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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중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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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수 기간 거주지로 잡은 랄리(Raleigh)시는 노스캐롤라이나(NC)주의 주도(capital city)임에도 지하철은 물론 없고, 버스도 아주 가끔씩만 눈에 띄일 뿐이다. 택시 오가는 걸 보는 것도 드문 일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일을 보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새삼 실감하고 있다.

미국에 온지 한달도 채 안된 지난 8월 19일의 일이다. 마침 연수기관인 듀크대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을 안내받는 날이었다. 듀크 도서관의 유일한 한국인 사서인 구미리씨가 안내를 맡아주었다. 도서관 이용 안내가 시작되는 시각이 낮12시여서 랄리시의 한 교회(Highland UMC)에서 오전 9~12시에 진행되는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 수업 후반부는 어쩔 수 없이 빼먹었다. 같은 장소에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ESL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아내는 수업 끝난 뒤에 버스를 타고 집에 한번 가 보겠다며, 따라나서지 않았다.

아내한테서 연락이 온 건, 도서관 이용 안내가 미처 다 끝나지 않은 오후1시를 좀 넘어서였다. 버스를 타고 쇼핑센터인 ‘크랩트리 몰’에 온 뒤, 갈아타도 ‘월마트’ 근방까지 오는 버스 밖에 없단다.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집으로 가야 하는 데 이게 쉽지 않단다. 집으로 방향을 잡고 조금 걸으니, 자주 가보았던 대형슈퍼 ‘타깃(Target)’까지 왔는데 이곳에서부터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집까지는 2마일(3.2킬로미터) 정도이니, 걸어서 20~30분이면 닿을 수 있지만 차가 쌩쌩 오가는 대로만 있을 뿐 인도가 제대로 없어 도무지 걸어갈 수가 없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도서관 투어를 할 수 없이 중단하고 타깃까지 30분 가량 차를 몰고 가서 아내를 태워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버스를 타 본 아내한테서 들은 바, 한번 타는 데 드는 비용은 1달러란다. 거리가 아무리 멀더라도 기본적으로는 1달러이고, 1시간30분 안에 한번 갈아탈 경우 별도 요금을 물리지 않는단다. 버스 안에 설치된 박스에 현금 1달러를 넣으면, 티켓이 나오는 방식으로 요금을 지불한다. 갈아타는 버스에서 이 티겟을 제시하면 슬롯을 통해 X표시가 쳐져 더 이상 못쓰게 된다. 티켓은 1회용 말고 하루 단위(데일리), 주간단위(위클리)도 있어, 1회용보다는 좀 싸게 먹힌다고 한다. ESL 수업을 같이 듣는 남미나 아프리카 출신들 중에는 버스로 오가는 이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아내와 같은 팀에서 공부하는 엘살바도르 출신 청년 ‘마리오’가 그런 예다. 마리오는 크랩트리 몰에서 밤새 청소일을 한 뒤 버스를 타고 영어 공부를 하러 온다고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마땅치 않아 곤혹스러웠던 경우로 렌트카 반납 때를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사진을 박아넣은 정식 면허증이 우편으로 배달된 건,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한지 9일만인 8월20일이었다. 이날 곧바로 차량 등록소로 가서 등록절차를 마친 뒤 번호판을 받아와 자동차 뒤에 붙였다. 미국 오기 전에 미리 인수해놓았던 중고 자동차를 3주만에야 정식으로 몰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자동차 렌트 기간을 일주일 가량 늘려야 했다. 딜러를 통하지 않고 개인 간 거래를 한데 따른 사단이었다. 대신 인수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하니,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렌트카를 반납하기 위해선 렌트 회사 영업소가 있는 랄리-더램(RDU) 공항 근방까지 가야 하는데, 문제는 차를 반납한 뒤 돌아올 방법이 마땅치 않은 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번호판을 새로 단 ‘크라이슬러 닷지’를 내가, 렌터카는 아내가 몰고 렌트회사 영업소로 갔다. 사실, 이는 불법이었다. 렌트카는 나만 몰 수 있게 계약돼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닷지를 몰 수도 없다. 아직 미국 면허증을 따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렌트카 영업소로 가는 내내 아슬아슬하고 진땀이 났다. 아내가 한국 면허증을 딴지도 얼마 안됐을 뿐 아니라, 한동안 차를 몰아보지 않아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렌터카를 반납하고 돌아오긴 했지만, 가벼운 접촉사고라도 났다면 아주 난감했을 터였다.

개인 운행의 자동차 중심으로 생활이 이뤄지는 데 따른 불편(?)은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같다. 아이들은 학교 갈 때는 물론이고, 친구들과 만나 놀려고 해도 자동차를 모는 어른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번은 딸아이가 한국계인 크리스티나와 함께 스케이트장에 놀러간 일이 있었다. 크리스티나의 교회 친구들이 같이 어울린 자리였다. 다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미국화된 아이들이긴 해도 한국말을 조금씩 할 줄 알고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아이들끼리는 친근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스케이트장에 갈 때는 크리스티나 엄마가 아이들을 데려다줬고, 데려오는 일은 내가 맡기로 했다. 네비게이터로 미리 가는 길을 알아보니, 헉! 무려 25.1마일, 차로 37분 거리로 찍혀 나왔다. ‘101 Meadowland Dr. Hillsborough, NC’에 있는 ‘트리이앵글 스포츠 콤플렉스’라는 곳이었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든 생각은, 미국 아이들이 부모에게 훨씬 더 의존적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차 없이는 도무지 한발짝 움쭉달싹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학교 오가는 길이나, 친구들끼리 만나 스케이트장 한번 가는 일, 방과 후 활동 따위에서 부모들이 차로 데려다 주는 일은 필수다. 넓은 땅덩이 탓(?)에 차 없이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운전을 하기 전에는 모든 집 밖 활동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