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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맥도날드 케첩 하나 때문에… 집안 냉장고 다 뒤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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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마 한국이었으면 언론도 시민단체도 분명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맥도날드 미니 케첩에 아무런 날짜 표기가 없다는 것.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에서 받은 케첩에는 유통기한도, 소비기한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한국 소비자의 의심이 미국 소비자보다 더 강한 편일까? 펄떡펄떡 뛰는 활어를 눈앞에서 썰어줘야 안심하고 먹는 한국인의 심리일까? 3년 묵은 케첩인가. 5년 묵은 케첩일 수도 있는 걸 대체 뭘 믿고 먹으라는 건지, 맥도날드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림 1 – 맥도날드 미니 케첩
그림 2 – 제조일자를 알 수 없는 맥도날드 소스들

시간이 지나면서 맥도날드뿐 아니라 각종 패스트푸드점에서 받은 소스가 집에 쌓이기 시작했다. 1년이라는 시한부 미국 생활을 하다 보니 작은 소스라도 일단 챙겨놓고 보는 본능이 발동하는 것 같다. 청설모가 뒷마당 곳곳에 땅콩 숨기듯, 집에 소스가 쌓이면서 맥도날드 케첩의 비교 대상이 생겼다. 그러면서 이건 맥도날드만의 문제도, 케첩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인즈 케첩에도, 마요네즈에도, 야구장 핫도그 코너에 있던 새콤한 미니 렐리시에도 그들의 생년월일은 적혀 있지 않았다. 참으로 황당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식품업체를 절대 신뢰하는가?

그림 3 – 미국의 미니 소스들, 하나같이 날짜 표기가 없다

언제 생산한 케첩인지, 언제 포장한 마요네즈인지, 지금 렐리시를 먹어도 되는 상태인지, 소비자는 대체 어떻게 판단하라는 말인가. 이 미니 케첩을 아이 도시락용 핫도그에도 같이 넣어주고 있는데 말이다. 잘 상하지 않는 소스들이라고 하지만 갓 미국에 온 한국인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막상 케첩을 뜯었는데 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아이는 그걸 학교에서 혼자 알아챌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우리 아이는 ‘장금이’가 아니다. 아이가 아니어도 혀가 무딘 성인이라면 변질된 소스를 먹기 딱 좋은 나라가 미국 같았다.

미국 생활이 누적되며 황당함은 더 증폭되었다. 이게 비단 미니 소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광범위한 식품 규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코스트코에 진열된 실온 보관 팬케이크에도 아무런 날짜 표기가 없었다. ‘진짜 이래도 되나’ 싶어서, 팬케이크 수십 개가 담긴 대형 박스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이 제품의 생산과 관련한 어떠한 숫자나 문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맛은 좋은 코스트코 팬케이크. 자꾸 손이 가는 팬케이크. 며칠 뒤 다시 구입할 때가 되어서야 팬케이크 겉포장에서 ‘12/17’이라고 적힌 작은 스티커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유통기한인지, 소비기한인지, 일언반구의 부연 설명도 없는 불친절한 표기였다.

그림 3 – 코스트코 미니 팬케이크에 기재된 ‘12/17’

코스트코의 문제인지, 팬케이크 생산업체의 문제인지, 미국 식품의 표기 정책이 원래 이런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알고 보니 미국에선 영아용 식품을 제외하고 유통기한과 관련해 연방 정부 차원의 통일적인 표기 기준이 없었다. 유통기한 혹은 소비기한 적시를 식품 제조업체와 판매업체에 자발적으로 맡긴다는 뜻이다. 다만 소비자로선 유통기한인지 소비기한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어서, 미국 식품안전검사국(Food Safety and Inspection Service, FSIS)은 가급적 ‘Best if Used By’ 표기를 사용하라는 지침을 2019년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식품에서 ‘Best if Used By’ 표기는 업체 자율일 뿐이다.

그림 5 – 모범적인 “BEST IF USED BY” 식품 표기

업체 자율이라고? 미국의 식품 표기 규정을 확인한 뒤부터 갑자기 집안 냉장고 식재료가 불안해졌다. 미국 식품에 대한 불신의 싹이 튼 것이다. 미국 와서 별다른 생각 없이 구입한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스타벅스 캔 커피, 참깨소스, 하인즈 케첩, 미국판 풀무원 팟타이를 모두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일일이 확인해 보니, “Best if Used By” 표현을 정확하게 사용한 업체도 있었지만, 소비기한으로 추정되는 날짜만 달랑 인쇄된 식품들도 섞여 있었다. 업체 자율이라는데 날짜라도 적어준 게 어디냐, 감사함과 함께 안도감이 들었다. 소포장 된 미니 소스들은 여전히 복불복이지 않나.

그림 6 – 순대 양념소금에도 표기된 ‘소비기한’

우리나라 소비자는 이런 복불복, 업체 자율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당장 비판 기사가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초부터 미국처럼 식품의 ‘소비기한’을 기재하도록 의무화 되었다. 식품 제조업자는 유통기한을 표시하지 않으면 식약처 행정처분을 받았던 것처럼 ‘소비기한’ 또한 사실대로 정확히 기재해야 한다. 소용량 식품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가져 온 미니 케첩, 순대 양념소금, 고소한 참기름, 미니 간장을 꺼내 보니 예외 없이 소비기한이 적혀 있다. 소비자로서 마음이 놓이는 숫자다. 상할 우려가 낮은 식품인 것이 사실이고, 하나씩 작게 포장해 공기 접촉도 차단했다고 하지만, 식품 안전의 룰은 소비자 편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