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국 연수 생활 중 가장 아픈 기억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한 번 떼여본 적 없던 과속 딱지를 그 무시무시하다는 미국 경찰에게 떼인 것. 하지만 아픈 역사도 역사이듯, 부끄러운 경험도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 다른 연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최대한 가감 없이 적어본다.
플로리다 남서부에 있는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국립공원이다. 습지를 가로질러 가는 동안 주유소도 거의 없어 중간에 기름이 떨어진다면 낭패를 볼 수도 있을 만큼 거대하다. 사건은 가족과 함께 이 공원의 도로를 종단하던 중 일어났다. 당시 속도 제한은 시속 55마일. 대략 5마일 안팎까지는 단속하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면서 60마일에 크루즈 속도를 고정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제한 속도가 줄어드는 코너 구간에서 제때 속도를 줄이지 못했고 때마침 도로 밖 수풀 속에 잠복(?)해 있던 경찰 차량에 발각되고 말았다.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려대자마자 반사적으로 차를 도로 옆에 멈춰 세웠다. 경찰 차량에서 내린 경찰관이 내 차로 다가오는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창문을 내리고 침착하게 한 마디 한단 소리가 고작 “I’m sorry, sir.” 경찰관은 내가 과속하며 중앙선을 살짝 넘었다고 했다. 사실 그대로였다. 그러면서 ‘운전면허증’과 ‘차량등록증’을 요구했다. 아뿔싸. 여행을 시작하며 집을 나선지 한 시간 쯤 뒤 운전면허증을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터라 ‘별일 없겠지’하며 잊고 있던 차였다. 집에 두고 왔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운 과오는 이게 끝이 아니다.
차량등록증?? ‘이건가’하고 보관 중인 서류를 내밀었지만 경찰관은 그건 ‘타이틀’이라며 다시 찾아보라고 한다. 미국에선 차를 구매하면 그 차가 자신의 소유인 것을 나타내는 ‘타이틀’을 발급해준다. 그런데 차량이 미국 주정부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 미국 주정부 차량 관리국, 우리로 치면 ‘차량등록사업소’)에 등록이 됐다는 걸 증명해주는 차량등록증은 따로 있다. (실제로 나중에 찾아보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이 ‘타이틀’을 차량등록증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꽤 있었다.) 자동차세를 내면 우편으로 보내주는 영수증처럼 생긴 편지 봉투 크기의 종이 쪼가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와 우편물 보관함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미 때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림 1. 미국 조지아 주의 차량등록증
결국 여권과 임시 자동차 면허증으로 내 신분을 확인한 경찰관은 경찰차로 돌아갔다 5분 뒤 다시 다가왔다. 과속에 대해선 벌금을 내야 하는 딱지(citation), 중앙선 침범과 차량등록증 미제시, 운전면허증 미제시 세 건에 대해서는 경고장(warning)을 발부했다. 경고는 별다른 제지가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땐 중범죄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미국 생활 반 년 만에 그것도 한 방에 전과(?) 4범이라니.
안전 운전하라는 경관의 말투는 비교적 부드러웠지만, 딱지에 적힌 벌금 액수는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253불. 고환율 시대에 더더욱 날벼락이었지만 그래도 나머지 3건에 대해선 봐준 셈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참고로 플로리다 주의 속도위반 구간별 벌금액수는 다음과 같다.
그림 2. 플로리다 주의 속도위반 벌금. 공사구간이나 스쿨존에선 더 세지니 주의해야 한다.
(출처 : www.collierclerk.com)
경찰관이 설명해준, 그리고 과속 딱지에 친절하게 적혀있는 안내문에 따르면 나의 벌금 납부 옵션은 세 가지였다. 첫째, 전액을 납부한다. (온라인 납부도 가능) 둘째, 4시간짜리 교통 교육을 받고 (온라인 교육도 가능) 벌금 일부를 감면받는다. 두 번째 옵션을 선택하면 벌점을 면제받을 수 있다. 벌금 액수도 20불 정도가 줄어들지만 교육비가 10불이 넘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는 셈이다. 셋째, 법원에 출두해 반박한다.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운전자가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옵션을 선택한다. 운전자는 세 가지 중 하나를 30일 안에 선택해야 하며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시 바꿀 수 없다.
나는 벌금의 찝찝함을 하루라도 빨리 털어버리기 위해 ‘전액 납부’를 선택했다. 딱지 발부 닷새 뒤 온라인에서 케이스 검색이 가능했고 카드로 결제를 마무리했다. 온라인 납부 시 10.12불의 수수료가 발생한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선택이 달라졌을까. 납부 버튼을 누르는 순간 손이 떨렸다.
과속 딱지를 떼인 이후 이젠 주변 차량들이 상당수 지나쳐갈 만큼 정속 주행을 하고 있다. 그래도 경찰 차량을 보면 매번 멈칫한다. 수십만 원에 달하는 벌금은 안전 운전 습관을 강제로 주입받기 위한 비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난 ‘모범 시민’으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