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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관전평(2) – 머니 폴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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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돈이다. 미국 대선 경선 과정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중 하나다. 돈을 누가 얼마나 많이 퍼붓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게 미국 정치의 속성 같다. 우리나라도 물론 예외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이야말로 ‘money politic’이 철저하게 지배하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공화당(GOP) 대선후보 경선에서 기세 등등하던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 개인적으로 보기엔 가장 ‘공화당스러운’, 그래서 내심 공화당 대선후보주자로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그가 1월31일 진행된 플로리다주 프라이머리에 이어 2월4일 네바다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나의 느낌으로는 색깔이 없는 그저그런 인물)에게 10%포인트 이상 격차로 졌다. 바로 직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프라이머리에서 롬니를 큰 표차로 눌렀던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다.

박빙의 승부를 벌이던 게임에서 깅그리치가 뒤쳐진 이유가 뭘까? TV에 등장하는 정치분석가들은 다양한 이유를 갖다댄다. 하원의장 시절 윤리규정을 위반한 것에서부터, 세 번의 결혼 과정에서 드러난 부도덕성,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Freddie mac)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혐의 등등….

하지만 그가 패배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며칠 전 점심 때 만난 존스홉킨스 SAIS 모 교수는 바로 ‘돈’ 때문이라고 했다. 그 교수 왈, “미국인들은 TV에 나오는 후보자들간의 디베이트나 정치 광고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롬니가 플로리다주 경선 전 200번 이상의 광고를 내보낸 데 비해 깅그리치는 10분의 1에도 못미쳤다. 바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정치가 ‘돈의 정치’였던 것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2008년 대선 과정을 지켜봤던 SAIS 한 교수는 당시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자의 선거자금 규모를 보고 일찍이 오바마가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돈의 힘이 여전히 작용하는 한 GOP의 경우, 개인적으론 아쉽지만, 롬니의 우세가 갈수록 확연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개인적으론, 롬니보다 깅그리치가 오는 8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지명되면 그 이후 진행될 오바마와의 선거전이 훨씬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롬니는 공화당 보수주의자로 보기엔 뭔가 색깔이 모호하고, 여러번의 디베이트 과정을 지켜본 바로는 결정적으로 논리도 약하다. 달변인 오바마와 붙으면 백전백패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깅그리치는 오랜 세월 정치인으로 단련된 과정에서 무장된 탄탄한 논리와 노회함이 오바마의 경쟁자로 나서기엔 손색이 없어 보인다.

후보자별 선거자금을 얼마나 모았는지가 궁금해 뉴스를 검색하다 보니, 확실히 선거자금 규모에서 롬니가 깅그리치를 월등히 앞선 것으로 나온다. 롬니가 2010년 한햇동안 모은 선거자금이 5600만 달러에 달한 데 비해 깅그리치는 불과 1000만 달러에 그쳤다. 롬니는 그중 상당부분을 사용하고 지난 1월11일 현재 1900만 달러가 남았다고 한다. 반면 깅그리치는 얼마가 남았는지 공개를 안하고 있지만, 대부분 소진하고 바닥이 났을 것이라는 게 뉴스 분석가들의 추정이었다.

권력이 있으면 돈이 모인다고,(물론 돈이 있으면 권력이 생긴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만) 깅그리치가 공화당의 정통 보수를 상징하고 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재정적 후원도 든든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은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오랜 정치 과정에서 공화당 내부에서 쌓여온 깅그리치의 ‘악명’이 상당한 이유로 작용한다고 한다. 하원의장 시절, 지나치게 강경한 노선으로 공화당 내에서 워낙 적을 많이 만든 것이 결정적인 약점인데,(정치는 조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조직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다는 게 깅그리치의 최대 약점) 일부에선 그의 사람관리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선거운동 초반, 그의 선거 참모진이 돌연 대거 그만둬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데, 주변 사람들조차 그가 권력을 잡을 경우 지나친 독선에 빠질 것을 우려한다고 한다. 하여튼 사람은 이미지 관리를 잘해야 하는 법이다.

GOP의 대선후보 경선이 롬니 우세로 굳어질 가능성이 커지자 오마바 선거 캠페인 측에서는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다고 한다. 어느 쪽으로든 오바마에 유리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롬니가 지명돼 나중에 오바마와 맞붙을 경우 깅그리치보다는 훨씬 상대하기가 수월하다는 게 민주당측 분석이라고 한다. 99%의 빈자와 1%의 부자가 미국 사회에 가장 큰 화두로 등장한 지금, 롬니가 2억 달러 이상의 엄청난 자산을 보유해 상위 0.01% 안에 들면서도 정작 세금은 샐러리맨들보다 낮은 비율로 냈다는 것이 두고두고 치명적인 약점으로 잡힐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돈에서도 오바마는 이미 승기를 잡고 있다. 오마바 캠페인 측의 공개 자료는 없지만, 언론은 그가 지난해 모은 선거자금이 최소 7400만 달러에서 최대 1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에게 선거자금을 갖다준 곳은 전미노조협회 등 진보단체도 있지만, 월가 IB들 뿐 아니라, 대기업, 부동산 회사, 헐리우드 큰 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제프리 삭스(콜럼비아대 교수) 같은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은 그래서, 오마바도 공화당 보수파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싸잡아 비판하기도 한다. 99%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말로는 하지만, 결국 1%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아쓸 경우 그것이 족쇄가 돼 1%에 이용당하는 정치로 전락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런 측면에서 역시 돈이 있는 곳으로 권력이 향한다는 말이 옳다.

사실 오바마의 하루 일과를 들춰보지 않았지만, 거의 절반 이상은 대통령의 임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선거자금 모으기 캠페인에 쏟아붇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며칠전 CNBC 뉴스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당시 보도를 요약하면, 오마바 대통령 부부가 최근 잇따라 워싱턴DC내 고급 호텔을 돌며 fundraising 행사를 열고 있는데, 하루동안에만 많게는 530만 달러를 한자리에서 모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St. Regis Hotel이라는 곳에서 열린 디너 파티에는 50명의 부자 지지자들이 모였는데, 이들의 1인당 입장 티켓 가격이 3만5800달러였다고 한다.
만약 깅그리치가 다시 뒷심을 발휘해 롬니와 2파전을 오래 유지할 경우에도 오마바한테는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럴 수록 GOP의 선거자금은 바닥날 것이고, 오바마는 나중에 본게임에서 큰 돈을 쓰지 않고도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꽃놀이패’란 말이 있는 데, 지금 오마바가 딱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다 아직은 빌빌대는 미국 경제지표마저 조금씩 좋아질 경우 오마바의 재선은 따놓은 당상 자리나 다름없다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