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의 ‘이색’ 퍼레이드 즐기기
미국 내에서 웬만한 지역간 이동을 위해서는 비행기가 필수다. 내가 사는 동부 뉴욕에서 반대편서부인 샌프란시스코를 가려면 비행기로 6시간30분을 날아가야 하고, 남부인 플로리다까지는 3시간30분을 타야 한다. 영토 면적이 어마어마하게 넓다 보니 지역별로 날씨, 시간대, 문화, 거리 분위기도 달라서 마치 다른 나라에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개성 넘치는 도시를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면 해당 지역의 축제 기간에 맞춰서 방문해 보는 게 좋다. 이 시즌에는 현지인과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로컬 분위기에 한껏 취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초 미국 ‘특별한’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남부지역 2곳을 다녀왔다.
미국 재즈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뉴올리언스에서는 매년 2월 중순께 ‘마디 그라(Mardi Gras)’ 축제가 열린다. ‘마디 그라’는 프랑스어로 영어로는 ‘fat Tuesday’를 뜻한다. 미국 남부지역 루이지애나주를 대표하는 도시, 뉴올리언스의 ‘마디 그라’는 글로벌 3대 축제로 꼽힐 정도로 성대하게 치러진다. 2월 중순~말까지 주말 주중을 가리지 않고 도시 곳곳에서 퍼레이드가 있어 이 시즌에는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몰린다고 한다.
이 퍼레이드를 위해 뉴올리언스 일대 학교, 각종 지역 커뮤니티, 군인, 동호회 등은 일년간 준비한다고 한다. 다양한 테마로 구성돼 있어 화려한 코스튬과 퍼레이드카를 보는 재미가 있다.
내가 방문한 시기는 마디 그라 초반이었지만 관광객들로 붐벼 평소보다 호텔 요금은 2~3배 가량비싸고, 우버 요금도 30%씩 올라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물가와 비교할 체감수준은 30% 가량 저렴한 느낌이 들었다.
이 때는 뉴올리언즈의 구도심인 프렌치쿼터 지역부터 물론 가든 디스트릭트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체가 축제의 장으로 바뀐다. 캠핑용 의자와 텐트, 아이스박스에 음료와 먹을거리를 잔뜩 싸들고 나온 가족, 친구 무리들이 길가를 가득 메운다. 건물 곳곳에는 발코니나 창문, 입구 등에 마디 그라의 상징 컬러인 보라, 초록, 금색(옐로)이 조합된 장식들로 축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뉴올리언스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이국적인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퍼레이드와 함께 밤낮으로 재즈 버스킹 공연들도 곳곳에서 펼쳐져 눈과 귀를 모두 즐겁게 한다.
이곳의 퍼레이드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참가자는 물론 관람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뉴욕에서도 추수감사절 ‘메이시스 퍼레이드’가 있었지만 관람객들은 그냥 구경꾼이었다. 하지만 이 곳 마디 그라 퍼레이드는 참가자, 관람객 모두가 각자 가면(마스크), 비즈 목걸이, 머리띠 등 화려한 코스튬으로 꾸미고 거리를 나선다.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참가자들은 비즈 목걸이, 컵, 장식품 등을 관람객들에게 던져주면서 지나간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나니 어느새 내 목에는 수십개의 비즈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퍼레이드가 끝나 밤이 깊어지면 버번(bourbon) 스트리트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뉴올리언스에서 밤에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뀐다. 다양한 버스킹 공연, 길가 클럽과 재즈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묻혀 술잔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운다. 뉴올리언스가 범죄율이 높은 도시로 알려져 있어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을 피하라는 지인들의 조언들이 많았지만 크게 위험하다는 느낌은 없다.
뉴올리언스의 ‘마디 그라’보다 유명세는 덜하지만 플로리다주 서쪽 도시인 탬파에서는 매년 1월 마지막주 토요일 ‘가스파릴라(Gasparilla)’ 퍼레이드가 열린다. 일정이 맞는다면 한번쯤은 구경해 볼만 한 축제다. 탬파시에서는 1904년부터 ‘해적’을 테마로 1년에 한번 해안가와 거리에서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가스퍼릴라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 플로리다 해안에서 활동한 마지막 해적의 이름인 ‘호세 가스파르’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탬파시의 가장 큰 축제로 이날은 아침부터 거리에 인파들로 북적거린다. 정오부터 1시간 반 가량 진행되는 ‘가스파릴라’를 보기 위해 이미 아침부터 퍼레이드 루트에는 바와 레스토랑이 가득 차고, 길가도 수십 만 명의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퍼레이드의 관람 포인트는 탬파베이에 들어서는 ‘해적선’이다. 영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대형 해적선이 화려한 장식과 함께 대포를 쏘면서 등장해 베이를 지나간다. 이를 따라 작은 해적선들이 함께 지나가면서 주변 관람객들에게 목걸이를 던져준다. 퍼레이드 관람객들도 해적 복장으로 꾸미고 나와 가족, 연인, 친구 등과 무리를 지어 퍼레이드를 따라다닌다.
이들의 퍼레이드에서는 참가자나 관람객 모두 나이, 인종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어울린다. 나도금빛 목걸이와 팔찌로 휘감고 해적으로 치장하고 나온 노부부, 붉은 두건과 망사 드레스로 코스튬을 만들어 입고 나온 젊은 커플들과 함께 이날은 이방인이 아닌 로컬처럼 술잔을 나누며 축제를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