 주에서는 최저 임금 인상, 마리화나 규제 완화, 형사사법제도 개혁,
낙태 권리 합법화, 총기 규제, 환경보호 등이 주민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기본적으로는 연방 및 각 주의 상.하원의원과 주지사, 지방정부 관리들을 뽑는
선거입니다. 하지만 지역의 주요 현안, 법안에 대한 주민의 찬반 의사도 묻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살고 있는 델라웨어주를 비롯한 상당수 지역에서 주 검찰총장을 선거로 뽑는다는 것에 눈길이 갔습니
다.


오리건과 알래스카는 오락 목적의 마리화나 사용을 합법화했습니다. 워싱턴 D.C.는 성인에 한해 일정
량의 마리화나 소유를, 미국령 괌은 의료용 마리화나 사용을 각각 허가했습니다. 플로리다만 유일하게
이런 흐름에 ‘역주행’을 했습니다. 플로리다 주민들은 의료용 목적의 마리화나 사용도 반대했습니다.


총기 규제의 경우 워싱턴주가 규제 강화에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워싱턴주는 교회와 지역 지도층을
중심으로 총기 규제 목소리가 높았는데요, 이번 선거에선 총기 구입자들의 ‘경력’ 조회 확대에
투표자 60% 이상이 찬성했다고 합니다. 총을 사는 사람들의 범죄 경력과 정신건강 등을 체크하는 것
입니다.


메인주에서 이번 선거 결과로 큰 충격에 빠진 건 이 곳에 서식하는 약 3만 마리의 곰들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무분별한 사냥을 막는 법안이 주민의 지지를 못 받았기 때문인데요. 주는 사냥꾼들이 동물
을 잡기 위해 개, 덫, 미끼 등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안을 내놓았지만 민심을 얻지 못했습니다.


콜로라도주는 태아를 사람으로 규정할지를 놓고 주민의 의견을 물었지만 주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
습니다. 2008년 이후 3번째 ‘퇴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도 진통설 & 분만개시설,
일부노출설, 전부노출설, 독립생존 가능설 등을 놓고 기존 통설을 바꿀지에 관해 여러 논의가 있는
걸로 압니다만.


소다(soda) 음료에 대한 찬반 의견은 지역에 따라 엇갈렸습니다. 코카콜라와 펩시 같은 거대 회사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방어’에 나섰음에도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는 ‘단 음료’(sugary drinks)에 세금
부과를 가결한 첫 도시가 됐습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소다 세’ 반대 의견이 많았습니다.



3. 남겨진 얘기들


<힐러리 대망론>


중간선거 결과가 2016년 미국 대선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특히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가도에 어떻게 작용할지가 관심사입니다. 미국 언론은 벌써 힐러리의 유․불리와 향후
행보에 대한 이런 저런 분석을 내놓는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여성 권리 향상에 보다 적극적이고, 눈에 띄는 여성 의원이 많은 민주당을 ‘mommy party’
로, 이와 대비되는 의미로 공화당을 ‘daddy party’로 부르기도 하지요. 그런 ‘mommy party’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의 존재감은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그의 열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많은 자리를 공화당에 내줬습니다. ‘오바마에 실망한 민심’
을 돌리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네요. 여론도 달라졌습니다. 2009년 2월에는 투표권자의 59%가
그에게 우호적이었지만 9월 조사에선 43%로 떨어졌다고 분석됐습니다.


한편으론 이번 참패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공화당이 차지한 의회를
상대로 보다 선명한 정치적 행동을 펼칠 수 있으니 ‘밝은 희망’(silver lining)이 보인다나요.
이번 선거는 그에게 위기가 될까요, 기회가 될까요.


<점쟁이들>


이번 중간선거는 여론조사 기관들의 예측대로 ‘공화당의 압승’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지난 대선 결과
를 정확히 예측했던 유명 정치평론가 네이트 실버는 선거 전에 공화당이 상원을 차지할 확률을 75%로
예측했습니다. 다른 여론조사 기관들의 전망도 비슷했습니다. 이미 선거 유세전에서 ‘No Hope Obama’,
‘NO․BAMA’라는 문구가 자주 눈에 띄었죠. 따라서 이번 선거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어쨌건 이번 선거에서도 ‘점쟁이들’은 정확한 예측력을 보여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