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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검사, 한국 검사 – 미국 연방검사가 말하는 검사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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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고 있는 매튜 그레이브스 연방검사 / 2024년 2월 22일

미국 로스쿨 학생들이 봄 학기 동안 여름 방학 동 기간 인턴을 할 기관을 정해야 한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 로스쿨(George Washington University Law School)은 워싱턴 DC에 자리잡고 있어서 전통적으로 연방정부가 시민 단체 같은 공공 영역에서 인턴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정부 기관이나 시민 단체도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서 학교에 찾아와 설명회를 연다.  2024 2 22일에는 워싱턴 DC의 연방검사(US attorney)인 매튜 그레이브스(Mathew Graves) GW Law School을 찾아와서 연방검사실에서 여름 인턴십을 하려는 학생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었다.

미국 연방검사(US attorney)는 미국 법무부 소속 공무원으로 각 관할 구역 내에서 연방 정부의 법 집행을 총괄하는 기관장이다.  93명의 연방검사가 있는데, (State)의 크기와 인구에 따라서 한 주마다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4명의 연방검사가 배치된다. 각 연방검사 밑에는 수 십 명에서 수백 명의 연방검사보(ASA, Assistant US attorney)가 배치돼 실무를 담당한다. 연방검사는 선거를 거쳐 뽑히는 경우가 많은 주 검사(State Attorney)와 달리 대통령이 임명하는 보직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사건을 담당하는 경우 어느 대통령이 사건을 담당하는 연방검사를 임명했는지에 따라 정치적 논란이 불거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매튜 그레이브스  DC 연방검사는 설명회장에 경호원과 언론홍보 담당관을 비롯한 여러 수행원을 대동하고 등장했다. 연방검사를 보통 한국에서는 검사장급 검사(정확하게는 대검 검사 급 검사)에 비교하는데,  한국에서 검사장들을 여러 차례 만나봤지만 경호원이나 수행원을 대동하는 경우는 없었다. 확실히 미국의 연방검사를 한국의 검사장과 일 대 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연방검사 쪽이 부여된 권한이나 사회적 위치 면에서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브스 연방검사는 자신이 자라날 때는 대중 문화 속 검사의 이미지가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다며 설명회를 시작했다. 8학년  (우리 학제로는 중학교 2학년 때) 풋볼 코치가너는 좋은 변호사가 될  것 같다.’고 말해줘서 처음으로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됐는데, 주위에 법조인이 없었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을 읽으면서 법조인에 대해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에는 영화나 소설에서 검사가 좋은 의미의 주인공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자연스럽게 검사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모래시계> <공공의적 2: 강철중> 같이 검사가 선한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았지만 200년대 중반 이후 <부당거래> 등 검사가 악역으로 나오는 컨텐츠가 대부분이 된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브스 검사는 대학을 거쳐 예일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했고, 연방검사실에서 인턴과 연방 판사의 로 클럭을 거쳐 유명한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로펌에서 4년 동안 일하는 동안 직접 법정에 나가 소송에 참여할 기회는 1번 밖에 없었고, 그나마 자신이 입사 동기들 중에서는 소송 경험이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 연방검사실에서 인턴을 할 때 범죄 피해자들을 도우면서 느꼈던 보람, 그리고 로펌보다 훨씬 더 많이 주어지는 소송 참여 기회 등을 고려해 연방검사보(ASA)로 이직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그레이브스 연방검사는 연방검사실 근무의 매력 중 하나는 폭 넓은 재량권이라고 강조했다. 로펌에 있을 때는 상대방 변호인에게 간단한 서면을 보내려고 해도 4~5명의 결재를 받아야 했는데, 연방검사보가 된 이후에 자신의 상관에게 비슷한 결재를 받으려고 여러 번 찾아왔더니 자신의 상관이  매튜 그레이브스, 너는 미합중국의 연방검사보야! 가서 너 스스로 정의를 행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고 설명했다.

그레이브스 연방검사는 자신이 자랄 때와 지금은 검사 직의 대중적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연방검사는 실제로 시스템을 바꿀 힘을 있는 자리라면서 더 많은 학생들이 검사를 희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익 변호사도 물론 훌륭한 일이고 자신의 부인 역시 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변호사는 결국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의뢰인 1명에게 집중해야 하는 일이며, 결국 힘을 가진 누군가에게 청원해야 하는 입장인 반면, 검사실에서 근무를 하면  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다며 검사 직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질의 응답 시간에는 인턴십 지원을 앞둔 로스쿨 학생들의 구체적인 질의가 쏟아졌다. 인턴십에 실제로 지원할 학생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는 행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 마지막으로 평소 궁금하던 점을 물었다. 미국 연방검사의 경우 기소(prosecution)과 소송 수행(litigation) 이외에 수사(criminal investigation)에 있어서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레이브스 연방검사의 대답은 조금 뜻 밖이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인 내가 그런 질문을 한 이유에 대해 이해한다면서, 미국의 경우 수사와 기소. 그리고 공소유지까지 이어지는 절차가 두 단계로 나눠져(bifurcated)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연방검사가 전체적으로 주관하는원 스탑 샵(one stop shop)”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범죄 혐의가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를 발견하면 연방검사가 접 수사를 개시하겠다는 결정을 하는데, 다만 이와 같은 수사는 연방검사실이 FBI 같은 다른 법집행 기관과 공조해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We make the decision to open an investigation in conjunction with the law enforcement partner like the FBI for instance.”)  그 후 연방검사는 소환장을 발부하거나, 법원의 명령을 받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할 수 있고, 수집된 증거가 범죄 혐의를 입증한다고 판단하면 대배심(grand jury)에 기소를 요청하고 대배심이 기소를 결정하면 법정에서 공소 유지에 나선다고 말했다.

내가 의외로 느꼈던 것은 그레이브스 연방검사가 미국에서의 형사사법 절차가 오히려원 스탑 샵에 가깝다고 표현한 것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수사와 기소가 완전히 분리돼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적지 않은데, 오히려 미국의 현직 연방검사는 다른 나라의 시스템의 경우 수사에서 기소까지 단계가 두 단계로 분리돼 있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bifurcated” 라고 표현]  미국은 연방검사의 책임 하에 하나의 기관에서 수사부터 기소까지 이어 갈 수 있다며원 스탑 샵(One Stop Shop)”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물론 미국의 연방검사의 경우 검사실에 소속된 수사관이 직접 수사를 하는 경우보다는 FBI SEC등 다른 기관의 수사 인력과 공조해 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어서 검사가 직접 대규모의 수사관 인력을 거느리고 직접 수사를 하는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 형사 사법 절차에서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레이브스 연방검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국 검사와 한국 검사를 둘러싼 환경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완전히 다른 법률에 근거해 상당히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두 나라 검사들이지만, 대중문화 속에서 주로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고,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비슷하게 느껴졌다. 설명회에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레이브스 연방검사 역시 미국 국회 점거 폭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기소했다는 이유로 공화당 일부 정치인으로부터 탄핵 대상으로 지목됐다고 한다. 여러 범죄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하면 연방검사들을 교체해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복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도 하다. 두 나라 검사들이 처한 비슷한 상황이 정치와 미디어의 변화에 따른 전세계적 흐름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공교로운 우연의 일치 불과한 것인지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