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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생님에게는 어떻게 항의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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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녀석이 불쑥 말을 꺼냈다.
“아빠 이제 ESOL(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수업) 클래스
  에 안가면 안되요?”


나름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터라 적잖이 놀랐다. 한국서 영어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터라 처음엔 걱정이었다. 하지만 학교 가기 싫다거나 재미없다거나 불평이 한 번도 없던
아이였다. 몇 달이 지나서야 ‘처음 며칠 동안 엄마가 보고 싶어서 수업 시간에 책으로 가리고 울었다’
고 털어놓은 속 깊은 아이가 왜 갑자기?


“왜 ESOL 친구들하고 싸웠어?”라는 내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뭐야?”


아이는 머뭇거리다 얘기했다.
“ESOL 클래스에 가는 대신 반 친구들과 함께 쓰기 수업을 하고 싶어요.”


미국의 ESOL 시스템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해야 한다. ESOL은 유치원부터 대학교,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연방정부 혹은 주정부가 지원해 주는 영어 프로그램이다. 영어가 떨어지는 이민자들을 위해서다. 물건
을 사고 행정 처리를 하는 생활 영어부터 아카데믹한 것까지 내용은 다양하다. 초등학교 ESOL의 경우
영어로 의사소통이 당장 어렵거나 어휘가 부족한 이민자 자녀가 대상이다. 문제는 방과 후 과외(extra)
로 더 해주는 수업이 아니라 정규 수업을 한 시간 빠지고 해야 한다는 데 있다. 영어를 돕는 측면도
있지만 부족한 아이들이 더 부족해지는 부작용도 있다.


우리 아이의 경우 매일 쓰기를 빠지고 대신 ESOL에 갔다. 쓰기를 하고 싶다는 설명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학교에 찾아가기 전에 미리 편지를 쓰기로 했다. ESOL 선생님이 기분 나쁘지 않게
완곡한 표현을 썼다. “아이가 이렇게 얘기하는데 어쩔까요. 선생님 의견대로 따르겠습니다.”


다음날 장문의 답장이 왔다.
“00가 그런 고민이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영어도 많이 늘었어요. 하지만 아직은 ESOL에서 더 배워야
  해요. 대신 반에서 못한 쓰기를 ESO 클래스에서 좀 보충해 보도록 할게요.”


내가 기대한 이상적 답변이었다. 내심 안심하고 아이에게 메일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런데 아이의
표정은 어두웠다. “거봐 잘됐잖아. 좀 더 다녀봐”라는 내 말에 아이는 마지못해 “네”라며 기어들어
가는 대답을 했다.


며칠 뒤 일이 터졌다. ESOL 선생님에게서 뜻밖의 메일이 왔다.
“00가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ESOL수업에 왔어요. 집중을 못하는 것 같아 주의를 주었는데 계속
  그래서 복도로 불러냈더니 울어버려서 저도 당황했어요.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ESOL 수업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그제서야 아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ESOL 선생님에 대해서 쏟아 놓았다.
“공책을 깜빡 잊고 못 가져갔는데 수업 내내 그걸로 저를 혼냈어요. 복도로 불러내서 또 소리를 질
  렀어요. 제가 우니까 ‘넌 너희 반으로 가버려’라고 했어요. 화장실로 가서 눈물을 닦고 저만 다시
  저희 반으로 왔어요”


아이의 당혹감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처음부터 선생님이 문제였다. 아이가 거꾸로 선생님의
입장을 생각해서 ‘쓰기를 하고 싶다’는 핑계를 댔던 것이다. 이후 둘째 뿐 만이라 첫째에게서 들은
ESOL 선생님의 ‘이중생활’에 나는 놀랐다. 교장이나 다른 교사가 있을 때만 아이들에게 친절하다
고 했다. 영어가 떨어지는 아이를 답답하게 여겨 다그치기 일쑤라는 얘기도 들렸다.


며칠 뒤 동네 주민과 얘기를 나누다 이런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비교적 간단한 것
이었다. “그런 일이라면 당장 교장을 직접 찾아가세요. 여기 선생님들은 교장만 무서워해요”그의 설명
을 좀 더 듣자 이런 그의 반응이 이해됐다.


이곳 미국 선생님들은 교장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정규직(temporary job)이었다. 임용고시만 패스
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한국의 교사들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다. 학교의 성적은 전적으로 교장에 대한
평가로 직결된다. 때문에 교장은 매년 우수한 선생님들 위주로 학교에 남기려고 애를 쓴다. 한 한교에
오래있는 선생님일수록 실력과 교육 철학이 검증된 경우라고 했다. 어쩐지 30대인 젊은 교장이 교실들
을 종일 휘젓고 다니는 풍경이 생경했다. 방과 후 수업이나 견학, 각종 행사에서도 교사들은 배제됐다.
교장이 기획하고 PTA(Parents Teacher Association)라는 학부모 조직이 실행을 맡았다.


당장 내 눈에는 한국 시스템보다 훨씬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다. 교사 간 경쟁을 유발해 수업 질의 하향
평준화를 막을 수 있었다. 교장에게 실질적 평가 권한이 주어진 부분이 핵심이었다. CEO형 교장과 학부
모와의 밀착은 부모로 하여금 학사 일정에 더욱 관심을 갖고 참여와 지원을 하도록 유도하는 장점이 있
었다.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 교장의 평가에 언제나 노출돼 있는 구조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반면 부
작용도 없지 않았다. 교사의 전횡을 막고 자격이 부족한 교사를 걸러낼 수 있는 반면 교장의 전횡에 교
사와 학부모, 학생이 피해자로 인식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학생에게 지지를 받는 인본주의형 교사가
‘성적을 등한시 한다’는 이유로 학부모에게 찍히고 교장에게서 불시에 ‘해고’ 통보를 받는 식이다.


미국 뉴스에서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면서 학생들이 교장실을 점거하고 시위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캡틴, 오 마이 캡틴’ 키딩 선생님도 이런 시스템의 피해자
였다. 그러다 보니 각 주마다 교사 근무 년 수(tenure) 보장 촉진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교사마다
평가에 따라 최소 보장 근무 년 수를 매년 조정해 주고 교장에게는 이 년 수를 지키도록 독려하는 내
용이다. 하지만 이런 입법은 학부모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다고 한다.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공교육이 무너진 한국을 떠올렸다. ‘배울게 없다’며 학교에선 잠을 자는 아이들. 선생님이 때리면 동
영상을 찍지만 학원 강사의 채벌은 참는 아이들. 한국의 학교는 입시 준비와 인성 교육 두 가지에서
모두 손을 놨다는 비판이 많다.
“미국식 제도 일부를 벤치마킹하면 어떨까?”아내에게 물었다. 참, 우리 아내도 한국의 교사였지! ##