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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미국 동부에 기상이변이 속출했습니다. 워싱턴 DC엔 폭설이 몰아쳤고,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등 북쪽엔 한파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눈폭풍이 예고된 한겨울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에 있는 사촌언니를 만나러 갔다가 혼쭐이 났습니다. 미 남부에서 북부로 가려면 동부 허리춤을 가로지르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이 지형이 얼마나 가파른 지 몰랐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클리블랜드까지 거리는 약 560마일(약 900㎞) 입니다. 시속 62마일(약 100㎞/h)로 쉬지 않고 9시간 달리는 거립니다. 원래는 사흘에 걸쳐 목적지에 도착하는 계획을 짰습니다. 하루에 3-4시간 정도 운전해서 인근 관광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출발하는 식입니다. 첫날은 웨스트버지니아 눈썰매장 인근에 숙소를 잡고, 둘째날은 오하이오 주도인 콜럼버스근처 캐빈을 예약했습닌다.
출발은 1월 5일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출발일을 하루 앞두고 일기예보가 심상찮았습니다. ‘위력적 눈폭풍, 미 중부 강타 시작(A Powerful Winter Storm Begins It’s March Across the middle of the US)’ 1월 4일 뉴욕타임스 헤드라인입니다. 1월 5일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미 중부에 폭설을 뿌릴 예정이니, 이 날은 웬만하면 여행하지 말라는 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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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눈 온다는데, 하루 미뤄서 출발하면 안 돼?” 남편은 눈길 운전은 위험하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지요. 저는 도리어 눈 폭풍을 앞지를 생각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폭풍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황당한 생각입니다. 제임스 본드도 아니고 9인승 밴으로 무슨 수로 폭풍우를 앞지를 수 있겠습니까.
집에서 웨스트버지니아까지는 제가 운전한다고 큰소리를 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숙박을 예정한 호텔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기상이변에 따라 예약 취소를 요구한다’는 이메일을 보내 환불을 받고 9시간 운전을 대비했습니다. 당일 아침 노스캐롤라이나는 고요했습니다. 눈도 없고, 날씨도 온화했습니다.
“폭풍우가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어” 의기양양 첫 3시간을 운전했는데, 노스캐롤라이나를 벗어나자마자 하늘이 흐려지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산길에 접어들자 갑자기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남편은 여행 전날 정비소를 찾아 자동차 안전 점검을 받은 만큼, 타이어 자체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습니다. 바깥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생긴 기술적 문제로 생각됐지만, 막상 경고등을 보니 아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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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굵어지는 눈발에 앞은 보이지 않고, 타이어 공기압 신호는 계속 뜨고, 기름은 바닥을 향해 갔습니다. 결국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남편에게 운전석을 넘겼습니다. 산 정상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뒷좌석에 앉아 날씨 앱의 기상 레이더를 확인하는데, 눈폭풍은 제 예상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오후 1시 현재 우리는 폭풍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오후 2시 애팔래치아 산맥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I-64에 눈이 쌓였습니다. 남편은 엔진브레이크를 쓰면서 시속 30마일(약 48㎞/h)로 엉금엉금 움직였습니다. 사륜구동 지프차들이 1차선으로 우리를 앞질러 가도 ‘우리도 움직이고 있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 앞에 있던 소형 밴 하나가 갓길에 처박힙니다. 갓길 가드레일을 벗어나면 바로 낭떠러지인 길에서 말입니다.
우리 차도 슬금슬금 2차선 바깥으로 기울어집니다. 남편에게 “1차선으로 가요. 갓길이 더 미끄러워 보이는데“ 라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 순간 차가 휘청 합니다. 앞 차가 미끄러진 자리에서 우리 차도 미끄러진 겁니다. 그 때 오만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산길 한복판에서 조난 당하는 건가‘ ‘견인차는 AAA로 불러야겠지’ ‘기름도 가득 채웠고, 핫팩도 넉넉히 있으니까 아침까지 얼어 죽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후회가 가장 크게 밀려들었습니다. ‘내일 출발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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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딸과 두 손을 맞잡고 ‘목적지까지만 무사히 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빌었습니다. 남편은 눈길을 벗어나려 수동변속기로 기어를 계속 움직였습니다. 핸들을 조절해 바퀴를 일렬로 맞추고, 엔진브레이크로 눈길을 밟고 나가기를 수차례, 가까스로 미끄러운 구간을 벗어났습니다. 저는 기상 레이더를 보면서 ’50마일만 더 가면 눈 폭풍에서 벗어난다.’ ‘ 30마일만 더 가면 산맥을 벗어난다’고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고비가 서너 차례 있었습니다. 완만해 보이는 오르막인데도, 눈이 내리자 전륜구동 밴과 승용차들은 움직이지 못하더라고요. 도로 바깥에 잭나이프처럼 반토막으로 접힌 대형 트럭도 봤습니다. 대형 제설차를 뒤쫓아가며 달리기를 9시간. 그렇게 그날 저녁 9시 클리블랜드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집에서 나온 지 13시간 만입니다. 사촌 언니가 집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해서 시내 호텔을 잡았습니다. 평소라면 호텔 근처 공공 주차장에 주차하고, 짐을 옮겼을 텐데, 이날은 50달러에 발렛 파킹을 맡겼습니다. 호텔에 어떻게 체크인했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오셨다고요?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네요” 다음날 호텔 직원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호텔 정문 앞에 세워진 자동차는 염화칼슘을 뒤집어써서 새하얗게 됐고, 범퍼와 옆구리에 고드름이 달렸습니다. 발목까지 쌓인 눈을 보면서 ‘우리가 오하이오에 도착하긴 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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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추웠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하이오의 주도인 콜럼버스에서 하루 묵었는데, 바깥에 주차한 차에 둔 보온병 속 물이 꽝꽝 얼었습니다. 이날 밤 기온이 영하 25도였다고 하더군요. 남편은 혹한기 훈련을 하는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에 와서 눈보라 치는 산길을 운전하고, 영하 25도에서 장작불을 피운 남편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눈길 운전, 특히 겨울철 웨스트버지니아의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는 운전은 피할 것을 권합니다. 여행 당일 눈이 예정돼 있다면, 출발 날짜를 미루는 게 낫습니다. 눈이 자주 내리는 지방은 관련 인력과 장비를 구비해 두기 때문에, 눈보라 다음날은 제설차가 깔끔하게 도로를 정비해서 오히려 편하게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일정을 미룰 수 없다면 미국 주정부가 운영하는 도로교통 상황 사이트를 참고할 것을 권합니다. 웨스트버지니아 교통국은 511 WV(511 웨스트버지니아, https://wv511.org/)을 운영합니다. 이 사이트에서는 지도로 교통상황을 확인할 수도 있고, 지도에 표시된 카메라를 누르면 그 지역에 눈이 오는지, 도로에 눈이 제대로 치워졌는지도 실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오하이오 교통국(ODOT)에서는 ‘오고(Ohgo, https://ohgo.com/)’를 운영합니다. 클리블랜드 시내 도로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