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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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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가 사는 버지니아 패어팩스 카운티 당국에서 세금를 내라는 통지서를 우편으로 받고 나서, 순간 머리가 갸우뚱해졌다. 미국 시민권자도 아닌 나한테 미국 정부에 세금을 내라고???

미국은 나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 비록 1년이지만, 상당한 세금을 미국 정부(연방정부 및 주정부)에 갖다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일상생활 곳곳에 세금이 숨어있다. 메트로를 타고 워싱턴DC로 오갈 때나 차에 기름을 넣을 때,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에도 영수증을 꼼꼼히 살펴보면 꼬박꼬박 사용금액의 4-6% 정도의 세금을 자동으로 문다.(물론 마트에서 구입하는 식품은 대부분 면세다) 여기에다 가끔 여행이라도 하게 되면, 아무리 저렴한 호텔에 묶어도 최소한 하룻밤에 10달러 이상의 세금을 낸다.

이 뿐 아니다. 매달 내는 통신요금 전기세 수도세 등 각종 유틸리티 요금에도 7% 정도의 세금이 붙는다. 미국에 와서 내가 구입한 자산에도 세금(property tax)이 부과된다. 물론 내가 구입한 자산이란 게 자동차 밖에 없지만, 자동차 가격이 만만치 않은 관계로 상당 금액의 세금을 내고 있다. 차량 구입 당시 냈던 등록세와 매년 정기적으로 내야하는 세금을 합쳐 이미 1000달러 이상을 낸 것 같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1년이지만 미국의 우수한 선진 인프라를 누리는 혜택에 비하면 그 정도 세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하지만 글쎄? 과연 그럴까?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적지않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아깝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실제 미국인이 느끼는 세 부담은 어느정도일까? 계량적으로 측정하기 힘들지만, 상당한 수준이라는 게 대다수 미국인들의 생각같다.

우선 미국은 연방국가인 만큼, 대부분의 세금에 연방세와 주정부세가 같이 매겨진다. 예컨대 봉급생활자들이 내는 소득세의 경우, 연방세는 소득 구간에 따라 많게는 세율이 35%에 달한다. 가장 적은 소득 구간의 경우도 10%의 세금을 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면세점(총소득이 인적공제, 소득공제 등 각종 공제액 합계에 미달돼 과세표준이 없어 세금이 면제되는 구간) 제도 덕분에 근로소득자의 40% 이상이 소득세를 한 푼도 안내는 것에 비하면 미국 근로자들의 세부담은 상대적으로 꽤 크다. (*우리나라는 역대 정부들이 저소득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근로소득세 면세점을 상향 조정한 결과 근로소득자 10명중 4명 정도가 소득세를 한 푼도 안내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연소득 2000만원 까지가 여기에 해당된다)

소득세에는 연방세 외에 주정부가 걷는 세금도 별도로 부과되는데, 주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많은 곳은 10%에 육박하며 적은 곳은 4% 정도에 달한다. 이 때문에 내가 다니는 대학의 한 교수는 “몇푼 안되는 월급(미국은 교수 월급이 생각보다 짜다)을 받는데, 거기서 이런 저런 세금을 제하면 진짜 손에 쥐는 것은 몇푼 안된다”고 불평을 잔뜩 늘어놓은 적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특정 세금항목의 경우 연방세 및 주정부세 외에 주정부 산하 카운티가 걷는 세금도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세주체가 연방·주·지방의 세 정부로 구분돼 독립된 과세권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2중·3중의 과세문제가 생기고 동일 항목에 대한 동종의 과세가 경합하는 일도 생긴다고 한다.

미국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부가가치세(상품이나 서비스 거래과정에 매겨지는 세금)가 없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판매세(sales tax)가 있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나서 받은 영수증을 보면 sales tax 항목이 반드시 있다. 판매세는 주마다, 같은 주에서도 카운티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대부분 6% 정도를 부과하고 있다. 재정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주는 4% 정도를 매긴다. 가장 비싼 주는 캘리포니아로 8.25%에 달한다. 캘리포니아는 전통적으로 신흥 부자동네이지만, 과거 낮은 세율 때문에 만성적인 재정난을 겪다가 2009년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지사 시절, 파산을 선언한 이후 세율을 크게 올렸다고 한다.

내가 사는 버지니아주는 4%이지만, 바로 옆에 붙어있는 메릴랜드주는 6%다. 따라서 메릴랜드주에 사는 사람들이 값비싼 물건을 구입할 때는 버지니아주로 넘어와 구입해 가져간다고 한다. 나도 경험으로 확인한 것인데, 조립가구 백화점인 이케아(ikea)에서 애들 침대를 구입하다가 개수가 하나 부족해 메릴랜드주에 있는 이케아에 가서 똑같은 모델을 샀는데, 버지니아에 있는 이케아 제품보다 더 비쌌다.
(*참고로 미국 50개주 가운데 오레곤과 댈라웨어,몬타나,뉴햄프셔,알래스카주는 판매세가 없다. 이 동네를 여행할 때를 대비해 비싼 명품 구입은 참는 게 좋다)

메릴랜드가 버지니아처럼 잘 사는 동네이면서도 재정 상태에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한 지인이 들려줬는데, 그 이유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버지니아가 전통적으로 공화당 정서가 뿌리깊은 동네인 반면, 메릴랜드는 민주당 세가 강한 곳인데, 민주당이 주정부를 오랫동안 장악해오면서 지나치게 포퓰리즘적인 복지정책을 써온 결과 재정이 악화됐다고 한다. 또 메릴랜드는 법인세가 높아 기업이 기피한 까닭에 결과적으로 세수도 줄어 재정이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미국의 세금제도는 우리나라보다는 국민 친화적이다. 우리나라는 직접세(소득세 법인세 등)보다는 간접세(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등) 비중이 더 높은 반면(대략 45대 55 비율, 개별 세목으로는 부가세>법인세>소득세 순서로 비율이 높다), 미국은 직접세 비중이 85%에 달한다. 간접세는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소비에 똑같이 부과되기 때문에 저소득층에 불리해 역진성이 직접세에 비해 크다. 때문에 간접세 비중이 낮을 수록 선진적이다.

미국이 선진적인 세제를 갖고 있는 것과 달리 만성적인 세수 부족에 시달린다. 재정 적자는 정부가 지출하는 것에 비해 걷히는 세수가 부족해서 오는 것인데, 이 때문에 미국 세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득세 수입을 늘리기 위해선, 부자와 대기업의 세금을 더 높이자는 주장이 나온다. 연소득으로 1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부자들(대략 45만명이 해당)에게 추가로 세금을 더 걷자는 ‘버핏세’가 대표적이다.

특히 미국 상위 1% 부자들은 대부분 근로소득보다는 보유주식이나 금융소득 같은 비 근로소득이 대부분인데, 그래서 자본이득(capital gain)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미국의 자본이득 과세는 소득 수준에 따라 최고 15%를 매기고 있는데, 이는 최고 35%에 달하는 근로소득세율보다 낮다. 이 때문에 워런 버핏은 자신같은 부자들이 샐러리맨들에 비해 세금을 덜 낸다며 부자세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자본이득세율은 2013년이 되면 자동적으로 최고 20%로 복귀하지만, 상위 1%가 미국을 망친 장본인으로 매도당하는 지금 분위기대로라면 20%보다 더 높은 세율이 부과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자본이득세율이 제로다. 주식 양도차익은 기본적으로 비과세다. 국회 일각에서는 미래 재정악화에 대비해 미국처럼 자본이득세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특히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이 정기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로 외치는 것이 바로 자본이득세 도입이다), 자본이득세가 도입되면 자본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반발에 부딪쳐 쉽게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미국 처럼 보유 자산의 크기에 따라 세율을 달리하면서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외국인 투자 유인을 통한 자본시장 육성이라는 당초 비과세 목적이 이미 한참 달성되고도 남은 데다, 지금의 자본시장은 본래의 자본 조달시장으로서의 기능은 상실된 채 갈수록 투기화되고, 이에 따라 기업들 입장에선 상장유지 비용이 더 큰 시장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