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없이 생활 하기 어려운 미국에서,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하지 않는 한 뉴욕 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자동차 없는 여행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미국에 올 때 몇 몇 지인들로부터 “꼭 한번 가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진작 미국 최남단에 자리잡은 키웨스트 여행에 목말라 하면서도, 내내 고민하고 궁리하던 까닭입니다. 한국에서 `장롱면허’ 소지자였던 저는 미국에 와서 차를 구입하긴 했지만, 여전히 고속도로 주행에는 포비아에 가까운 공포증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던 터라 거주지인 워싱턴 DC에서 차로 15시간 이상 떨어져 있는 키웨스트를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은 엄두조차 내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땅끝 마을’, `미국의 최남단’이라는 어감이 주는 낭만적 정취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결국 용기를 내서 차 없이 한 번 가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불혹을 앞둔 이 나이에 대학생 처럼 배낭 하나 매고 그야말로 `나홀로 뚜벅이 여행’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미국 본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키웨스트는 통상 테마파크로 유명한 올랜도나 마애애미 등 플로리다 여행을 할 때 거쳐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변가와 몇몇 유명 관광지들만 둘러본다면 하루면 충분할 정도로 섬 자체가 매우 조그맣기 때문이지요. 동서로 약 5.5㎞, 남북 약 2.5㎞밖에 안되는 작은 섬으로, 섬의 서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메인 스트리트인 듀발 스트리트(Duval St.)를 `종단’하는데 넉넉잡아 걸어서 30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키웨스트의 규모는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표지판은 분명히 `International airport’라고 써져 있는데, 그야말로 코딱지 만했습니다. 시골의 버스 터미널 같은 느낌이랄까. 키웨스트에서 며칠간 보낸 뒤 DC로 돌아오기 위해 잡아탄 공항행 택시 기사는 “공항으로 가달라”는 제 말에 “어느 공항으로 모실까요”(당연히 너무 작은 동네라 공항은 한 개 밖에 없는데 몇 개나 되는 것인양..) , “어느 터미널에 내려드릴까요”(공항이 너무 작아서 당연히 터미널도 하나인데 여러개 있는 것인양) 이라는 조크를 던지며 “손님들한테 매일 이런 농담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키웨스트 중심가로 들어가면 듀발 스트리트를 따라 각종 레스토랑과 바, 상점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고, 듀발 스트리트 북쪽 끝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일몰 광경으로 유명한 말로리 광장(Mallory Square)이 나옵니다. 듀발 스트리트에서 서쪽으로 한블록 떨어진 화이트헤드 스트리트(Whitehead St.)에는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생전에 살았던 집과 등대로 유명한 등대(라이트 하우스) 뮤지엄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섬 자체가 워낙 아담한데다, 대부분 볼 거리들이 듀발 스트리트 주변에에 집중돼 있어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또한 택시 카풀이 워낙 잘돼 있어, 공항에 내리면 청원 경찰들이 알아서 관광객들을 몇명씩 짝지어 택시에 태워줍니다. 1인당 팁 없이 8 달러만 내면 섬 안에서 어디든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다 줍니다.
카웨스트에는 여느 도시들과 달리 블록마다 세워진 전신주 밑 부분에 페인트로 거리 이름이 표시돼 있습니다. `길치’인 저 조차도 길을 찾기 수월하더군요. 자동차 여행 보다는 이동하는데 있어 다소 불편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도 하나 들고 거리 표시들을 따라가며 `답사’하듯 골목골목을 천천히 음미하는 묘미도 제법 쏠쏠했습니다.
실제로 키웨스트는 도보여행자와 자전거 여행족들의 천국이입니다. 거리마다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물결을 이뤘고, 자전거, 스쿠터 대여점도 쉽사리 찾아 볼 수 있습니다. Conch Tour Train, Old Town Trolley Tour 등 증기기관차 모양의 투어 차량-차량 운전자가 여행지별 설명도 함께 진행하는 가이드 역할도 겸합니다-의 종류도 워낙 많아 이를 이용하는 것도 섬의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다만, 플로리다 반도 남단에서 바다를 가로지르며 뻗어있는 US-1 도로를 따라 키웨스트까지 이어진 다리들과 그 양옆으로 펼쳐진 섬, 바다의 멋진 풍경을 만끽하는 것도 키웨스트 차량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맛으로 꼽히는데, 저의 경우 키웨스트까지 비행기로 이동하다보니 이를 누리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참고로, 차 없이 가는 경우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를 왕복 운행하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1. 미국 속의 이국(異國)..”Conch Republic으로 불러달라”
올랜도에서 갈아탄 비행기 안에서 깜박 졸다 눈을 떴을 때 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친 투명한 에메랄드색 바다 광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풍경에 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 갑작스런 `쿵’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비행기가 연착륙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 때 가슴을 쓸어내리던 저를 의아하게 했던 것은 승객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놀라거나 불평을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Bumpy landing!”이라며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것이었습니다. 키웨스트 여행에 대한 설레임 때문인지, 모두들 비행기의 `bumpy landing’조차도 축제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습니다.
키웨스트 공항 건물에 붙여진 “ Welcome to Conch Republic”간판
키웨스트 공항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공항 건물 위로 큼지막하게 내걸린 “Welcome to Conch Republic”이라는 문구 였습니다. conch는 소라,고동과의 일종으로 키웨스트의 대표적 특산물 중 하나입니다. 동시에 속어로 바하마 제도에서 이 곳으로 이민 온 미국인들의 후손을 일컫는 말로, 키웨스트 주민들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키웨스트가 `Conch Republic’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30년 전인 1982년입니다. 그해 4월 23일 당시 키웨스트 시장이었던 데니스 워들로우(Dennis Wardlow)가 Conch Republic라는 이름으로 미국 본토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쿠바 등 중남미로부터의 마약 밀수를 비롯한 각종 범죄 방지를 명목으로 미국 본토 국경지대 순찰대가 키웨스트에서 플로리아 반도로 연결되는 US-1 도로를 봉쇄, 본토를 출입하는 모든 키웨스트인을 상대로 검문을 실시하며 일일이 시민증 보유 여부를 검사하기 시작한데 따른 항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분리독립 시도는 상징적 차원에서 종결됐지만, 키웨스트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스스로 `Conch Republic’의 시민임을 자처합니다. 실제로 키웨스트 번화가 뿐 아니라 주택가에서도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태양이 그려져 있는 Conch Republic 국기가 곳곳에서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키웨스트에서 유명한 타올 상점인 듀발 스트리트 806번지 가게에도 이 국기 모양의 대형 타올이 `자랑스럽게’ 유리벽에 디스플레이돼 있습니다. 제가 탔던 Conch Tour Train의 운전사였던 대니도 “바보 처럼 보이겠지만, 우리는 Conch Republic 시민으로 불리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It looks goofy, but we’re proud of it) 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미국에 속해 있지만, 미국이 아닌 독립국을 자처하는 곳. 그도 그럴 것이 키웨스트는 미국 본토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이는 비단 1년 내내 한여름 기온 속에 거리거리, 골목골목 높이 솟은 야자수 나무들과 담장을 수놓은 이름 모를 형형색색의 꽃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싱그러운 남국의 향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쿠바와 남미의 영향을 받아 문화적으로도 미국적인 것과 비(非) 미국적인 것이 한데 뒤엉켜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피델 카스트로 집권 이전인 50년대 중반 쿠바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하면서 한 때 쿠바 출신 비율이 키웨스트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쿠바와 히스패닉계를 포함한 비율이 10% 정도로 급감하긴 했다고 합니다만, 여전히 쿠바의 흔적은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말로리 광장 주변을 비롯해 싱싱한 해산물 요리 등으로 유명한 쿠바 레스토랑과 쿠바산 시가 가게들이 드물지 않게 둥지를 틀고 있으며 말로리 광장 주변에 위치한 `Cayo Hueso y Havana Historeum’이란 건물에는 쿠바 레스토랑, 시가 가게와 함께 쿠바 이민 1.5세인 한 화가가 50년대 당시의 키웨스트내 쿠바인 거리들을 재현한 벽화가 보는 이들의 눈을 끌어당깁니다.
듀발 스트리트 한복판에 서 있는 고유 건축양식의 San Carlos 뮤지엄은 키웨스트에 살고 있는 쿠바 출신 이민자들의 자존심과 같은 건물입니다. 쿠바 독립운동의 역사와 쿠바 건축물 등이 전시된 이 건물은, 쿠바 독립의 아버지인 호세 마르티(Hose Marti)가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기거했던 곳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몇차례의 화재와 허리케인을 겪으면서도 중심가 심장에 다시 세워져 건재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전시관 한 구석에는 “San Carlos, 피닉스처럼 부활하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시에, 건물 외벽에 붙여진 “San Carlos 재단의 재건을 위해 모금운동에 참여해달라. 지금 사정이 많이 어렵다”는 광고 문구는 쿠바 출신 키웨스트인들이 걸어와야 했던 쇠락의 길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했지만요..
이 뮤지엄에서 일하는 쿠바 이민 1.5세 할아버지는 “키웨스트의 slow-down, easy-going 스타일도 쿠바의 영향”이라고 촌평했습니다. 실제 낭만과 여유로움, 개방적인 자유분방함, 정열은 키웨스트가 관광객들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기념품‘이기도 합니다. 느림과 여유의 미학이 그대로 실현되는 곳이라고나 할까요. 앞서 키웨스트가 도보여행자들과 자전거족의 천국이라고 잠깐 언급했지만, 자동차들은 언제나 길거리를 가득 메운 이들을 피해 빨리 달리는 법이 없습니다. 대도시 같으면 벌써 몇 번씩 경적을 울릴법도 하건만, 자동차 운전자들도 서행을 당연히 여기는 듯 했습니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바퀴를 움직입니다. 주요 해변가 주변의 도로에는 아예 `15마일 속도제한’ 표지판이 붙어있기도 합니다.
번화가를 중심으로 하루종일 음악과, 그 풍류에 취한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 작은 섬이 부산함과 번잡함만이 아닌 평온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서로 다른 것들의 이질적이지만 조화로운 공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섬 자체가 다인종, 다문화로 이뤄졌을 뿐 아니라 번화가에서 한블록만 들어가면 인적이 드문, 고즈넉하고 한적하기만 주택가 풍경이 펼쳐집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도심과 전원의 절묘한 조화인 셈이지요.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어디서나 목격되는 닭들의 행진이었습니다. 시골마을도 아닌데, 닭들이 너무 자주 눈에 띄는게 약간은 의아해서 한 주민에게 물어보니 “그냥 자생적으로 자라난 야생닭들이다. 어차피 주인 없는 닭이니 잡아먹고 싶으면 잡아먹어라. 아무도 뭐라고 안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번화가 한 가운데서 하루종일 울려퍼지는 음악과 이에 질세라 그 사이로 쉴새 없이 들려오는 `꼬끼오’ 닭울음소리가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는 곳이 이 곳이었습니다.
길거리 닭들…
높은 건물도 좀처럼 없습니다. 제가 섬 전체를 샅샅이 훑은 것은 아니지만,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높은 것은 육안으로 보기에 6층짜리인 La Concha 호텔이었습니다. 아 참, 앞에서 말한 conch 얘기로 잠깐 돌아가면 키웨스트에는 `conch fritter’라는 튀김요리가 유명합니다. 다진 conch와 각종 야채를 밀가루 반죽에 버무린 뒤 튀김가루에 묻혀 튀겨낸 고로케 같은 것인데, 말로리 광장 주변 항구의 음식점들에서 기본 메뉴로 팔고, 길거리 음식으로도 유명합니다. 뭐 먹어보니 맛은 별로.. conch fritter와 함께 키라임(연둣빛 레몬 처럼 생긴 과일) 파이도 키웨스트의 명물로 꼽힙니다.
2. 바다
바다에는 객체로서 바라보는 바다와 주체로서 뛰어드는 바다, 이 두 종류가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키웨스트는 바다가 주는 이 두 가지 선물 모두를 만끽하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말로리 광장은 석양이 지는 일몰 광경 감상 장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오후 4시쯤 이 곳을 찾아 떡하니 자리를 잡고 무작정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노을로 물든 석양 무렵의 하늘을 바라보며 그 스산하고 아름다운 광경에 경탄을 자아낸 적은 여러번 있었지만, 하늘 높이 떠있던 해가 뚝 하고 지기까지 몇 시간에 걸쳐 집중해 지켜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광장에서 바로 바다로 이어진 들머리에 무작정 그렇게 한시간 정도 앉아있다가 어느새 제 주변과 뒤편으로 발디딜틈 없이 광장을 메운 인파에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들 지는 해를 보기 위해 그렇게 하나둘 소리 없이 모여든 것이었습니다.
멜로리 광장에서 바라본 일몰 사진
드디어 일몰이 시작됩니다. 누가 빨리 지라고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쫓기는 도망자처럼 해가 뚝뚝뚝 떨어지기 합니다. 어린아이의 상기된 얼굴처럼 시뻘겋던 둥근 해가 갑자기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췄을 때, 저도 모르게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아 해가 지는 걸 바라보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조금 과장한다면 갑자기 이별 선언을 한 연인 앞에서 드는 당황함 비슷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때 시각, 오후 6시8분 이었습니다. 사람들 모두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인 듯 박수 갈채와 함께 아쉬운 탄성을 자아냅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고, 일면식 하나 없는 우리는, 지는 해 앞에서 모두 그렇게 하나가 됐습니다.
곧이어 광장에서는 해를 떠나보낸 의식이나 치르는 듯, 한바탕 축제가 벌어집니다. 높이가 장대 만한 자전거 위에 올라타고 아슬아슬 춤을 추는 남자, 횃불을 입에 넣고 묘기를 하는 남자, 쇠사슬로 온 몸을 칭칭 감고 이내 풀어제끼는 남자, 갖가지 원맨쇼에 열광하면서, 사람들은 져버린 해로 허전한 마음을 그렇게 달랬습니다. 광장 한구석에서는 통기타에 맞춰 흘러간 미국가요를 끊임없이 불러대는 중년의 배나온 거리의 가수와, 그 선율에 맞춰 conch에 입을 대고 피리 불듯 부는 conch fritter 포장마차 주인 아저씨, 해 질 무렵 하나둘씩 좌판을 깔고 저녁 대목 장사를 시작한 거리의 상인들이 한데 뒤엉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말로리 광장이 일몰로 유명한 곳이라면, 화이트헤드 스트리트 남쪽 끝에 있는 Southernmost Post는 미국 최남단 지점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진짜 최남단 지점은 이 곳에 이웃한 해군기지 안에 있다고 하지만, 이 곳의 상징성 때문에 키웨스트에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러 `인증샷’을 찍고 가는 곳입니다. 쿠바로부터 90마일 떨어져 있다는 이 곳의 문구는, 적성국 관계인 쿠바와 미국의 가깝고도 먼 `거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키웨스트에는 어느 거리로 접어들더라도 이어진 길을 따라 끝까지 따라가면 바다가 나옵니다. 일몰의 명소인 말로리 광장 오른편으로는 배 선착장과 조그만 항구가 자리잡고 있고, 곳곳에 크고 작은 해변가와 해수욕장들이 야자수 나무들을 배경으로, 안이 투명하게 비치는 맑은 비취색을 자랑하며 관광객들을 유혹합니다.
제가 갔던 곳은 포트 재커리 테일러 주립공원이라는 곳입니다. 산호가 부서져 생긴 모래사장으로 키웨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치라는 여행 안내 책자를 보고 찾았습니다. 큰 도로에서 20분 정도로 도보로 들어가면 1800년대에 미국 국경지대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요새가 나오고 그 뒤편으로 멋진 바다가 펼쳐집니다. 한가하게 해수욕하는 사람들도 바다 풍경을 아름답게 수놓습니다. 요새 옆 풀밭에서는 도마뱀, 이구아나도 스르르 지나다닙니다.
물론 키웨스트는 각종 해양스포츠도 즐기는 인파로도 만원을 이룹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물을 무서워해서 용기를 내지 않았지만.. 저는 대신 바다 밑 식물과 물고기들을 배 바닥면의 유리를 통해 구경하고, 일몰 광경도 배에서 구경하는 작은 유람선인 `Glass Bottom Boat’라는 것을 탔는데, 제가 운이 없었는지 바다밑 광경이 그다지 별 게 없어 다소 실망스럽긴 했습니다. 참고로 각종 해양스포츠를 예약하는 매점들이 몇 블록을 멀다하고 있는데다, 일부 종목의 경우 현지 브랜드별로 가격 차이도 있기 때문에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것 보다는 현지에 와서 여러 상품 특성과 가격을 비교해보고 고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키웨스트를 사랑한 사람들
작은 섬 키웨스트에는 생전에 이 곳을 사랑하던 유명 인사들의 흔적이 구석구석 배어 있었습니다. 대표적 사례는 단연 어니스트 헤밍웨이입니다. 야자수 나무들로 둘러싸인 콜로니얼풍의 노란색 2층집인 이 집은 헤밍웨이(1899-1961)가 1931년부터 8년 동안 살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밖에서 보기엔 그렇게 특별해 보이진 않습니다. 헤밍웨이의 집을 둘러보면서 저의 눈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고양이들이었습니다.
생전에 유독 고양이를 좋아했던 그가 기르던 여섯 발가락 고양이들의 후손들이 아직도 이 집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는 여행안내서를 통해 익히 읽고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많은 고양이가 있을 줄이야.. 처음에 이 집의 안내인이 헤밍웨이 침실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프랜시스란 고양이를 소개해줄 때만 해도, 그리고 그 뒤로 몇 마리의 고양이를 더 발견했을 때까지만 해도 쉴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으나 집안을 둘러볼 수록 고양이 수가 너무 많아 고양이 사진 찍는 일을 그만뒀습니다.
집안 곳곳에 고양이 집이 있고, 집 뒤편으로는 닭장 처럼 아예 수십개의 고양이 집이 몇 층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안내인에게 물어보니 지금 현재 총 44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남국의 더운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길들여진 것인지, 대부분의 고양이는 자고 있거나 축 늘어진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 생물인지, 정물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습니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는 아예 `고양이 공동묘지’라는 푯말과 함께 그동안 이 집에서 죽어간 고양이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마를린 몬로, 마크 트웨인, 제임스 조이스, 에밀리 디킨스, 파블로 피카소.. 묘비에 새겨진 고양이들은 한결같이 유명인사들의 이름을 따라 붙여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프랜시스는 예외적으로 2004년 9월 플로리다를 덮친 허리케인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경우라고 하네요.
헤밍웨이 생가에 있는 고양이 공동묘지
헤밍웨이의 생가 만큼이나 헤밍웨이 때문에 유명해진 곳은 중심가인 듀발 스트리트에 있는 `Sloppy Joe’s Bar’라는 이름의 술집 입니다. 헤밍웨이가 생전에 즐겨찾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 덕에 키웨스트의 대표적인 명소가 된 이 곳에는 아침부터 새벽 까지 생음악과 함께 술마시고 노래하는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벽 사방으로 붙여져 있는 헤밍웨이 사진과 관련 그림 등 그의 자취들이 흠씬 묻어있는 흔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숨결이 아직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저 골목 어디에선가 허연 수염의 헤밍웨이가 금방이라도 나타나 바 안으로 걸어들어올 것 같은 착각 마저 듭니다. 이 곳 메뉴로는 슬로피 조 샌드위치라고, 칠리소스에 버무린 다진 쇠고기로 만든 버거 같은 것인데, 뭐 그다지 맛있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색다른 맛이었습니다.
아무런 표지판도 없는 테네시 윌리엄스 집
헤밍웨이 만큼은 아니더라도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유리 동물원’,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등의 연극으로 유명한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가 세상을 뜰 때까지 살았던 집도 키웨스트에 있습니다. 대학교 때 테네시 윌리엄스 연극을 몇 편 봤던 기억을 더듬으며, 인터넷에서 찾은 주소 쪽지를 들고 그의 집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중심가에서는 한참 벗어난 곳이었습니다.
주소지(1431 Duncan St.)에 다다랐을 때, 야자수 나무들과 진홍색 꽃들로 뒤덮인, 평범하면서도 아담한 집 한 채가 저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표지판이 없어 난감해졌습니다. 여기가 맞는 건지 아닌건지 물어보고 싶어도 인적 없는 주택가라 개미 새끼 한마리 보이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운좋게 두 명의 행인을 만났으나 둘다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 동네 주민들인데, 테네시 윌리엄스의 집이 어딘지 모른다며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도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을 때, 문이 열리고 중년의 여주인이 나왔습니다. 여주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사정인즉슨, 이 집이 테네시 윌리엄스가 생전에 소유하고 있던 집은 맞으나, 그의 사후에 개인 소유로 계속 유지하려는 그의 형제들과 공공 장소로 해서 일반인에게 공개하려는 극작가협회 간에 법적 분쟁이 벌어졌고, 그 뒤로 한번도 이 집은 일반인에게 공개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유물로 인정받으면서 이 집은 계속 그와는 상관없는 타인들의 손으로 넘겨졌고, 그 여주인도 몇 년 전 집을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테네시 윌리엄스 집이다는 것입니다. 여주인은 “내가 운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런 표지판도 문패도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던 것입니다. 사정을 듣고 보니 이해는 갔지만, 그를 기억하는 후세대의 입장에선 아쉬움도 느껴졌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테네시 윌리엄스의 집을 다녀온 분이라면, 한국 채색화의 거장인 화가 천경자 선생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집’, `테네시 윌리엄스의 집’ 그림을 다시 한번 찾아보는 것도 자그만 재미일 듯 합니다. 야자수 나무들에 둘러싸인 고양이들과, 역시 야자수 나무들에 파묻힌 집이 그려진 화폭과 실제 풍경들이 절묘하게 오버랩됩니다.
이들 문인과 함께 키웨스트와 오랜 인연을 맺었던 대표적 인사는 미국의 제33대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1884-1972)입니다. 말로리 광장에서 남쪽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Truman’s Little White House는, 트루먼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키웨스트에 올 때마다 머물렀던 곳입니다. 그는 재임 기간인 1945-1953년 사이에 16번이나 키웨스트를 찾았고, 이 곳에서 총 175일간 머물렀다고 하네요. 거실과 침실, 사무실 등의 방을 돌며 꼼꼼히 소개하는 집 안내인의 말 한마디한마디에는 키웨스트를 즐겨 찾았던 미국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담뿍 묻어있었습니다. 집안에서 구경했던 것 중에서는 거실에 자리잡은 포커 테이블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포커 마니아였던 트루먼은 밤마다 포커를 쳤지만-돈내기는 하지 않았답니다-도박을 금지하던 미국 정부 방침을 스스로 거슬렀다는 스캔들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 포커 친 흔적을 말끔히 없앨 수 있도록, 목재로 된 `탑 테이블‘(뚜껑처럼 본 테이블을 덮도록 돼 있음)을 직접 설계했다고 합니다.
훗날 콜린 파월 전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 2001년 아제르바이잔 정부 등과 진행된 Peace Summit을 바로 이 장소에서 열면서 이 테이블을 협상 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테이블을 비롯해 가구와 계단 등 이 집의 상당부분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집 안내인 아줌마는 “역사는 생물이며 역사에 대한 평가도 시간에 따라 변한다” 면서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항상 꼴찌 언저리를 맴돌던 트루먼이 최근 몇 년전부터 탑 5위안에 랭크 됐다는 점을 들어가며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이 리틀 화이트 하우스의 계단을 밟은 전직 대통령은 트루먼과 아이젠 하워, 케네디, 클린턴, 카터 등 7명이다. 조만간 8-9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안내인의 관광 안내 마무리말에는 키웨스트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이 엿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