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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속도로 교통사고 수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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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수 생활 중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아마 예상치 못한 사고에 휘말렸을 때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최근 제법 큰 교통사고를 겪었습니다. 가해 차량은 반파될 정도의 큰 사고였지만, 천만다행으로 제 차는 상대적으로 경미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규정 속도를 준수했고 방어 운전도 철저히 했음에도 피할 수 없는 사고였습니다. 비록 몸은 무사했지만 수리를 위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미국 내 교통사고 수습 과정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운전중 GPS조작하다 사고를 낸 차량. 사고에 비해 큰 부상자가 없어 다행이었다.

사고 직후, 기록에 집중하라

사고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연휴를 맞아 뉴욕으로 향하던 고속도로 위에서 발생했습니다. 1차선에서 과속하던 차량이 갑자기 왼쪽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더니, 제동력을 상실한 채 도로 한가운데로 급격히 미끄러져 들어왔습니다. 급히 핸들을 꺾어 정면충돌은 피했지만, 측면 추돌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고 직후 뉴욕행 상행선이 모두 폐쇄되는 등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저 역시 패닉에 빠졌습니다. 그때 평소 도움을 받던 버지니아 지역 한인 정비소 사장님께 연락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사장님의 첫 마디는 “일단 모두 기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차량의 파손 부위와 사고 위치 등을 사진과 글로 남겼습니다.

잠시 후 경찰차와 소방차가 도착했습니다. 초동 출동한 경찰이 사고 경위 진술을 받아갔고, 곧이어 도착한 두 번째 경찰은 상해 정도와 견인 필요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이때 운전면허증과 보험증서(Proof of Insurance)를 요구하는데, 평소 차량 내에 보험증서를 구비하거나 보험 번호를 메모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확인이 끝나면 경찰은 사건번호(Case Number)가 적힌 문서를 건네줍니다. 차량 운행이 가능하다면 목적지까지 이동 후 추후 보험 처리를 하라고 안내해 줍니다. 저희 가족은 트라우마를 안은 채 다시 뉴욕을 향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고 현장에서 반드시 경찰로부터 사건번호를 발급받고, 담당 경찰의 이름까지 확인해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뉴저지주 경찰 Crash report 발급 예시.

경찰 리포트(Crash Report) 발급받기

사고 현장에서 경찰이 “상대 운전자가 GPS를 조작하다 실수했다고 진술했으니 걱정 말라”고 말해주었지만, 이를 공식 문서화한 ‘Crash Report’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 리포트는 사고 발생 주(State)의 경찰 홈페이지에서 발급받을 수 있으며, 보통 발급까지 최대 2주 정도 소요됩니다. 저 역시 약 열흘 후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발급 방법은 관할 경찰서를 직접 방문(무료)하거나 온라인(유료)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거주지인 버지니아에서 사고 지점인 뉴저지까지 갈 수 없어 약 10달러의 수수료를 내고 온라인으로 발급받았습니다.

보험사 클레임 제출과 조사

여행을 마치고 귀가한 뒤 보험사(Progressive)에 클레임(Claim, 보상 요청)을 접수했습니다. 접수 과정에서 보험사는 사고 위치, 차량들의 상대적 위치와 움직임, 주행 속도, 해당 도로 이용 목적 등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을 물어왔습니다.

당시 경황이 없어 답변이 막히면 보상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만 진술하고, 불분명한 부분은 솔직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해도 무방합니다. 결국 보험사는 앞서 언급한 경찰의 Crash Report를 바탕으로 최종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리포트가 발급되면 앱이나 홈페이지에 업로드하여 담당자와 공유하면 됩니다. 이후 보험사의 안내에 따라 파손 부위 사진과 영상을 찍어 보내면 수리 견적서가 발행됩니다.

보험사 대표번호 혹은 홈페이지를 통해 사고에 대한 Claim을 요청할 수 있다. 보험사 홈페이지에 떠 있는 Claim 현황

수리 및 렌트, 그리고 변제 요구

보험사는 대개 연계된 수리점(Network Shop)을 권고하지만, 본인이 편한 수리점을 선택해도 됩니다. 저 역시 제 차량을 관리해 주던 한인 업체에 수리를 맡겼습니다. 저는 수리비 중 본인 부담금(Deductible) 500달러를 우선 결제하고, 나머지 수리비는 보험사가 제 계좌로 입금해 주는 방식으로 처리했습니다. 이후 제 보험사가 가해 차량 측에 500달러를 청구하여 저에게 돌려주는 절차가 진행됩니다. 가해자가 과실을 순순히 인정하면 이 과정이 신속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잘잘못을 가리는 데 6개월 이상 걸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제 보험 옵션에 ‘렌트카 보장’이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차 없이 생활하기 힘든 미국 연수생에게는 큰 위기였습니다. 가입 당시 보험료를 아끼려 뺀 항목이었는데, 꼭 필요한 보장은 다 챙기시길 권합니다. 결국 렌트비도 우선 제 사비로 결제한 뒤, 상대측 보험사로부터 변제 받을 수 있도록 요청해 둔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