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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에서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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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역에나 구도심이 있다. 언젠가 목포로 여행을 갔을 때, 도시를 거의 정확히 반으로 분할한 것처럼,
구도심과 신시가지의 분위기며, 집세며, 구성원들의 연령대며 거의 모든 것이 판이하게 달라서 좀 씁쓸했
던 기억이 있다.


필자가 정착한 곳은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Fairfax)’라는 도시다. 다들 그러했겠지만,
연수 초반, 집 구하는 문제며, 살림살이 장만에 전기, 가스, 전화, 인터넷 개통 등으로 정신없이 지내다가,
길게 짬을 내지는 못하고 우리 동네나 알자 하는 심정으로 인근의 ‘올드타운’을 둘러 보러 나갔다.
 
워싱턴DC에 들어가기 전,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지역에 위치한 올드타운은, 말하자면 워싱턴보다
오래 전에 형성된 구도심이다. 멋을 내기는 했지만, 한눈에도 오래된 티가 나는 아기자기한 거리와
상점들, 오래된 해변가와 낡은 부두, 역사를 자랑하는 레스토랑들이 있고, 트롤리를 타고 한 바퀴를
돌아도 30분이면 족한 작은 도시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이 작은 소도시는 ‘레스토랑 데이’ 같은 기획 행사나 이벤트 연주회를 열고 주말
이면 유기농 채소나 중고 물품들을 파는 장이 서기 때문에 워싱턴DC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물론 올드타운에도 무언가 정체되고 정지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치 지방 소도시를 살리기 위
해 예산 잡아먹는 공룡인 줄 알면서도, 매년 ‘고추 축제’니 ‘인삼 축제’니 하는 행사들을 꾸역꾸
역 기획해 내는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의 안간힘을 닮았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타운은 무언가 다른 느낌을 줬다. 가령 비지터 센터에서 만난 젊은이는 자신
이 살고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타국의 낯선 방문객인 우리에게 9월의 행사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한국에서처럼, 극심한 서울로의 집중 현상, 지방대 출신에 대한 차별, 죽어간다는 표현
이 과하지 않은 지방 소도시들의 침체 등등과 같은 분위기에서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을 열정이었다.


물론 미국을 보면 느낀 단상에도 명암은 있다. 우리보다 앞서 있는 지방분권, 지역균형 정책이 부러움
의 대상이라면, 한국적 시각으로는 이해 못할 부분도 적지 않다. 바쁜 정착 준비 과정에서 가장 놀란
것은 이 곳에서 가장 대중적인 할인마트인 ‘월마트(Walmart)’의 비닐봉지 더미들이었다.


월마트 계산대에는 비닐봉투 더미 다섯 개 정도를 돌려가며 연속해서 담을 수 있는 회전식 철제함이
있다. 봉투는 물론 무료다. 그런데도 계산원은 과도하게 비닐봉투 사용을 남발한다. 다른 물건을 넣을
여유 공간이 충분한데도, 회전식 철제함을 돌려 다른 비닐 봉투를 꺼내 물건을 담기가 예사다. 그리
철저한 환경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은 보통 아저씨의 눈으로 봐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다.


그래서 필자는 월마트에서 계산을 할 때면 미리 계산대 반대편 물건 받는 곳으로 이동해 계산원이 손
을 쓰기 전에 최대한 한 봉지에 물건들을 많이 우겨 넣곤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쇼핑 한 번에
일곱, 여덟 개의 봉투는 그저 예사롭게 낭비되기 때문이다. 아내와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자는 얘기도
나눠봤지만, 쓰레기를 내다버릴 때 쇼핑 때 받은 봉투가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에 그것까지는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문제다. 필자가 사는 곳은 아파트 식 콘도미니엄이어서 그나마
종이 및 플라스틱 종류는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해 따로 버리게 되어 있지만, 일반 개인주택은 그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식의 유료 쓰레기 봉투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환경 문제에서만큼
은 우리가 웬만큼 하고 있구나 싶었다. 필자가 한국에서 쓰레기 문제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걸
보면(물론 집안일에 무신경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미국도 우리 정도로만 신경을 쓰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발도상국에 걸핏하면 까다로운 각종 환경협약들로 견제를 가하는 선진국에서
이런 작은 시민의식조차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 아닐까 싶다. 아니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우리 땅의 100배 가까운 면적을 지닌 나라에서 매일 무분별하게 쏟아질 쓰레기의 양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 정말이지 슬프고 끔찍하지 않은가.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처리도 마찬가지다. 정착 초기, 아내와 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 나섰던
쇼핑 길에서 끝내 찾지 못한 물건이 있다. 바로 주방 씽크대의 음식물 찌꺼기 거름망이다. 그런데 콘
도미니엄에 입주해 보니 거름망이 필요치 않은 구조였다.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을 지냈는데, 하루는
아내가 “씽크대 물이 잘 안 내려간다”라고 하기에 구석구석 찾아보니 주방 구석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스위치가 있었다. 바로 음식물 찌꺼기 분쇄기 작동 스위치였다.


씽크대에 음식물 찌꺼기 분쇄기가 설치돼 있으면 편하긴 하겠지만(한국에 있을 때 저녁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냄새 나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들고 눈치 보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던 기억을 상기해 보시라),
음식물 찌꺼기가 섞인 그 물이 어디로 어떻게 가서, 어떤 화학물질에 어떤 처리 과정을 거칠까 생각하니
또 머리가 아파왔다. 필자의 아내는 분쇄기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음식물 찌꺼기를 재활용 불가 쓰레기
에 함께 묶어 내보내고는 있지만, 그 역시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곧 머지않은 미래에 더 이상 태우
는 것도, 매립하는 것도, 쓸 수 있는 상태로 다시 물을 정화하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되는 순간이 올 텐데,
하는 씁쓸함과 두려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