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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 풋볼의 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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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Dawgs!”

“거기선 ‘Go Dawgs’ 한 마디만 할 줄 알면 돼.”

조지아대 연수를 먼저 다녀온 회사 선배가 조지아 생존법을 알려줬습니다. “Go Dawgs”는 조지아대 미식축구(이하 ‘풋볼’)팀 응원 구호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흘려 들었던 그 말을 다시 떠올리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조지아대 풋볼팀의 상징인 불독 조형물로 집마당을 장식하거나, 역시 조지아대 풋볼팀을 뜻하는 대문자 G 깃발을 자동차에 단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SEC(Southeastern Conference, 남동부 컨퍼런스) ‘게임 데이’, 그 중에서도 조지아대 불독스 경기가 있는 시간엔 애선스(Athens) 시내가 텅 빈다는 말도 있습니다. 집에서 TV 중계를 시청하든, 경기장을 찾아 이른바 ‘직관’을 하든, 모두 풋볼 경기를 보고 있어서랍니다.

사진 1. 애선스 인근의 집과 자동차, 상점은 온통 조지아 불독스의 상징물로 도배돼 있습니다.

학교는 학교대로 풋볼에 진심입니다. 조지아대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교 연혁을 확인해 봤습니다. 최근 5개 항목 가운데 4개가 1942년과 1980년, 2022년, 그리고 2023년에 풋볼팀이 전미 대학 정상에 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체육대학이 아니고 명색이 종합대학인데 이게 이 정도로 자랑스러워 할 일인 거구나, 말 그대로 문화 충격을 경험했습니다.

사진 2. 조지아대 홈페이지의 학교 연혁 소개는 풋볼팀의 우승 기록이나 다름없습니다.

호텔 요금이 비싸면 경기장에서 먼 데 묵으면 되지

조지아대가 자리잡은 애선스-클라크 카운티(Athens-Clarke County)는 조지아주의 159개 카운티 가운데 가장 면적이 작고, 인구도 12만 8,00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한 땅보다 넓은 조지아주 저쪽 끝에 사는 풋볼 팬들도 수시간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이 작은 카운티로 모여듭니다. 9만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풋볼 경기장, 샌포드 스타디움(Sanford Stadium)이 조지아대 캠퍼스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1년부터 지금까지 다섯 시즌 동안 조지아대가 패배한 경기는 6개에 불과합니다. 그러다 보니, 불독스의 활약을 눈앞에서 지켜 보려는 팬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샌포드 스타디움의 전석 매진 행진도 끝날 줄을 모릅니다. 하지만 먼 거리를 달려온 관람객이 경기 전후에 눈을 붙이고 한숨을 돌릴 만한 숙소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불독스 홈경기가 열리는 주말이면, 애선스 전체의 호텔 객실 2,600개가 꽉 차고, 에어비앤비 같은 단기 임대 숙소 1,000곳이 가동돼도 수요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입니다.

사진 3. 샌포드 스타디움 9만 3천여 석은 매 경기 조지아 홈 팬으로 붉게 물듭니다.

자연스레 숙박료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입니다. 게임이 열리는 주말, 애선스의 호텔 요금은 평일 평균의 몇 배가 되고, 빅 매치 때는 하룻밤에2,000달러를 넘기기도 합니다. 게임을 위해 체력을 비축해야 할 원정 팀 선수들조차 비싼 숙박료 탓에 경기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묵어야 합니다.

팬심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숙박료에 팬들은 여러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경기 일정이 나오는 즉시 숙소 예약에 나서고, 호텔에 체크인하는 대신 캠핑 카를 끌고 오기도 합니다. 애선스 시내에 머무는 것은 진작에 포기하고 1시간 남짓 거리 근교에 방을 잡는 경우도 많습니다. 응원하는 팀이 선전할수록 내가 쓰는 돈이 늘어나고 들이는 수고도 커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어쨌든 이들의 주말이 풋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듯합니다. 1)

인기와 돈, 아마추어리즘의 관계는?

엄청난 풋볼 팬덤은 대학의 수입원이 됩니다. 조지아대는 2024 회계연도에 방송 중계권과 입장권 판매 등으로 2억 4,1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대학 풋볼팀 감독들도 고액 연봉을 받습니다. 41년 만에 조지아대를 전국 챔피언에 올려 놓고 불독스 황금기를 이끄는 커비 스마트(Kirby Smart) 감독의 연봉은 자그마치 1,300만 달러로, 미국 대학 전체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필드를 뛰는 선수들은 어떤 보상을 받을까요? 전통적으로 학생 선수들은 아마추어라는 이유로 영리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말처럼, 선수들에게 운동과 학업이라는 두 가지 의무를 지워놓고 열정 페이만 강요하는 게 정당하냐는 문제 제기에 점점 힘이 실렸습니다.

결국, 2021년 연방대법원은 전미 대학스포츠협회(NCAA: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의 보상 제한 규정이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NCAA는 선수들이 제 3자로부터 이름, 이미지, 초상권(NIL: Name, Image, and Likeness)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습니다. 그 결과, 선수들이 기업 광고에 직접 출연하거나 소셜미디어에 홍보 콘텐츠를 올리고, 사인회 등을 개최해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2025년 11월 말 현재 NIL 가치가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선수는 오하이오 주립대의 와이드 리시버 제레미아 스미스(Jeremiah Smith)인데, NIL을 통해420만 달러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NCAA의 합의안도 2025년 6월 법원에서 승인됐습니다. 합의의 골자는 ‘수익 공유(revenue sharing)’로, 대학들이 스포츠를 통해 거둔 수익의 최대 22%를 선수들과 나누도록 허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학교가 학생 선수에게 직접 ‘급여’를 주는 제도가 탄생한 것입니다. 올 시즌 기준 2,050만 달러까지 선수들에게 지급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학생들은 학교와 연봉 협상을 하는 직원이 되고 대학 스포츠의 아마추어리즘은 생명을 다하는 걸까요? 또, 풋볼이나 농구 등 일부 ‘돈이 되는’ 스포츠가 아닌, 인기가 덜한 종목의 선수들은 수익 ‘공유’에서 소외될까요? 어떤 방향으로든, 수익 공유 제도가 미국 대학스포츠에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거란 전망엔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입니다.

샌포드 스타디움에서 ‘직관’해 보니

그렇다면, 조지아 주민들이 풋볼, 그 중에서도 대학 풋볼을 가히 종교처럼 여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깊고 진한 충성심의 연원을 더듬어 볼 요량으로 남편, 아이와 함께 불독스의 홈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엄격한 보안 규정 탓에 경기장엔 투명한 가방만 갖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가방을 구입했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은 더 있었습니다. 열정적이다 못해 치열한 응원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면 팀의 상징색인 붉은색이나 검은색 옷을 입어야 하고, 오랜 시간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는 게 불편할 수 있으니 방석을 구비하는 것도 권장됩니다. 세금을 제외하고도 78.92달러가 순식간에 빠져나갔습니다. 물론, 티켓 값은 별도입니다.

사진 4. 풋볼 경기 관람을 위해 3인 가족이 산 물품들. 세금을 빼고도 80달러 가까이 지출했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풋볼 규칙을 ‘초치기’ 한 뒤, 설레는 마음으로 샌포드 스타디움에 입장했습니다. 급히 외운 응원 구호를 외치고, 마칭 밴드 ‘레드코트’의 연주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경기는 어땠냐고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습니다. 노트북 컴퓨터 화면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탁 트인 스타디움에선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패스에 경탄하고, 엔드 존까지 번개처럼 이뤄지는 전력 질주에 환호했습니다. 아메리칸 들소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선수들이 몸으로 벽을 쌓아 상대편 공격을 제지하는 장면은 장엄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육박전 도중에 쓰러진 선수가 필드에 누워 괴로워하는 모습엔 엄마의 마음으로 안타까워했고요.

그날 이후, 저는 매주 토요일 대학 풋볼 경기를 찾아 보고 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 역시, 경기 자체의 재미와, 젊음이 치열하게 맞부딪칠 때 전해지는 짜릿함 때문에 대학 풋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지역 연고 대학 팀을 응원하면서 느끼는 애향심은 덤이겠지요.

  1. The Atlanta Journal-Constitution의 2025년 9월 30일 기사”Beyond the Hedges: UGA football fans try to navigate Athens’ hotel crunch”를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