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AL을 방문한 마지막 날인 닷새째.
WRAL의 메인 뉴스라 할 수 있는 오후 5시, 6시 뉴스 남성 앵커와 보도국장(News Director)을 만나서 잠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먼저 남성 앵커는 1편 글 사진에 보였던 바로 이 앵커다.
이름은 데이빗 크랩트리(David Crabtree). 우리 나이로 62살이나 됐다.
1982년부터 방송기자 일을 시작했다고 하니까, 올해로 방송기자 경력이 30년째인 베테랑 기자다.
WRAL에서는 1994년부터 18년째 일하고 있으며, 주로 앵커만 해왔다고 한다.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사회에서는 유명 인사 가운데 한명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앵커보다는 현장에서 발로 뛰는 ‘뉴스 리포터’ 일을 더 하고 싶단다.
나이도 있고한데 편한 앵커가 낫지, 왜 굳이 현장 뉴스리포터 일을 하고 싶냐고 했더니, “매일 매일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인터뷰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데이빗 앵커에게 방송기자 선배이자 앵커로서 조언을 해줄게 없냐고 물었더니, 두가지를 강조해 줬다. ‘정직과 평판’ 이었다.
그가 말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방송기자는 일을 하면서 자주 실수나 잘못을 할 수 있다. 그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해라.
정직(Integrity)해야 한다.
우리 직업(방송 기자)에서는 평판(Reputation)이 모든 것이다. 평판이 나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다만, 일에 진지하되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지 마라.
앵커는 최고의 직업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영원히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유명세라는 것도 영원하지 않다.
나 역시 내일이면 앵커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자세로 일하고 있다.”
특히, 데이빗 앵커가 ‘평판’과 관련해 했던 말 가운데 ‘Bulldog(불독)’이란 말이 인상깊었다.
다 알다시피 ‘Bulldog’은 우리말로 사나운 개인 ‘불독’을 말하는데, ‘부하 직원들을 매섭게 몰아치고 혼내는 상사’를 빗대어 ‘불독’이라고 부른는 것 같았다.
미국 역시 우리나라 언론사와 비슷하게 방송사나 신문사에 ‘불독형’ 데스크들이 많아서 아마도 자주 쓰는 용어로 들렸다. 데이빗 앵커의 ‘불독’관련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당신이 불독이 되면 함께 일할 사람을 잃게된다.”
데이빗 앵커를 만난 뒤, 우리로 치면 방송사 보도국장이랄 수 있는 ‘News Director’를 만났다.
이름은 ‘Rick Gall’. 방송기자 출신으로 아주 젊잖았다.
WRAL을 방문해 보고 느낀 점들을 이야기한 뒤, 궁금한 점을 몇가지 물었다.
다음은 몇가지 대화록을 요약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언론의 독립성 문제가 늘 언론계의 중요한 화두다. 정부나 대기업,사주로부터 보도와 관련해 간섭을 받을 때가 있는가?)
여기에서도 일부 방송사의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그런 간섭을 받지않으려고 노력한다.
예로, 가끔 우리 방송사에 광고를 제공해 주는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보도를 해달라고 할 때가 있다. 만약에 우리가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그들이 원하는 보도를 해준다면, 시청자들이 다 안다. 그러면 우리 방송사에 대한 평판이 떨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이 떨어져나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에 가서는 오히려 시청률이 하락하고 광고가 줄어들게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런 점을 기업측에 이해시키고, 그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우리 방송 뉴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뉴스미팅에 들어가보니 당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언론사라면 가끔 부하 직원들을 다그치고 혼내줄 때도 있을텐데, 힘든 점은 없나?)
개개인을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우리 방송사 뉴스가 잘해서 시청자들의 인정을 받는다면, 그것이 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팀원들의 성과이다.
불독처럼 부하직원들에게 소리치고 고함치면, 직원들이 위축돼 야단을 피하려고 일하지, 결코 창조적으로 일하지 않게된다. 늘 직원들을 격려하고, 긍정적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뉴스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언가?)
사건사고도 많이 다루고 있지만, 사건사고가 시청자들의 실제 삶에 미치는 영향은 일순간이다. 그러나 교육과 세금 문제 등은 시청자들에 폭넓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로컬방송사인 점도 있지만, 이런 문제들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 방송사를 방문해 보고 배운 것들을 8편의 글로 나눠서 실었다.
비록 WRAL이 로컬 방송사라지만, 우리 방송사보다 효율적인 측면도 적지 않았고, 닷새동안 한국 방송사와 많이 다른 미국 방송사의 조직 구조와 조직 문화. 근무 시스템, 새로운 장비 등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음에 여건이 된다면, 뉴욕에 있는 CBS나 NBC,ABC 등 전국 네트워크 방송사를 방문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