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두번째로 미국 기자와 현장취재 동행을 했다.
이번에 동행하게된 기자는 여기자다.
험하다는 사회부에서 나름 내공을 쌓았다는 내가 보기에도 눈빛에서부터 강렬한 포스가 뿜어져나오는 여기자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할까? 하루 전 만났던 댄과는 완전히 다른, 당찬 여기자의 카리스마와 힘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깡마르면서도 전투력이 강한 여기자다!
이름은 아만다 램(Amanda Lamb). 우리 나이로 46살.
10살과 7살 두딸을 가진 주부이자, 뉴스리포터 경력만 20년이 넘은 베테랑 여기자다.
아만다는 특히 남성 기자들도 힘들어한다는 경찰서 사건만 주로 맡아 왔다고 한다.
아만다는 1989년에 펜실베니아의 한 로컬방송국에서 방송기자로 출발해 1994년 네번째 방송사로 WRAL로 옮겨왔다. WRAL에서만 17년째 일하고 있으니, 이 바닥의 터줏대감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좋은 경력이 인정되면 방송사를 옮길 때마다 연봉이 쑥쑥 올라간다.
WRAL이 로컬 방송국으로서는 워낙 평판이 좋은 방송인 만큼, 아만다의 경우 훨씬 더 나은 조건으로 진작에 더 큰 방송사로 갈 수 있었을텐데, 왜 옮기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노스캐롤라이나 랠리가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물가도 저렴하고, 살기도 좋은데다가, 남편 직장과 아이들 교육 때문에도 옮기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서론이 길었다.
아침에 뉴스룸에서 아만다를 만나 뒤, 카메라 기자와 함께 곧장 취재현장으로 출발했다. 당초 일정은 며칠 전 발생한 살인사건과 관련한 기획취재였다.
그런데 차량으로 이동중에 큰 사거리에 나와있는 소방차들을 보게 됐다. 아만다는 역시 타고난 사회부 민완기자였다. 잠시 창문을 열어 주위를 살피더니 갑자기 어디선가 가스 냄새가 난다며, 차를 세우게 했다.
그리고 소방서와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취재를 하더니, 근처 지하 가스관이 새는 바람에 소방차들이 출동했다면서, 곧바로 회사에 보고를 했다. 아니다 다를까, 잠시 뒤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차가 다닐 수 없도록 주변 도로를 통제했다.
당시 시간은 오전 10시쯤. 아만다는 가스가 샌 지점이 랠리시 주변에서 시내 다운타운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면서 당장 뉴스 아이템을 바꿔서 취재를 하겠다고 했다. 회사에서도 OK!
이어 20분쯤 뒤에 위성 중계차량이 현장에 도착했고, 11시쯤 긴급 뉴스속보로 현장상황을 전했다.
바로 앞글에서 방송기자인 댄의 경우 ‘블랙베리’를 이용해 뉴스기사를 보면서 생방송을 했다고 했는데, 아만다는 취재수첩에 주요 기사 내용들을 요약해서 적은 뒤, 이것을 중간중간 봐가면서 생방송을 했다.
역시 생방송은 능숙하게 막힘없이 아주 잘했다. 또 이번 생방송때도 뉴스 화면 편집은 카메라 기자가 현장에서 노트북을 활용해 편집을 한 뒤, 곧바로 무선으로 전송했다.
우리 나라라면 인명피해가 없는 상황에서 뉴스속보까지 내보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곳에서는 이만한 뉴스도 속보로 내보낼 만한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아만다가 생방송을 하고 난 뒤, 경쟁 방송사들도 곧바로 기자들과 중계차량을 현장에 내보냈다.
경쟁 방송사 기자들이 모두 생방송을 하는 장면이다. 모두 여기자들이다.
여기 기자들은 도로에서 생방송을 할때는 언제나 안전을 위해 야광색 조끼를 걸친다고 한다. 세 여기자 가운데 노란색 조끼를 걸친 여기자는 로컬 NBC 방송사 여기자다. 임신 6-7개월은 되보일 정도로 배가 불룩하게 나왔는데도 현장에 나와 생방송을 했다. 옆에 있는 여기자는 ABC 방송 로컬뉴스 여기자다. 급하게 나왔는지 신발이 재미있다.
11시반 쯤엔 소방서 간부가 나와서 사고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브리핑을 했다. 브리핑을 받고, 질문을 하는 것은 우리와 똑같았다. 다만, 소방서측의 언론대응이 아주 신속했고, 방송 인터뷰에 아주 능숙하다는 점이 달랐다.
가스 누출 사고는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오후 5시쯤 복구가 모두 끝났다. 아만다는 오후 5시뉴스까지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소식을 전한 뒤 회사로 복귀했다.
함께 회사로 돌아온 뒤, 아만다가 책을 한 권 줬다.
제목은 ‘Evil Next Door’. 살인범이 다름아닌 바로 이웃집에 살았다는 내용의 책인데, 자신이 취재한 한 살인사건에 대해 발생부터 범인 검거까지 과정을 다른 책이다.
아만다가 두번째로 출간한 책인데, 4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이 책이 인기를 얻으면서, 아만다의 이름이 다른 지역으로까지 알려졌고, 최근에는 범죄 전문가로 인정받아 다른 방송사 범죄관련 프로그램들에서
자주 인터뷰나 출연 요청을 해온다고 한다.
지나간 세월, 숱한 사건사고를 취재해 온 내 입장에서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아만다는 앞으로도 자신의 일과 관련해, 꾸준히 책을 낼 계획이라면서, 책을 쓰는 작업 때문에 회사와도 1주일에 30시간, 나흘정도만 일하는 것으로 계약을 했다고 한다.
나이도 사건.사고현장에서 누비기에는 다소 힘든 나이가 됐고, 아이들도 커서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자신의 직업이 천직이라면서, 결코 돈 때문에 일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50살이 넘으면 자신의 현장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